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불이었다
저물녘 해와 물이 만나 몸부림할 때
궁창(穹蒼)은 빛을 잃고 빨간 사생아를 낳는다
희망은 푸르지 않고
숨 쉬는 일조차 두려울 때
수평선에 드리운 채하(彩霞)에 몸을 숨겨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견뎌라
온몸의 긴장에 들숨을 잊어버린
끝날 것 같지 않던 공포의 시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불안한 동공이
붉게 물든 너의 뺨에 머물고
말없이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너
불은 더 이상 내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너는 내게 온다
여태까지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따뜻한 마음과 함께였음을
불은 스러져
꽃으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