부모님이 여수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셨다가 점심으로 드신 돌게장이 너무 맛있다며 택배로 보내오셨다. 나는 딱딱하고 먹잘 것 없는 돌게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큰둥했지만, 남자는 돌게장이 진짜 맛있는 거라며 내가 뭘 모른다고 한다. 돌게의 정식 명칭은 민꽃게인데 껍질이 매우 단단해 돌게라는 방언이 붙었다.
남자의 장담대로, 간장게장 하면 꽃게장인 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돌게장만 찾아 먹을 만큼 맛이 있었다. 꽃게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한 데다 짜지 않고, 살도 많고, 감칠맛이 훌륭하면서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유명한 집 게장도 비린내를 맡아내고야 마는 나의 후각을 사로잡았다는 말씀. 물론 매우 개인적인 의견이고 돌게장이 더 비리다는 사람도 많다.
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릴 때는 고기는 귀했으나 꽃게탕, 알배기 굴비구이, 은갈치 조림. 오징어 숙회 같은 해산물 요리는 자주 상에 올랐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입맛을 좌우하니 철만 되면 생각이 나는데 가격을 보면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 큰맘 먹고 사려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해산물뿐 아니라 흔히 먹던 사과나 포도 같은 과일도 너무 비싸다 보니 이것저것 둘러보다 결국 바나나 한 묶음, 할인하는 토마토 한 팩 들고나오게 된다. 둘이 사는 우리도 이런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가계부가 걱정이다. 한창 먹을 때는 앉은 자리에서 귤도 한 박스씩 먹어 치우는 아이들이 아닌가!
‘다 오르는데 내 월급만 안 오른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푸념은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이미 낯선 것이 아니다. 경기가 살아나면 소비가 늘고, 수요가 높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조금이나마 내 월급도 오르는 게 정상적인 인플레이션이다. 문제는 상당수의 전문가가 우리나라가 이미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들어섰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기후 변화나 전쟁 등에 의해 식량이나 에너지 등 원자재의 유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격이 급상승했다. 기업은 늘 하던 대로 맨 처음 임금을 동결하고 고용을 줄일 것이고,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소비할 돈은 부족한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우리는 허리띠를 조이고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지만 서로 물어뜯기 바쁜 여당과 야당, 우기기 식 고집만 남은 지금의 정부에게 경제 회복의 해답인들 도출해 낼 능력이 있다고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이 뜨거운 여름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수단그래스나 라이그래스 같은 ‘거친 먹이(조사료)’ 값이 폭등하고 국내산 볏짚도 덩달아 상한가를 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구하기도 힘드니 축산 농가에도 비상등이 켜졌었다. 지금은 풀값이 조금 안정되었지만, 이번에는 솟값이 폭락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 우리 같은 번식용 소농가는 마릿수가 어느 정도 되면 그나마 버티지만, 고기소 농가는 사룟값조차 충당하기 어렵다. 한 마리를 키워 팔면 2백만 원이 손해라는 분도 있었다.
전주에서 잘 나가는 펍을 운영하던 친구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분양받은 가게는 팔리지도 않고, 고심 끝에 베이커리 카페로 변경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친구는 가겟세가 나가지 않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소상공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는지 경매 물건이 물밀듯 나온다고 한다.
농촌은 사람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을 못 해도 우리나라 청년의 취업률은 낮다. 지방에서는 집을 주기도 하고 각종 혜택으로 사람을 불러 모아도 대한민국 인구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 산다. 결국 농촌이 몰락하고 모든 먹을거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 것인가?
권역별 거점으로의 인구 집중과 주변 지역에서의 인구 유출로 군 단위 이하가 소멸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는 균형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던 메가시티 전략. 현 정부도 4+3 초광역 발전 전략을 내세웠지만 제대로 수행할 의지는 있는가? 나라 걱정은 오롯이 국민의 몫인가?
돌게장에서 시작된 여러 가지 복잡한 질문들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나는 역사를 통해 증명된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는다. 나무를 보면 숲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힘겨움만 본다면 장래조차 암담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돌게처럼 단단한 나라다. 철광석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철강과 자동차 산업에 있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 반도체와 조선 산업은 세계의 선두에 서 있는 나라다. 우리 국민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IMF 체제를 이겨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 고통받는 취약계층을 위해 공공기관은 임금을 반납하고, 기업은 상생 경영으로 고통을 분담했으며, 민간에서는 ‘착한 임대’·’착한 소비’ 운동을 벌였다.
세계가 입에 침이 마를 만큼 칭찬하는 대한민국을 우리 국민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자학에 가까운 탄식만을 쏟아내는 것은 아닐까? 사실을 직시하고 역사를 자부심 삼아 자신 있게 도전한다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앞당길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숲을 보면 자원 하나 없는 저개발 국가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어려울 때마다 하나로 뭉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다양한 분야에서 한류를 만들어 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보일 것이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알차고 부드러운 돌게처럼 맛깔나는 나라, 나의 대한민국이다.
경희대학교 국제대학 부교수를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이자 저술가,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의 말로 마무리를 해볼까 한다.
“한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위대한 자산으로 인식한다면 세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이 세계 각국에 역사적 비전을 제시하며 중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러한 위대성을 갖고 있음은 너무나도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