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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Nov 20. 2024

우럭 백숙(白熟)

  아직도 조류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한 나는 흔한 식재료인 닭을 잘 못 만진다. 시장에서 닭집 앞을 무심코 지나다 놀라 주저앉을 뻔한 적도 있다. 닭을 만져본 건 30대 중반쯤 엄마 생신 때 닭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인 것이 유일하다. 물에 빠진 고기를 못 드시는 엄마가 그나마 드시는 것이 닭가슴살이어서 내 딴에는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요즘은 가슴살, 다리 살, 안심 등 부위별로 나눠 포장해 파니 그냥 소고기겠거니 생각하고 만져볼 수는 있겠지만(?) 그때는 칼로 자른 닭 한 마리를 사서 끓인 후 살을 발라내야 했다. 어찌나 식은땀을 흘리며 씨름했던지 엄마의 닭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나서는 아예 못 만지게 되었다. 아이가 있었다면 고칠 수 있었을까?


  남자는 닭요리를 좋아한다. 치킨은 물론이고 삼계탕, 닭볶음탕, 닭갈비, 닭강정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나를 만나고부터는 먹는 횟수가 반 이상 줄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순살은 또 싫다고 하니 닭요리는 그냥 사 먹는 걸로… 그래도 몸이 좀 피곤하거나 더위에 땀을 너무 흘리거나 하면 남자는 토종닭을 한 마리 사서 직접 손질을 한다. 요리도 곧잘 하는 남자는 능숙하게 껍질을 벗기고 기름을 떼어낸 후 칼집을 내고 인삼과 마늘을 듬뿍 넣어 불에 올려놓고 소밥을 주러 나간다. 쫄깃한 토종닭 백숙에 막걸리 한잔할 생각 하며 즐겁게 일할 것이다.


  남자가 일하는 동안 나는 닭기름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걷어내고 또 걷어낸다. 지방과 껍질을 제거했기 때문에 기름이 둥둥 뜨거나 하진 않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기름방울들까지 말끔하게 걷어냄으로써 나의 의무를 다한다. 최대한 닭을 보지 않으려고 매직아이* 눈을 하고서… ‘나도 거들었다!’


  백숙이란 고기나 생선 따위를 ‘양념하지 않고(白)’ 맹물에 ‘푹 삶아 익힌(熟)’ 음식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닭·오리 백숙이지만 예전에는 꿩이나 기러기를 쓰기도 했다. 우럭**이나 돔, 민어, 장어 등으로 만든 생선 백숙도 빠질 수 없다. 여수나 군산에 갈 일이 생기면 각종 말린 생선을 사 오곤 하는데, 겨울에 해풍에 말린 생선은 비린내가 적고 쫄깃한 데다 생선 본래의 단맛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깨끗하게 손질해 말린 우럭과 민어, 굴비 등을 사서 냉동실에 쟁여놓았을 때의 뿌듯함이란!


  특히 우럭은 국물 맛에 있어서는 비싼 민어와 비견되거나 더 낫다는 평을 받을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철에 생물을 넣고 만들려면 비늘이나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일이 번거롭지만, 말린 우럭은 손질이 다 되어있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훌륭한 보양식이 만들어진다. 맹물에 무와 콩나물을 팔팔 끓이다가 우럭을 넣고 통마늘을 듬뿍 투하한다. 뽀얀 국물이 우러날 때까지 오래 끓인다. 미역과 팽이버섯을 넣고 비린내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된장을 반 스푼만 넣고 5분 정도 더 끓인다. 말린 우럭은 사실 된장도 필요 없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자 근육과 장기를 형성하는 주요 구성성분인 단백질의 하루 권장 섭취량은 일반적인 성인 기준 체중 1kg당 0.8~1.2g이라고 한다. 체중 60kg의 성인은 4.8g 이상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인체에서 합성되지 않는 9가지 아미노산을 ‘필수아미노산’이라 하고, 필수 아미노산이 충분히 포함된 단백질을 ‘완전 단백질’이라 한다. 완전 단백질에는 육류, 생선, 달걀 등이 있다.


  육류 단백질을 먹을 때는 포화지방을 같이 먹게 되는데, 사용하고 남는 지방은 콜레스테롤이 되어 각종 혈관질환을 유발하므로 적당히 먹어야 한다. 따지자면 아주 소량만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삶고 찌는 것으로 조리법을 바꾸면 도움이 된다. 반면 생선을 먹는다면 단백질과 함께 오메가3 계통의 불포화지방산인 DHA와 EPA 등을 같이 섭취하게 된다. 좀 많이 먹어도 된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에 맡기겠다.


  해마다 여름이면 복날 보신 음식을 먹는 것이 의례처럼 되어 있다. 초복, 중복, 말복에는 삼계탕과 백숙, 추어탕과 장어구이를 먹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소뿔도 꼬부라든다는 삼복더위에 지친 몸을 다스리고 마음도 쉬어가는 세 번의 날. 줄까지 서가며 굳이, 복날 당일에, 기어코, 보신식을 먹어야 할지? 각자의 선택이지만, 다른 대안도 있다. 복날이 지났다고 음식점이 문을 닫는 것도 아니고 하루이틀쯤 지나 먹어도 안 죽는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반건조나 건조된 생선도 쉽게 살 수 있으니, 몸에 좋은 생선으로 백숙이나 마늘구이를 만들어 먹어도 좋을 것이다. 씻어서 얼려 놓은 수삼을 우유, 꿀과 함께 갈아 시원하게 마시거나 약이 되는 오미자로 화채를 만들어 먹는 쉬운 방법도 있다.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학문인 사상체질의학(四象體質醫學)에 따르면 각자의 체질에 맞는 여름나기가 따로 있다. 여름에 가장 힘든 체질은 급하고 직선적이며 열이 많아 쉽게 더위를 못 참고 다툼이 많아지는 소양인, 다음은 화가 많고 기가 위로 올라 조급해지고 답답해하는 태양인이다. 이 두 체질의 사람에게는 찬 성질의 해산물과 어패류, 시원한 과일류가 좋고 무엇보다 명상이나 단전호흡 등을 통해 열을 내리고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여, 눈을 감고 바람 줄기를 느껴라.)

  태음인은 땀이 많아 불편하지만 땀을 내어 열기를 빼주면 순환이 잘 되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육식이나 밀가루도 잘 맞는 체질이므로 육개장, 콩국수 등이 좋다. 소음인은 과로나 긴장으로 체력이 떨어지면 땀이 나면서 탈진이 되기 쉬운 체질로, 되도록 땀이 나는 것을 막아 기운을 보해주어야 하는 체질이다. 황기 삼계탕이 좋다.


  성격처럼 체질도 4가지, 8가지로 구분하기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자신에게 맞는 음식 정도는 어렴풋이 구별하고 있을 것이다. 몸에 좋다고 이거 먹다 저거 먹다 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질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운동법과 식사법을 적용해 유독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건강하고 슬기롭게 이겨내길 바란다.


          


* 1990년대에 유행한 입체화 영상 그림. 실제 명칭은 오토스테레오그램(autostereogram)이며, 매직아이는 그림을 모아 출간한 책 이름이다. 상표가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 조피볼락: 양볼락과에 속한 바닷물고기. 몸길이는 30~40센티미터이고 모양은 볼락과 비슷하다. 몸빛은 검은빛을 띤 회갈색이고, 배 쪽은 연한 빛깔을 띠며, 옆구리에 네다섯 줄의 분명하지 않은 흑갈색의 가로띠가 있다. 머리에 가시가 많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학명은 Sebastes schlegeli이다.

  조피볼락의 전남 방언인 우럭은(원래 조개의 이름인데 오히려 우럭 조개라 해야 알아들을 만큼) 이미 일반화되어 통용되는 명칭이므로 여기서는 우럭으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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