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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Feb 15. 2022

육아라는 평균대 위에서

 회의론자의 장점 중 하나는 나름대로 자기 객관화를 잘한다는 것이다. 이 집단에서 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유능하거나 무능한 일꾼인지,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꽤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우울하지만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아 실망할 일이 없어 감정은 안정적으로 로우 키 (low key)를 유지한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 객관화 능력은 공적인 관계를 벗어나 사적인 관계, 특히 가족 관계로 들어오면 도통 발휘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내가 좋은 부모인가? 아니면 나쁜 부모인가? 우리 아이는 천재인가? 아니 바보인가? 나와 이 아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이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데 한 번 들은 동화책 내용을 줄줄 외워 영어 문장을 그대로 읊는 것을 보고 '내가 천재를 낳았구나!' 하다가 그다음 날이면 학급에서 유일하게 가위질을 제대로 못하고 가위 갖고 장난만 치는 아이라고 하는 선생님 피드백에 하늘이 무너진다. 그러면 기어코 집에 와서 '너 가위질 좀 해 봐!' 시켜 보고 선생님 앞에서와는 달리 척척 색종이를 자르는 애를 보며 안심한다. '거 봐 우리 아들 바보 아니잖아.'


 감기몸살로 너무 아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억지로 일어나 샤워를 마친 아이 몸에 로션을 발라 주는데 말을 안 듣고 벌거벗은 채 자꾸 도망가며 녀석이 '엄마 나가서 자! 엄마 소파에서 자!'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 천하에 이런 불효 막심한 녀석이 또 있을까 싶다. 네 놈 로션 발라 주고 잠옷 갈아입히고 토닥토닥 재우는 일까지 남아 있어 이 밤도 갈 길이 구만리인데 감히 기침하는 모친을 안방에서 쫓아 내? 너무 섭섭한데 벌거벗은 녀석이 내 손을 잡고 리클라이너 의자로 이끈다. '엄마 여기서 자!' 아...... 이석증 때문에 구토가 나서 똑바로 눕지 못하고 리클라이너 위에서 잘 때를 기억하고 이 녀석이 엄마가 아플 때는 여기서 자면 낫는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엄청난 효자를 길러 냈구나.


 작년에 살던 홍콩 선생님들은 영어를 잘한다고 했는데 이곳 스위스에서 만난 선생님은 애 영어가 두 살 수준밖에 안 된다고 (곧 네 살이 되는데) 문제란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부모 때문에 언어 발달이 중요한 시기에 너무 많은 언어를 접해서 아이에게 혼란만 준 게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침대에서 뒤척였다. 그렇게 심난하던 와중에 며칠 후 선생님이 반 애들 중에 과거형 동사를 사용해서 과거에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말하는 몇 안 되는 애들 중 하나라고 애가 말을 잘한단다. '아이고 이제 한시름 놔도 되겠구나.' 감사기도를 드리려는데 이 녀석이 시키지도 않은 회개 기도를 한다.


"예수님, 오늘 학교에서 니콜라스 깨무는 척 장난쳤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뒤로 가라고 했어요. 쫓겨나서 울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고 유난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스위스에서도 세 군데나 다른 어린이집을 다녔고 홍콩까지 다녀왔는데도 모든 기관의 등원 첫날부터 씩씩했다. 밥도 다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다른 친구들이랑도 잘 놀았단다. 천재, 영재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적응 잘하고 씩씩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가을 어느 날, 핼러윈이라고 학교에서 귀신이니 마녀니 이런 단어들을 주워 들었나 보다. 하원 길에 나에게 녀석이 묻는다. '엄마 위치 (witch)가 뭐야?' '응 그건 스케어리 우먼 (scary woman) 무서운 여자야.' 그랬더니 하는 말.


 "미스 R 말하는 거야?"


맙소사. 이 녀석이 속으로는 담임 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있었나 보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독어로만 얘기하는 선생님 한 분, 영어로만 얘기하는 선생님 한 분, 독어로 말하는 한 명의 보조교사, 이렇게 세 명의 선생님이 있다. 독어 담임과 보조교사는 친절하지만 아직 독어가 서툰 아이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인지 이 녀석은 영어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어떤 날 아침은 독어 선생님이 데리러 나오면 들어가기 싫다고, 미스 R이 나와서 자기 데리고 들어가라고 영어 선생님만 찾아서 결국 영어 선생님이 내려오자 그녀에게 뛰어가서 품에 안겨 볼을 비비고 난리였다. 그래서 나는 이 녀석이 영어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속내는 완전 반대였던 거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 톤이 높고 말이 빠르고 엄격한 영어 선생님이 무서워서 싫은데 그나마 자기 말을 제일 잘 알아들으니 살아남으려고 그 선생님에게 애교를 부린 거였다. 애는 매일매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이 싫고 무서운 감정과 맞서 싸우며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엄마라는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우리 애는 적응을 참 잘해!' 과신하며 애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는 모범생과 문제아 사이, 천사와 악동 사이, 천재와 바보 사이, 불효자와 효자 사이를 오간다. 그때마다 내 마음도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이 정도면 나도 좋은 부모인 것 같다가, 곧 후회한다. 어쩌자고 자격도 없는 인간이 자식은 낳았는지, 나 같은 사람한테 와서 이 애가 불쌍할 만큼 내 인격의 바닥을 보는 날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엄마지'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사실 아이와는 직접 상관없을 때가 많다. 육아 서적을 찾아 읽을 때, 내가 나이가 좀 더 많다는 이유로 다른 엄마들이 육아 고민 상담을 하면 다 아는 것처럼 훈수 둘 때, 어린이집 준비물을 극성스럽게 준비할 때, 그만두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펜글씨 아트로 감사 카드를 쓰는데 온 힘을 쏟을 때,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전집을 한국에서부터 공수해서 책장에 꽂아 놓고 감상하며 뿌듯한 마음을 느낄 때...... 그럴 때 나는 착각한다. 그래, 이 정도면 좋은 부모지.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정작 애한테는 글자 가르치면서 이것도 모르냐고 소리 지르고, 몸이 귀찮다고 넷플릭스를 틀어 주고, 말 안 들으면 장난감 사 준다고 구슬려서 그 상황만 모면한 후 쉽게 약속을 어기고, 채소고 고기고 몸에 좋은 건 안 먹으니 과자로라도 배 채우라고 과자 봉지를 뜯어 준다. 그래, 나는 금쪽이 육아 상담소에 나가야 될 부모다. 문제아가 아닌 문제 부모로......


 오늘도 위태롭게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육아라는 이 평균대 위에서 일단은 넘어지지 않고 중심 잡기에 열중한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 아닌 그저 평균적인 부모라도 되게 하소서.

아이가 곧 그만 두는 독어 선생님에게 쓴 감사 카드. 이걸 쓰게 한다고 윽박지르는 나쁜 엄마였다가, 알파벳 하나만 맞춰도 잘 한다고 호들갑 떠는 좋은 엄마였다가 이랬다 저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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