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nowfield
Nov 10. 2024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의 문제만큼 선택이 어려운 것이 여름 국수다. 더위에 입맛이 없으면 유난히 차가운 면이 당기는데, 여름에 특히 그렇다. 냉면을 필두로 밀면, 콩국수, 막국수, 열무국수와 김치말이 국수에 일본식 메밀국수인 ‘소바’도 선택지에 꼭 들어가는 메뉴다. 음식 선택도 문제지만 그 많은 식당 중에서 맛집을 찾아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무주에는 면요리를 잘하는 가게가 별로 없어서 여름에는 대전이나 전주에서 점심을 먹고 남자가 좋아하는 ‘시원한’ 대형마트에서 소화를 시키며 장을 보곤 한다. 오늘은 냉면이다 싶으면 나의 폭풍 검색이 시작된다. 성격 급한 남자보다는 후기까지 꼼꼼히 읽는 내가 검색한 식당이 성공률이 높다.
이상하게도 대전은 맛있는 소바를 파는 집이 없고 전주는 그럴싸한 냉면집이 별로 없다. 전주의 함흥 비빔냉면이나 동치미 냉면은 그럭저럭 어디서나 먹을만한데 여기저기 먹어봐도 평양냉면을 제대로 하는 집이 없다. 냉면을 먹고 싶으면 우리는 보통 대전으로 길을 잡았다. 그러다 이번에 제대로 된 반가운 전주 맛집을 찾았다. 가끔 전주를 방문해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이 잦은 서울 친구가 소개한 집이었는데 평이 꽤 좋았다. ‘슴슴한' 육수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제대로 우려냈다는 걸 알 수 있는 맛! 메밀 100%의 면은 입안 가득 넣고 씹으니 여름인데도 향이 좋았다. 일본에는 ‘여름 메밀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겨울에 꼭 다시 가봐야겠다.
무주는 행정구역상 전북이지만 충청 생활권이라 할 만큼 금산, 영동, 대전이 가깝다. 전주가 오히려 차로 30분쯤 더 걸린다. 그런데도 올여름 전주를 자주 찾게 된 것은 냉면이나 소바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주에서 대형 펍(pub)을 운영하던 친구 부부가 업종을 변경,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젊어서부터 카페, 와인바 등 하는 사업마다 대박이 났고 신축건물 6층을 분양받아 펍을 운영했는데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친구의 남편은 은퇴하면 작은 빵집을 운영하면서 노년을 즐기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작은 동네 빵집을 눈여겨보곤 하는 걸 보고 ‘진심이구나!’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가게 운영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갈수록 사람 쓰는 일도 힘들어졌다는 등의 이유로 어느 날 돌연 ‘책이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업종 변경을 선포하고는 직접 책장이며 테이블을 짜면서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매장이 넓다 보니 ‘카공족’을 위한 공간, 모임을 위한 단체석 등 다양한 공간을 꾸미는 데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낮에는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도로 옆 건물의 6층이다 보니 처음에는 손님 한 명 없는 날도 있었고 백 평이 넘는 매장을 둘이 운영하면서 힘들어 보이는 것이 자꾸만 마음 쓰였다. 남자도 그랬는지 툭하면 전주로 밥 먹으러 가자는 핑계로 친구 카페에 들러 빵이라도 몇 개 사 오곤 했다. 친구 부부는 점점 살이 빠지고 많이 피곤해했지만 그러는 동안 조금씩 손님이 느는 게 눈에 보였다.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은 건 아니고 부부가 종일 붙어 있으니 티격태격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역시 베테랑이다.
냉면집도 그렇고 카페도 그렇고...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좋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까다로운 소비자들. 그들의 발길을 붙잡고자 애쓰는 사업자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잔머리로 잠시 경쟁 우위에 선다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 나도 인터넷 서비스업이나 제조업 등 작은 사업체들을 경영한 적이 있다. 소비자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어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이 꿈에서도 궁금했었다.
남자와 나는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귀농한 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소 키우기, 그러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힘이 있을 때 새로운 도전도 하는 법이다. 친구 부부도 어쩌면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갓 낳은 송아지 한 마리가 일어서질 못해 새벽에 남자를 깨웠다. 초식동물 특성상 태어나서 단시간에 일어서지 못하면 건강하게 크기가 힘들다. 소 주인이 시간마다 분유를 먹이고 아무리 치료를 열심히 해도 끝내 일어서지 못하면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우도 많다. 건강하게 태어난 송아지도 호흡기 감염이나 위장 계통 질병 등으로 죽는 경우가 있다 보니 남자는 송아지가 콧물을 흘리는지, 기침하는지, 설사하는지, 기운이 없는지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본다. 하루만 늦어도 치료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송아지가 잘못되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남자가 일으켜 세워 붙잡고 젖을 먹이자 불편한 다리로도 30분을 먹는다. 며칠 지나니 이제는 제법 뛰기도 한다.
갓 태어난 송아지들은 다리 힘이 없지만, 기를 쓰고 일어나려는 노력을 쉬지 않는다. 그러다 다리 힘이 생기면 어미 젖을 힘차게 빤다. 어미는 간지러운지 피해 보기도 하지만 열심히 품을 파고드는 새끼들에게 결국 지고 만다. 경기가 침체하고 사는 일이 고달파도 할 일이 있는 이는 아침마다 일터로 나가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일터를 찾아 거리로 나간다.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돌을 굴려 올려도 매번 다시 떨어지고 마는 운명일지언정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떻게든 살아내자’ 이를 악문다.
송아지들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면서, 친구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삶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운명론이나 허무주의에 맞서 반항하는 결연한 의지 속에 피어나는 찬란한 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