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에 정말 현명한 친구가 있다. 거의 이십 년 전 어느 날 그녀가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그 말 오늘 칭찬 일지에 기록해야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칭찬을 들을 일이 줄어들어 아쉽다며 아무리 사소한 것에 대한 칭찬이라도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자신감 고양 차원에서 일기에 적는단다. 그때는 옷차림, 개그 실력, 주량, 이마 넓이 같은 걸 칭찬받고 좋아라 하며 일기에 적는 그녀를 '뭐 그런 걸 다 적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자존감, 미라클 모닝, 미움받을 용기, 기타 등등의 자기 계발과 심리학 개념이 유행하기도 전에 칭찬일기를 쓴 그녀는 정말 앞서간 친구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나도 이제는 칭찬 일기를 쓰는 친구를 이해하게 됐다. 육아를 하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얘처럼 똥만 잘 싸고 밥만 잘 먹어도 칭찬받았으면 좋겠다!"
똥만 기저귀에 푸짐하게 잘 싸도, 걸음마만 해도, 밥만 안 남겨도, 팬티에 실수만 안 해도, 장난감 100개 중에 1개만 친구한테 양보해도 폭풍 칭찬을 받는 아이에 비해 나는 용을 쓰고 사는 것 같은데 아무도 그 정도면 잘 살아 나가고 있다고 칭찬해 주지 않는다. 일을 하면 미진한 점을 지적받기 일쑤고, 고심해서 선물을 고르느라 발품을 팔고 다녔어도 받는 사람은 무심하게 받고, 허리가 부서지게 집안일을 해도 당연히 내가 해야 될 몫이고, 새 옷을 사도 잘 어울린다는 말은커녕 새로 산 건지도 모르는 무심한 동거인이 있다. 어린이들은 부모가 칭찬해 주고 젊은 연인들은 서로 칭찬해 주는데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아줌마는 누가 칭찬해 준단 말인가.
그렇게 칭찬받을 일도, 감사하다고 인사 듣는 일도 드문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드디어 생겼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면서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의외의 칭찬과 감사 표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작년에는 밤에 재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같이 잠자리에 누우면 적어도 한 시간은 노래 부르고, 수다 떨고, 옛날이야기해 달라고 조르고 기도하고 생난리를 쳐야 잠이 들었다. 계속 대답을 해 주니까 안 자는구나 싶어서 애가 말을 거는데 대답을 안 하기도 했다. 그날도 족히 한 시간 이상 안 자려고 온갖 꾀를 부리길래 '엄마 이제 잘 거야! 나 자는 중이야! 쿨쿨' 하고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정말 고맙습니다..."
앗,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데 자는 척했다니 나는 정말 나쁜 엄마구나. 과연 너한테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걸까? 그래도 너도 아는구나. 엄마가 수고하고 짐 진 자인 것을. 그래 너밖에 없다...... 감동을 받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뭉클해지는데 아이가 한 마디 덧붙인다.
"...라고 아기가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습니다. 안 돼, 안 돼!"
내가 잠자리에서 아무렇게나 지어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감흥을 받았는지 저도 스스로 옛날이야기를 지어내는 중이었나 보다. 그런데 왜 설정이 본인은 세상 효자고 나는 극사실주의 대사로 '안 돼, 안 돼' 하는 건지.
사실 아이는 낮 동안에는 어린이집에 가고, 하원하고 집에 와서는 장난감에 둘러싸여 노느라 바쁘고, 그다음에는 식사하고 이 닦고 씻는 의무적인 활동을 하느라 엄마한테 혼나기만 한다. 그래서 애랑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건 잠자리 수다 때나 가능한 것 같다. 요즘은 좀 더 애 얘기를 듣고 싶어서 안 자고 수다 떠는 걸 놔둔다. 그러면 애는 낮에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털어놓고 나는 낮에 혼낸 걸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잘한 일을 칭찬해 준다. '아까 쿵쿵 뛰어다닌다고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든지 '오늘 머리 감기 싫었는데 꾹 참고 잘 감아 줘서 고마워.' 같은 말들을. 그런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한 적이 있다.
"고마워서 고마워."
선물을 사 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단지 내가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고마워'라고 갚아 주는 아이. 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인가! 아무래도 내가 대단한 EQ 영재, 가슴이 따뜻하고 욕심이 없으며 표현을 잘하는 아이를 낳은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에 아이의 어록을 남편에게 나눴다. 우리 애가 이렇게 기특한 말을 다 하더라고...... 내 감동에 초치기가 특기인 '인간 빙초산'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그거 타요 노래에 나오는 거잖아."
타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노래 가사 '고마워요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같이 있어줘서 참 고마워요 그렇게 얘기해줘서 나도 고마워요'를 굳이 짚어 주는 남편이 얄밉다. 그냥 우리 아들이 기특한 말 한 걸로 놔두면 안 되나? 그리고 '그렇게 얘기해 줘서 나도 고마워요'랑 '고마워서 고마워'는 엄연히 다른데 뭐가 비슷하다는 건지.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잘하는 아이는 나에게 '엄마 예뻐'라는 소리도 자주 한다. 긴치마를 입은 날은 '공주님이 됐네' 이러고 눈에 아이섀도라도 찍어 바른 날은 공들인 화장이 다 무너지게 내 눈두덩이를 벅벅 문질러 가며 '엄마 눈 핑크가 됐네 예뻐' 이런다. 아무래도 제 손에 계속 펄이 묻어 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공허한 외모 칭찬이라도 오랜만에 받아 기분 좋은 어미는 애한테 계속 확인을 한다.
"엄마 예뻐? 엠 아이 뷰티풀?"
"노우, 유 아 낫 뷰티풀. 유 아 저스트 프리티!"
내가 너무 기분 좋아하니까 괜히 쑥스러운지 뷰티풀까진 아니란다. 저스트 프리티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웃기는지. 이 놈아, 프리티도 이미 칭찬이여. 머릿속 단어 사전에 '안 예쁜'과 '못생긴'이 아예 없는 아이. 엄마가 어떤 몰골이라도 예쁘게 보는 아이. 모든 사람을 좋게만 보는 아이. 나도 이렇게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 좀 남발해 봐야겠다. '넌 대단한 정도까진 아니야, 그냥 훌륭해!' '넌 성자가 아니야, 그냥 선인이야!' '넌 천재가 아니야, 그냥 현명해!'
매일 아침 등원할 때 머리 위로 손 올려 하트를 그리고 '사랑해' 인사하고 힘차게 자전거 타고 나가는 너. 고마워 예뻐 사랑해, 말해 줘서 고마워. 나도 많이 말해 줄게.
고마워 예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