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nowfield
Nov 18. 2024
간척 사업으로 농업과 수산업이 고루 발달해 유독 부자가 많다는 동네, 전라북도 부안군의 변산반도 서쪽에는 기묘한 형상의 암벽과 암반이 빼어난 풍광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부안 채석강’이 있다. 우리 가족은 그곳을 ‘격포해수욕장’이라고 불렀지만 해수욕하러 가기보다는 썰물 때면 드러나는 암반 위를 걸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둔 것 같은 층암절벽을 구경하기 위해 자주 갔다.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한 해안침식 단애가 켜켜이 쌓이면서 수천만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 앞에 우뚝 서 있는 신비로운 수직 암벽. 세로로 쌓아놓은 책처럼 보여서일까, 그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은 경이로운 곳이다.
성인이 된 후 처음 먹어본 생선회는 그 격포에서 먹은 ‘아나고’ 회였다. 큼직하게 썰어 놓은 생선회는 도저히 입에 넣을 배짱이 없었는데 속이 비칠 정도로 얇게 썬 하얀 생선은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 (살아있는 장어의 모습을 봤다면 결코 먹지 못했을 테지만)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입에 넣고는 씹기도 전에 삼켰던 것이 나의 첫 생선회 도전이었다. 나는 지금도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두께도 얇을수록 좋다. 두껍게 잘 썰어야 제맛이라고 남자와 군산 친구들이 아무리 투박을 줘도 내 어린 입맛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먹었던 아나고는 붕장어라는 우리말 이름이 있었다.
몸통이 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장어(長魚)는 뱀장어, 갯장어, 붕장어, 먹장어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뱀장어는 유일한 민물장어로 풍천장어, 우나기 등으로 더 많이 불린다. ‘풍천’은 지명이 아니라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설이 우세한데, 바다에서 태어나 강에서 자란 뱀장어는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해 풍천에서 수개월을 지내다가 번식기에 바다로 돌아간다고 한다. (엄마는 고창 선운사 인근의 장어가 최고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데 풍천이 ‘고창 선운천’의 옛 이름이라는 주장이 홍보가 잘 된 때문인 것 같다.)
갯장어는 ‘하모’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전남 여수의 여름은 갯장어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생 가족까지 대식구가 여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엄마 생신쯤이었을 것이다. 오동도에서 배도 타고 여수의 별미라는 서대회와 군평선이구이도 맛보며 즐겁게 지냈다. 저녁 식사는 그렇게 유명하다는 갯장어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는데 장어구이에 익숙했던 우리는 모두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서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속마음은 ‘비리지는 않을까, 징그럽지 않나? 먹을 수 있을까?’였고… 다행히 맛이 있었고 별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구이보다 오히려 담백하고 기름지지 않아서 끊임없이 손이 가는 맛이라고나 할까. 동백꽃 피는 봄 오동도의 게장과 여름이 제철인 갯장어 샤부샤부 사이에서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고민이 늘었다.
해저의 모래나 진흙 바닥에 살아 눈이 멀었다는 설이 있는 먹장어는 꼼장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포장마차 안주가 떠오르는 먹장어는 다른 장어들과는 달리 연골어류에 속하므로 엄밀히 따지면 장어가 아니다. 입과 수염만 있어 SF영화에 나오는 외계 생물같이 생긴 이 녀석은 껍질을 벗겨도 꼼지락거린다고 해서 꼼장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부산의 피혁공장에서 먹장어 가죽으로 제품을 만들고 남은 살을 구워 먹은 것이 시초였다고 하는데 산 채로 구워지는 모습에 놀란 외국인들은 산낙지와 함께 한국의 괴식(怪食)으로 꼽기도 한다. 실상은 수많은 피난민이 모인 부산에서 허기를 메워주던 구황(救荒) 음식, 쓸모없다 버려지기엔 영양가 높고 맛 좋은 아픈 사연이 있는 식재료다.
장어 얘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갯장어, 붕장어라고 하면 헷갈리는 사람도 하모, 아나고라고 하면 ‘아!’ 하고 알아듣는다. 장어뿐 아니라 해양수산분야의 용어는 일본어나 일본식 한자어가 너무 많아 정작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알아듣기 힘들다고 한다. 해양수산분야만의 문제도 아니다. 알게 모르게 쓰고 있는 생활 속 일본어(닭도리탕, 다대기, 간지, 미싱, 시다, 노가다, 공구리, 굴삭기, 도라이바, 호치케스, 견출지, 유치원, 수학여행, 식대, 시말서, 견적서, 납골당, 고수부지 등)를 비롯해 건설, 의류, 인쇄·출판, 디자인·애니메이션, 방송 등 산업 전반에서 일본어는 빼면 소통이 안 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물론 외래어를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 때도 있다. 서툴게 한국어로 바꾼답시고 오히려 더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샤부샤부도 일본어지만, 우리말로 바꾸자니 신선로도 아니고 전골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로부터 불러온 우리말 이름이 있는 경우는 생각 없이 외래어를 남용하기보다 순화된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익숙하고 편하다고 쓰다 보면 정작 우리말이 점차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의 오랜 노력에도 일본어 잔재가 잘 청산되지 않는 이유는 일제가 우리말과 한글 사용 및 교육 금지, 한글 신문 폐간과 작품 검열, 얼마 전까지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는 기막힌 이름으로 불렀던 일본식 성명 강요 등으로 민족 말살 정책을 펼치면서 일본어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기성세대에서 이미 높은 빈도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다 대학까지 다녔는데도 큰딸이라는 이유로 신식 교육을 받지 못한 나의 외할머니도 일본어를 많이 알고 쓰셨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광복이 되고라도 철저히 재정비해 일본어를 걸러내고 우리말로 순화해 정착시켜야 했지만, 강대국의 이권 다툼 속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친일파조차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법 제도도 일본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검·경은 훗날 일제의 고문 방식을 정치범과 학생들에게 고대로 써먹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억지로 이해를 해보자면 어수선한 시대였고 얼마 안 가 전쟁까지 터졌으니, 겨를이 없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언어를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방송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나라 사랑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일깨워주고, 황금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던 좋은 프로그램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힘도 필요하다. 방탄소년단이 잔재한 일본어를 순우리말로 바꾼 곡을 부른다면, 인기 프로그램 도중에 돈벌이만 하지 말고 우리말 쓰기 운동을 광고로 내보낸다면(적어도 기업이 돈 쓰는 김에 그런 좋은 광고를 만든다면), 뉴스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이러한 바람이 분다면…
꼭 해야만 하는 일에는 시기도 이유도 없는 법이다. 다른 나라에서 타국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다가도 꿈은 모국어로 꾼다고 한다. 조상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의 말과 글, 아무리 수고스럽더라도 알뜰히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후대에 대한 우리의 책무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는 말들을 검색하다가 나조차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표현이 많아 너무나 놀라고 두려웠다. 몰라서, 당연히 우리말인 줄 알고, 그냥 쓰던 말이라, 상대가 못 알아들을까 봐… 나는 국어처럼 일본어를 쓰고 퍼뜨렸다. 종아리에 피가 나게 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므로 부탁드린다. 혹시라도 내가 쓴 글에서 이런 단어나 구절, 표현을 발견하신다면 즉각적으로 가차 없이 폭격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