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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Apr 20. 2022

바덴바덴 온천 여행

 몇 년 전 스위스 산꼭대기에 있는 온천을 갔다 온 추억이 떠올라 3월에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snowflakesea/100).

 그러고 나니 코로나고 뭐고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욕구가 폭발했다. 남편과 애는 최근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되어서 항체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들과 뒹굴며 지긋지긋한 격리 기간을 보냈지만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슈퍼 유전자인 듯하니 '마침내 우리는 2년 만에 온천을 가도 될 것이다!'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가까운 독일의 온천 도시 바덴바덴 (Baden-Baden)으로 주말여행을 떠났다. 바덴바덴은 영국 런던 근교 도시 바쓰 (Bath), 벨기에의 도시 스파 (Spa)와 같이 도시 이름만 들어도 목욕 (Bad)하는 곳임을 알 수 있는 역사가 오래된 온천 휴양지다. 독일에서는 은퇴한 부유층 노인들이 사는 도시로도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쇼핑 거리에는 시니어 취향의 화려한 무늬 가득한 명품 매장이 들어차 있어서 다행히 내 지갑이 열릴 일은 없다.


 2019년 기준 인구 55,0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대학 입시에 번번이 실패해서 6수를 하는데도 정봉이가 부모님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를 알려 주는 에피소드에 바로 이 도시의 이름이 언급된다. 취미 부자인 정봉이에게 아버지는 요즘은 무엇을 수집하고 있느냐고 묻고 올림픽 복권을 모으고 있던 정봉은 이와 같이 대답한다.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1981년 9월 30일 저 멀리 독일의 작은 도시 바덴바덴으로부터 아주 기쁜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 라 빌 드 세울 (à la ville de Séoul)!" 


https://www.youtube.com/watch?v=Wliq1zgkfKQ

바덴바덴과 우리나라의 인연

 1981년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가 1988년 올림픽 개최지를 불어로 '서울'이라고 발표한 곳이 바로 바덴바덴에 있는 카지노 쿠어하우스 (Kurhaus)이다. 가지고 있던 복권이 당첨되어 집안을 일으켜 세운 정봉이가 온 가족에게 예쁨 받는 귀둥이가 된 것처럼, 숙적인 일본을 제치고 하계 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우리도 과시할 만한 국력이란 게 생겼다는 '낭보'가 날아온 곳이 바덴바덴임을 알게 되면 한국 사람들은 이 도시에 어느 정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쿠어하우스는 도스토옙스키가 도박에 빠져 거액을 잃고 후일 '도박꾼' 같은 소설을 쓰게  곳이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바덴바덴이야말로 둘러볼수록 매력적인 도시다. 시간이 없고 삶이 팍팍해서 글을   없다는 핑계를 대며 게을러질 ,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있습니다. 뭐하니,   써라!'라고 알림이 와서 찔릴 , 신과 자유와 도덕과 인간의 본성과 기후변화와 전쟁과 같은 주제에 비해  생활에서 나오는 글감은 너무나 시시하고 수준 낮아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  ... 그럴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린다. 일단 쓰자.


 여행의 목적이 온천이었으니 유럽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욕탕인 카라칼라 온천에 입장한다. 바쓰, 스파, 로이커바트  유럽에서 온천으로 유명한 곳을 많이  보았는데 바덴바덴의 카라칼라 온천을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다른 곳은 한국 사람에게는 시시할 만큼 온도가 낮다. 한국 사람들은 뜨거운 열탕과 극도로 차가운 냉탕을 오가며 치료의 고행을 거쳐야 몸이 풀리고 개운한 느낌이 드는데 유럽 사람들은 미지근한 물에서 그냥 여유롭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있는 시설이 훌륭한 온천을 가도  온도에 실망한 적이 많은데 여기 카라칼라 온천에는 온도가 높은 탕이 있다. 바덴바덴의  다른 유명 온천인 프리드리히 온천이란 곳은 조금  전통적인 방식으로 온천을 즐기는 곳이라 완전 탈의를 하고 들어가야 하는 사우나 위주라 부담스러운데 카라칼라 온천은 수영복을 입고 들어갈  있는 욕장이 넓다.  처음 독일 여행을 갔을  '호텔은 국제적 기준을 따르겠지', 하고 수영복을 입고 사우나를 갔는데 그곳에서 나체의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민망함과 불편함이란...  이후 절대로 독일에서 사우나는 가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카라칼라 온천을 좋아하는 이유는 야외 풀에 엄청난 수압으로 물이 나오는 구멍이  군데 있어서다. 인터넷 회사와 대학원 생활을 거치며 굽은 어깨, 거북목, 허리 디스크를 갖게 되었고  낳고 골반 통증과 손목 건초염까지 얻었는데 웬만한 물리치료나 마사지로는 전혀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카라칼라 야외 풀에서 물줄기가 제일 세게 나오는 구멍을 찾아  앞에서 아픈 손목을 호되게 조지는   낙이다. 아줌마들은 헬스에선 허리 덜덜이 벨트를 제일 좋아하고 목욕탕에선 수압 마사지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그렇게 수압의 고통에 희열을 느끼며 변태처럼 야외 풀장에 서 있는데 어떤 할머니 이용객의 예쁜 꽃 수영모에 눈길이 갔다. 꽃이 그려져 있거나 몇 개 달린 정도가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쓰던 것과 똑같은, 꽃이 주렁주렁 달린 빨간 수영모를 쓰고 한 할머니가 천천히 수영을 하는데 아직도 이런 수영모가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할머니 수영모 (old lady flower swim cap), ' '빈티지 수영모, ' '레트로 수영모, ' 이런 이름으로 다시 시장에 나와 팔리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 할머니는 새로 복고풍 수영모를 사서 쓴 게 아니라 한 30년 동안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진짜 옛날 거를 쓰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독일인의 검소함과 '메이드 인 저머니' 물건의 견고함이 합쳐지면 그런 말도 안 되는 확률이 가능할 때가 있으니까.

구글 이미지 검색 ‘할머니 수영모’

 그렇게 독일 할머니의 빨간 수영모를 보고 있노라니 내가 어렸을 적 썼던 노란 꽃 수영모가 떠오르고 가족 여행을 갔던 해수욕장이 떠오르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최근 읽었던 책 중의 한 문단이 떠오른다.


 민아가 네 살 때였어요. 아내가 임신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대천해수욕장 앞 해변 바라크 건물에 묵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다른 천막에 가서 문학청년들과 신나게 떠들었지. 그때 민아가 자다 깨서 컴컴한 바다에 나가 울면서 아빠를 찾은 거야. 어린애가 겁에 질려서......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애는 기억도 안 난다지만 (웃음). 그랬던 아이가 혼자 미국에 가서 무척 고생을 했어요.
 그 어렵다는 법대를 조기 졸업하고 외롭게 애 키울 때, 그날 그 바닷가에서처럼 '아버지!'하고 목이 쉬도록 울 때, 그때 나의 대역을 누군가 해줬어요. 그분이 하나님이야. 내가 못 해준 걸 신이 해줬으니 내가 갚아야겠다. 이혼하고도 편지 한 장 안 쓰던 쿨한 애가, '아빠가 예수님 믿는 게 소원'이라면 내가 믿어볼 만하겠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딸이 실명의 위기에서 눈을 떴을 때 내 눈도 함께 밝아진 거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2021, 열림원) 중에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과연 이 에피소드를 믿을 수 있을까, 어떤 그림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요즘 양육 기준으로 본다면 어린아이를 혼자 재우고 부모가 빠져나가서 밤을 즐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어린애가 울면서 혼자 방을 나왔는데 펜션 주인이나 호텔 로비 직원의 눈에 띄지 않아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바닷가까지 나가는 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들 것이다. 그리고 휴가지에서 하필 어떻게 아는 문학청년들을 만났는지도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쉽게 위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가족여행의 숙소는 펜션도 호텔도 에어비앤비도 하다못해 해변의 텐트도 아니었다. 이어령 선생이 묵은 해변 바라크 건물이라는  성수기를 노리고 임시로 세운, 냉방이 전혀 되지 않는 막사들을 말한다. 그때는 규제를 받지 않았는지 그런 막사들이 해변에 빼곡하게 있었다. 지금이야  그러겠지만 (안 그런다고 믿고 싶다) 한국 회사에서 모든 직원들의 휴가기간을 7  8 초로 통일해야  때가 있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여름휴가를 가면 '아무개가 담당자인데 휴가 가서  모르겠는데요' 하면서 업무에   내내 공백이 생기니 차라리 모든 사람이 동시에 2 3 사무실을 비우고 여름에도 평소처럼 죽어라 일을 하자,  마인드였던 거다. 그리고  휴가조차도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가는 거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에서 몇십 개의 해변 막사를  예약해서  같이 '가족여행' 갔고 당연히 우리 아빠도 밤에  숙소에 있는 직원들과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자고 있던 방의 문을 열자마자 나온 어두운 해변에서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어린애가 아빠를 찾는 광경도,  막사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 이어령 선생도 쉽게 머릿속에 그릴  있다. 정작 딸은 그날  아빠의 부재를 잊고 있었는데 평생 죄책감을 안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 아파한 부정(父情) 뭉클한데  세상에 이제  아빠도  딸도 없다. 세월이란......


 온천을 갔다  다음  보니 어찌나 수압이 셌던지 팔에 멍이 들어 있다. 시큰한 손목과 멍든 팔뚝이 서글프다. 아직도 마음은  수영모 쓰고 모래밭을 뒹굴던 아이같은데 몸뚱이는 쑤시지 않은 데가 없구나.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면 오래된 앨범을 뒤져 대천해수욕장 사진을 찾아봐야겠다. 바덴바덴에서 만난 내 노란 수영모자와 젊은 날의 아빠와 바쁜 80년대가 그 안에 그대로 있을까.

 

할머니 수영모의 요즘 버전 ‘레트로 수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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