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줄 알았더니 후회였더라.

by 바다에 내리는 눈

우리 아이는 뭔가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아이들과 처음 보는 선생님 사이에 들어가서 요리를 배우라고 하거나 만들기를 하라고 캠프를 보내 놔도 기죽지 않고 잘 배우고 온다. 악기며 운동이며 시켜 달라고, 배우고 싶다고 제가 먼저 요구하는 편이라 다른 부모들이 나에게 좋겠다고, 아이가 공부 잘하고 주도적일 것 같다고 부럽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그걸 잘 익혀서 자기 것이 되게 소화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논어에 나오듯 학습 (學習)이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인데 우리 아이를 보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좋아해도 익히는 것은 싫어한다. 90년대에 어른들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지루한 반복을 통해 피아노를 익힌 내가 아이에게 피아노 수업에서 방금 배운 곡을 10번만 연습하고 놀아라,라고 하면 이 아이는 진저리를 친다. 이미 칠 줄 아는데 왜 10번이나 연습해야 하냐고 완강하게 반항한다. 아직 리듬이나 강약 조절이 완벽하지 않으니 좀 더 연습하면 좋지 않으냐고 설득해도 소용없다. 나 같으면 10번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이미 놀고 있겠구먼 이 녀석은 그 시간 동안 말싸움을 한다.


학습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은 '학'보다는 '습'에 해당하는 행동 양식인데 이미 한 번 듣고 접해서 반짝거리는 새로움의 매력을 잃어버린 그것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익히는 과정은 귀찮고 재미없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습이란 단어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오는 '배우기'보다는 두 번째 오는 '익히기'인데 많은 이들이 남으로부터 배우는 그 자체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배우기에 힘을 쏟고 지쳐 버린 후 '익히기'에 쓸 시간과 에너지가 없어 공부를 잘할 수가 없다.



학습에 있어서 미련한 아이를 질책하다 보면 똑같이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어른이라는 자격으로 아이 앞에서 잘난 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이 한심한 인간.


나이를 먹으니 자꾸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게으름, 멍청함, 미숙함, 남에게 폐를 끼친 것, 그로 인한 실패. 이런 당연한 부덕들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때는 나의 정직한 노력과 재능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성과나 업적, 소유했던 것들에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을 나의 욕심, 질투, 교만, 무리수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다.


어느 날 밤에는 불현듯 '오늘도 말을 또 너무 많이 했다, 말실수를 한 게 분명하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고 왜 또 혼자 쏟아 냈나, 필요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내 얼굴에 먹칠을 했나', 후회막심이라 이불 킥한다. 그리고 드는 의문 하나- 난 이렇게나 회개 (悔改)를 많이 하는데 왜 같은 우를 계속 반복할까? 만날 사람이 있고, 그들과 공통의 화제가 있어 즐겁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으면 감사한 건데 왜 그 감사함을 누리지 못하고 아무 일 없던 하루에도 흠을 잡고 아무래도 또 망한 것 같아,라는 결론으로 돌아갈까.


어떤 현명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다. 뉘우치기만 하고 고치질 않아서 그렇다고. 회개에서 중요한 것은 뉘우칠 '회'가 아니라 고칠 '개'인데 우리는 후회만 하고 고치질 않는다고. 고침 없이 돌아보기만 하면 현재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미래도 대비하지 못하면서 우울의 늪에 빠져 들어가게 될 때가 있다.



배우기는 좋아하지만 익히기를 싫어하는 아이처럼, 후회하기의 명수지만 거듭남이 없는 게으른 어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배우기에서 익히기로 건너가기 위해서 동원해야 할 갖가지 무기와 꿀팁들이 후회하기에서 거듭나기로 넘어가고 싶은 어른에게도 필요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자존감? 절제력? 체력? 주변의 지지? 신앙?


자식에게 소리 지르고 바로 후회하면서 내일부턴 정말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하고 또 소리 지르는.

아까운 밤시간을 어두운 방에서 핸드폰 들여다보며 가뜩이나 노안이 오고 있는데 더 시력 떨어뜨리면서 흘려보내지 말고 차라리 좋은 영화나 한 편 보든지, 허영심에 사 두고 읽지 않은 책을 읽자고 다짐하고 또 쇼츠나 넘겨 보는.

그럴 때면 차라리 지난날에 질끈 눈 감아 버리는.

오늘도 회개한 줄 알았더니 후회하고 있는..., 그런 미련한 사람이 가을비 내리는 오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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