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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Nov 19. 2024

추어탕

  여름이 시작되자 어김없이 엄마의 입맛이 뚝 떨어졌고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3백 평 남짓한 뜰과 텃밭의 풀을 매느라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으니 ‘계속 그러시면 마당에 시멘트를 사다 부어 버리겠다.’라며 협박을 하기도 하고 정말 감행해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몇십 년을 가꾼 엄마의 정원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아직 태양이 힘을 잃지 않은 뜨거운 오후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매다가 일사병에 걸리신 것이다. 일할 때는 모르다가 일어서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고, 2층의 집까지 기다시피 올라와서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 드러누우셨다고 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일사병이나 열사병으로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꼭 나온다. 시골 읍사무소와 면사무소, 마을의 이장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낮에 일하지 말라는 방송을 해대는데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다. 밭에서 쓰러져 시신이 한참 후에 발견되는 일도 있다. 식겁해 달려간 내게 엄마는 “환자들을 그렇게 봤는데 나도 노인이라는 걸 생각 못했네. 이젠 물도 많이 먹고 조심할게.”라며 웃으신다. 일 안 한단 말씀은 절대 안 하시지. 몸이 좋아지면 또 뜰에 나가 계실 게 뻔하다.


  엄마의 회복은 더뎠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는 어르신들은 한번 몸이 상하면 되돌리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빠가 링거며 영양제를 주사하고 한 숟갈만 뜨라며 음식을 들고 쫓아다녀도 엄마는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신 게 없으니 일어서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기운 없다고 계속 누워만 계시니 어지럼증은 더 심해지고…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 싶었다. 엄마가 입맛을 되찾을 음식을 찾아내야 했다.


  가까스로 생각해 낸 것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토하젓. 나주의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직접 토하를 양식하는 농가에서 500g짜리 토하젓 두 통을 주문했다. 다행히 엄마는 밥을 드셨다. 아니, 밥과 토하젓만 드셨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번에는 밥과 젓갈만으로는 나트륨이 너무 많고 필요한 영양소를 다 섭취할 수가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든 몸을 좀 움직이게 해서 식욕을 돋워볼까 하고 좋아하시는 피자라도 먹으러 가자고 억지로 끌고 나선 길, 엄마가 돌연 추어탕이 드시고 싶다고 한다. 세상의 어떤 말이 그보다 반가웠을까! 눈물이 핑 돌면서 드시고 싶은 것이 생긴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추어탕 하면 남원이지만 다행히 가까운 금산군 추부면에 추어탕 마을이 있었다. 차 안에서 엄마의 약한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 깔끔한 식당을 열심히 검색했다. 결과는 성공!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들깻가루를 듬뿍 넣은 추어탕을 국물까지 다 드셨다. 우리는 그 후로도 여러 번 추부로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엄마 덕분에 온 가족이 몸보신을 제대로 한 여름이었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거나 갈아 만든 국물 요리로 자양 강장, 정력 증진에 좋아 예로부터 보신용으로 사랑받아 온 음식이다. 겨울을 나기 위해 양분을 축적하므로 가을·겨울이 제철이지만 줄 서서 먹을 만큼 여름 보신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시래기나 깻잎, 부추, 마늘 등 채소를 듬뿍 넣어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며, 뼈째 갈아먹기 때문에 칼슘도 풍부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불포화지방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들깻가루까지 더하니 지친 엄마 몸에 이보다 좋은 음식이 있을까 싶다. 몸에 부족한 성분이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는 이론이 맞는 것일까?


  엄마는 예쁜 꽃이 있으면 정원에 꼭 들여야 할 만큼 꽃을 좋아하신다. 처음 본 식물은 당연하고 같은 꽃이라도 색깔이 다른 것은 꼭 구해다 심어놓으신다. 꽃이 지는 겨울에는 다육식물 키우기에 열중하는데 작고 비좁은 2층의 온실을 가득 채운 다육식물이 거실까지 넘친다. 이쯤 되면 꽃을 좋아하는 건지, 저장강박증인지 헷갈릴 정도다. “지천으로 널린 게 꽃인데 돌아다니며 보면 운동도 되고 좀 좋아? 키우려면 내 몸만 힘들지.” 아무리 말해봐야 메아리도 없다.


  나도 꽃을 좋아하지만 웬만하면 집에는 들이지 않는다. 나를 구속하는 일거리가 점점 많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분양받은 다육식물 몇 개 관리하기도 힘든데 저 많은 다육이와 꽃과 과일나무를, 고추며 아스파라거스며 호박·가지를 어떻게 다 키운다는 건지… 생각만 해도 내가 다 피곤할 지경이다. 그 사랑하는 꽃들을 해칠까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잡초까지 다 뽑으려니 몸이 고장이 안 나냐고! 내가 씩씩거리고 있으니 “하고 싶은 거 하시게 잔소리 좀 그만해.”하며 남자가 말린다. “건강만 하면 누가 말려? 오히려 응원하지.”


  나도 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 있고 옆에서 다들 뜯어말려도 몰래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걸. 평생 새벽형 인간이었던 적이 없던 나도 글 쓸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잠을 포기했다. 아빠에게 바둑과 골프가, 남자에게 야구가, 내게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엄마에게 정원 가꾸기는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몸은 힘들지만 뜰에 나가 있으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마음이 그렇게 편하시다는 엄마, 집안일과 요리는 하기 싫어도 흙일은 틈만 나면 나가실 만큼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나의 잔소리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내가 흙일을 좋아하고 체력이 받쳐준다면 힘든 일을 대신해 줄 수 있을 텐데, 그 좋아하는 꽃과 하늘의 구름을 보며 예쁜 정원을 즐기실 수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조금 살만해진 엄마는 또 뜰에 나가신다. 미안한 마음은 다시 걱정으로 바뀌고…

 ‘진짜 시멘트를 사다 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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