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nowfield
Nov 12. 2024
껍질의 신맛, 과육의 단맛, 씨의 맵고 쓴맛, 전체적으로 짠맛의 다섯 가지 맛을 가졌다는 오미자(五味子).
10년 전쯤 남동생이 오미자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일교차가 큰 백두대간에서 잘 자란다는 오미자 농사를 짓는 농가가 꽤 많았다. 찾는 사람도 많고 가격도 좋아지자 땅 놀릴 일 없는 시골 농부들은 너도나도 오미자 농사를 시작했고, 당최 농사와는 맞지 않는 남동생도 아빠의 강권에 못 이겨 천 평 정도의 밭에 터널을 만들고 오미자 묘목을 심었다.
농사라고는 처음 해보는 저녁형 인간이 그 큰 땅에 오미자를 심어놓고 느지막이 밭에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어 놓고 기다리면 오미자가 열릴 것도 아니고 참견 많은 농부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도 때도 없이 정보를 물어 나르면 따라가기도 바빴겠지. 한쪽에서부터 열심히 잡초를 뽑아도 중간쯤 가 돌아보면 이미 풀이 또 무성히 자라고 있고… 다 했다 싶으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농사라는 것이었다.
잡초만 뽑으면 된다고 하면 무념무상 음악도 듣고 구름도 봐 가며 신선놀음할 수도 있다지만, 오미자는 가지치기도 장난이 아니다. 땅속줄기에서 계속 새 가지가 올라와 잘라도 잘라도 끝이 없다. 꼼꼼한 성격인 동생의 일하는 속도는 잡초와 가지를 결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가끔 주말에 가서 잡초 뽑는 일을 도와주다가 드디어 수확 철이 되었다. 말린 오미자만 봤지, 나무에 달린 열매는 처음이었는데 어찌나 탐스러운지 왜 붉은 보석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목이 꺾어지는 아픔을 견디며 열심히 따기만 하면 끝이겠거니 했는데 선별하는 과정이 또 남아있었다. 마당에 둘러앉아 썩은 부분을 따내고 품질별로 분리하는데 대충 눈대중으로 담는 아빠와 남자, 일체의 불량을 용서하지 않는 엄마와 동생, 중간에 낀 나는 서로 옥신각신해 가며 상품을 만들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야 행복한 추억이지만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라는 진리를 확실히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90년대는 흔히 ‘농활’이라고 불렀던 농민 학생 연대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일제 강점기 때 지식인과 종교계 등에서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벌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계승했다고는 하지만, 8·90년대의 농활은 주로 지식인을 자처하는 총학생회가 관리하는 과 단위 농활이었다. 농활에는 학생운동에 관심이 있는 학우들과 그런 선배의 꾐에 넘어간 새내기들이 주로 참여했다. 농사를 짓는 집 자식들은 차라리 본가에서 일을 도왔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학생들은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이면 의식화 교육에 열을 올리긴 했지만 나는 생전 처음 지어보는 농사가 매우 흥미로웠다. 조를 짜서 남학생들은 주로 논에서 일하고 여학생들은 밭으로 흩어졌다. 나는 어느 비탈진 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감자를 캐고 풀을 맸다. 목·허리며 다리가 부서질 뜻 아프고 허리를 편다고 일어서면 기립성 저혈압으로 눈앞이 노래졌지만, 단순한 노동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일하고 먹는 새참도 꿀맛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와서 책 몇 권 더 읽었다고 20대의 학생들이 농민을 계몽하고 의식화한다는 것이 참으로 가소로웠던 기억이 난다. 농사일을 경험하고 나니 더더욱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 ‘농부 한 생(生)은 무한 일’이라고 한나절만 해도 힘든 흙일을 매일 하고 심지어 잘하는 전문가, 땅뙈기 하나 놀리는 법 없이 심고 가꾸어 국민을 먹여 살리는 부지런한 역군, 아무리 몸이 아파도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을 여는 사람들… 그렇게 일해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할 때 집 장만해주고, 철없는 며느리 빚까지 갚아주시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돕는 일에 굳이 봉사라는 이름조차 황송한데 교육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동생의 오미자 농사는 결국 실패했다. 생과 수매도 생각만큼 되지 않았고 거의 다 청과 술로 담가 팔았다. 판로도 열리지 않아 투자한 만큼의 보상은 없었다. 나무가 커지면 그늘이 생겨 잡초도 많이 나지 않는다는데, 끝도 없는 일에 질려버린 동생은 바로 두 손 들고 포기를 선언했다. 암, 안 되는 건 빨리 접어야지. 아무리 봐도 동생은 농사 체질이 아니었다. 예쁘게 포장까지 마친 오미자는 결국 친척과 지인에게로, 선물하고 남는 것은 우리 입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비싼 오미자청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오미자를 볼 때마다 밭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던 동생의 모습, 측은하고 안쓰러우면서도 한편 되게 웃기기도 한 그림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오미자의 신맛은 여러 가지 ‘유기산’ 때문인데 이 유기산은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피로 해소를 돕는다. 오미자의 붉은빛은 강력한 항산화제인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다 보니 치매 같은 뇌 질환에 관한 관심도 높은데, 오미자 추출물은 뇌 신경세포를 신경독으로부터 보호하고 해로운 활성산소의 작용으로부터 뇌세포를 보호한다고 한다. 특히 ‘시산드린’이라는 성분은 뇌와 중추신경계 세포를 보호하고 뇌경색의 진행을 막아주는 데다 근감소증, 근육 강화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폴리페놀’ 성분은 금속이온과 결합해 체내 중금속 독성을 완화해준다. 이 밖에도 폐와 간 보호, 혈당 강하, 고지혈증 완화, 면역 조절, 항암 및 항종양 등 무수한 효과가 있다는 오미자는 과일보다 약재로 더 많이 활용될 정도로 버릴 게 없는 식품이다.
더운 여름, 갈증이 심할 때 오미자 물만 한 게 없다. 오미자를 찬물에 우리거나 물이나 탄산수에 오미자청을 적당히 타서 얼음을 띄우면 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배나 산딸기, 블루베리나 멜론 같은 과일까지 넣어 화채로 만들어 먹으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큼 멀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