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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Nov 11. 2024

고수 비빔밥

  녹음이 짙어지고 태양 빛이 뜨거워지는 것이 드디어 내게도 여름이 시작된 모양이다. 몸이 끓는 소양인 남자의 여름은 4월 말부터 시작되지만, 만성 냉증에 시달리는 소음인인 나는 6월이나 되어야 조금 더위를 느낄 수 있다. 남자는 새벽에 소들을 먼저 먹이고 들어와 아침을 먹는데, 요 며칠 끓여 놓은 국은 패스하고 사다 놓은 시판 냉면을 조리해 먹는다. 차디찬 냉면을 마시다시피 하고 나서야 조금 열이 식는 눈치다. 성격만큼이나 다른 남자와 나의 온도 차.


  이제부터 5개월은 본격적으로 남자의 짜증이 심해진다. 일하고 운동할 때 땀 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데 그 외의 시간에는 땀 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고 에어컨에 선풍기를 끼고 산다. 잠깐만 에어컨 없는 곳에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니 안쓰럽기도 했다. 옷이 몸에 들러붙고 선크림이 흘러내리는 그 불쾌함을 이해하기에 여름에도 발이 시린 정도는 참아내려 했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그의 짜증이 점점 심해지고 도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시원하지 않은 식당에 가면 바로 나와야 한다. 아니면, 먹는 내내 짜증을 내는 남자를 보며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친정 부모님과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가 탕에 찬물을 확 부어 몇 술 뜨더니 중간에 먼저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가뜩이나 더위도 많이 타는데 얼마나 더우면 그러겠냐고 다음엔 시원한 거 먹으러 가자는 부모님 앞에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겨우 참았다. 일하고 들어와도 “고생했어. 더웠지?” 하고 물어보면 안 된다. 그는 들어오면서 이미 화가 난 상태에 있고 당연히 더우니 말 시키지 말라는 식의 기분 나쁜 대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일부러 악심을 먹고 그러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더운 식당에서 나와 냉방이 잘된 커피숍에만 가도, 아니 미리 시동을 걸어놓은 시원한 차만 타도 그의 기분은 좋아진다. 그가 기분이 좋아지면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빠진다.


  어느 여름날 칠연계곡을 향해 걸으며 산바람이 에어컨만큼 시원하다던 남자, 한여름에 담양 죽녹원 정자에 앉아 바람 줄기를 느끼던 남자, 시댁 식구와 함께한 홍콩 여행에서 땀이 물처럼 흘러도 밝게 웃던 남자의 얼굴이 선명한데… 무엇이 그를 이토록 바꿔놓았을까?


  남자는 젊어서부터 20년 넘게 영업을 해온 직장인이었다. 큰 키에 흰 피부, 깔끔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를 가진 호남이었고 유머도 넘쳐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여자 동창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정도를 지켜 무례하지 않았다. 귀농 후에도 그는 분명 어려운 상황인데도 힘든 내색 없이 항상 나를 먼저 배려했고, 문제가 생기면 깊이 생각해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내게 먼저 상의해 주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타인에게 잘 마음을 열지 않는 나도 그를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그가 달라진 것처럼 그가 보는 나도 변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도통 말을 하지 않으니 그저 추측할 뿐, 나는 그의 실망과 나의 변화를 알 수 없다. 처음에는 나의 우유부단함과 엉뚱함을 사랑스럽게 보았을 테지만, 분명한 걸 좋아하는 남자에게 몽상가인 나는 맺고 끊음이 없는 답답한 사람일 것이다. 언제나 기운이 약하고 어느 정도의 우울함을 내재하고 있던 나를 보호하고 웃게 해주던 그도 가끔은 에너지 넘치고 왁자지껄한 도시의 분위기를 그리워하고 있을 테지. 그가 변한 이유가 나 때문은 아닐까? 뭔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어서 여름이 더 더운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저런 감정이나 생각을 얘기할 때면 남자는 “그래서?”라고 묻는다. 빨리 결론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형체가 없는 나의 감상은 그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고, 끝까지 들어줄 인내심조차 어쩌면 귀찮은 거다. 머릿속에서 서론-본론-결론, 혹은 육하원칙이 완벽하게 갖춰진 문장을 만들기 힘든 나는 점점 더 말수가 없어진다. 여름이 빨리 지나가 버리길 기도하면서…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게 권태기가 온 것이겠지. 이 시간이 지나면 시원하고 푸르고 열매 맺는 가을이 올 거야.’ 기다림에 익숙한 나는 그가 올 때까지 가을의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남자가 처음 고수를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는 그였음에도 삼겹살에 상추와 고수를 내놓았을 때 그는 화장품 냄새가 나서 도저히 못 먹겠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나는 남자가 좋아하는 선지나 순댓국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 덕분에 소의 위인 양을 넣은 해장국은 좋아한다.


  능이도 좋아하지 않고 천마는 냄새조차 맡지 않는 남자는 끝내 천마와는 인연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몸이 아프다고 순댓국을 찾아 먹는 날은 영영 안 올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날이 절대 오지 않는 것처럼.


  누군가를 전적으로 사랑하진 않더라도, 그의 구성 성분(?) 중 20퍼센트만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동갑인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연대감을 가지고 있으니 50퍼센트는 먹고 들어가는 거다. 그에 대한 서운함을 한 방에 날려 보낼 톡 쏘는 고수 비빔밥으로 남자의 점심을 차리면서 그의 마음도 시원하게 풀어지라고, 가을 문턱에서 기다리는 나를 잊지 말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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