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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Nov 16. 2020

[파리] 아슬아슬하게 비껴 간 불행

Why me? Why not?

 그 날은 평소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골방 백면서생인 내가 웬일로 출장 갔다가 파리로 돌아온 날이었다. 덴마크 오르후스 (Aarhus)에서 있었던 학회에 참석하고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이 도시를 낮춰 보아서 느끼는 불쾌감과 동시에, 낮춰 보는 대상에 긴장감을 느끼는 모순적인 상태에 빠졌다. 길에서 핸드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확인하며 초행길을 갈 수 있는 오르후스, 여자 혼자 밤에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어도 되는 오르후스, 학회 저녁 회식에서 순록 스테이크를 주는 오르후스, 공중 화장실 휴지도 두껍고 질 좋은 오르후스를 떠나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저분하게 신문지가 나뒹구는 파리, 공중 화장실에 숨을 참고 들어가 볼 일을 봐야 하는 파리, 남편의 차를 기다리면서 혹시 누가 내 가방을 낚아 채 갈까 봐 미어캣처럼 사방을 살펴야 하는 파리에 도착하니 피곤이 밀려왔다. 밤 비행기로 도착했어도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주체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지만 한 번 길에서 강도당한 이후로 몸을 사리는 편이 된지라 남편에게 공항으로 나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주차비를 아낀다고 공항을 빙빙 돌고 있던 남편과 몇 차례 전화 통화 끝에 겨우 픽업 지점에서 만나 차를 타니 긴장이 탁 풀리면서 지난 며칠간 덴마크에서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진다. 피곤한 상태라 불어를 듣기 싫어서 라디오 주파수를 뉴스 채널에서 재즈 음악이 나오는 떼에스풰 재즈 (TSF Jazz) 채널로 바꿔 달라고 한 후 보조석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혔다.


 늘 막혀서 차가 기어가는 파리 외곽 순환도로 뻬리뻬리크 (le boulevard peripherique)도 밤 9시가 넘으니 제법 교통 흐름이 원활했다. 눈을 감고 분주한 콘트라베이스 선율에 집중하고 있는데 운전하던 남편이 혼잣말을 한다.


 “와, 스타드 (Stade)에 불빛 봐라. 엄청 훤하게 켜 놨네. 오늘 무슨 경기가 있는 날인가?”


 그는 마누라가 학회 가서 발표한 출장의 디테일을 듣는 것에 관심 없고, 나는 축구 얘기에 관심 없으니 이 얼마나 공평하고 아름다운 부부 사이인가. ‘글쎄 또 무슨 프랑스 대표팀 경기가 있겠지. 이 사람들 축구라면 환장하잖아.’ 여전히 눈을 감고 대충 대답을 해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저 경찰 오토바이 어디로 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지?”

 “경기장으로 가는 쏘흐티 (Sortie)로 나가는 거 보니 또 술 먹고 몇몇 축구팬들이 경기장 주변에서 난리 치고 있겠지. 생드니 (Saint Denis)잖아.”

 “라디오 뉴스 채널로 돌려 볼까?”

 “놔둬. 집에 가서 TV 뉴스로 경기 결과만 봐. 그나저나 또 경찰차가 지나가네?”


 우범 지대인 생드니에 경찰차가 출동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날따라 경찰차의 지나가는 모양이 너무나 급해 보였다. 무슨 사건사고가 있어서 경찰차가 지나간 거라면 우리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는 게 나을 테니 오히려 더 속도를 내어 스타드를 지나 평소보다 뻬리뻬리크가 막히지 않아 다행이라며, 오늘은 운이 좋다고 서로 격려하며 집에 도착했다. 평소 TV를 잘 보지 않지만 오늘 스타드에서 무슨 경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했던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급하게 TV를 켜서 스포츠 뉴스를 찾는데 이상한 화면이 나온다.  


 “오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있었던 독일 대표팀과 프랑스 대표팀 간의 친선 경기에서 폭발물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지금도 경기장 안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테러는 진행 중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오늘 스타드에서 폭발물이 터졌습니다. 몇 명이 죽고 부상당했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그 경찰차는? 뉴스를 듣고 얼추 계산을 해 보니 우리는 폭발물이 터진 10분 후 경기장 바로 옆을 지나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데도 공포와 긴장이 밀려오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아까는 안전하고 배불러 만족스러웠던 오르후스에서의 며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재즈 음악보다 더 어지럽고 정신없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내는 파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파리라는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덜덜 떨면서 여행 가방도 풀지 못한 채 소파에 주저앉아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내 옆에서 남편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핸드폰 위를 움직인다. 타닥타닥타닥 타다닥......


 “뭘 그렇게 치는 거야? 누구랑 얘기하고 있어?”

 “어, G랑 얘기하고 있어. 지금 파리 시내로 자기를 데리러 와 줄 수 있냐고 하는데?”

 “뭐? 무슨 소리하는 거야?”

 “스웨덴에서 놀러 왔잖아. 오늘 밤은 파리 시내에 있는 친구 집에서 신세 지고 내일 밤에 우리 집에 와서 묵기로 해서 당신도 좋다고 했잖아.”

 “그래, 내일 오기로 했지. 왜 지금 온다는 거야?”

 “지금 테러가 나서 다들 못 움직이잖아. 오늘 신세 지기로 한 친구의 여자 친구가 원래는 오늘 밤만 다른 곳에 가서 자기로 했는데 테러 때문에 밖에 못 나가서 좁은 원룸 아파트에 불편하게 셋이 있나 봐. 눈치가 보여서 더 있을 수가 없다고 우리 집으로 빨리 가고 싶대. 그리고 아무래도 그 집은 너무 파리 시내라 오늘 밤에 좀 무섭대. 교외에 있는 우리 집이 더 안전할 거고 또 우리는 거실이 있어서 걔한테 따로 공간을 내줄 수 있잖아. 지금 데리러 와 줄 수 있냐고 하는데?”

 “미쳤어? 아니 테러 나서 아무도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하는데 지금 거기가 어디라고 G를 데리러 간다는 거야?”

 “그래도...... 불쌍하잖아. 얼른 가서 걔만 딱 데리고 올게. 어차피 그 동네는 생드니랑 멀어서 괜찮을 거야.”

 “아니, 저도 무서워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시내로 당신을 오라 가라 하는 게 말이 돼? 미쳤냐고!”


 위기 상황에선 사람의 밑천이 드러난다. 남편의 지인들이 와서 자고 간다고 하면 손님 방은 따로 없지만 신혼집 거실 소파에 이불 깔아 주고 한식 요리도 해 주면서 요즘 이런 아내 없다는 칭찬을 듣는 걸 내심 즐겼었다. 불고기 하나를 해도 뚝배기에 담아내서 너는 매일 이런 걸 먹고 사는 거냐며 감탄하는 친구들 앞에서 남편은 어이없어했지만 난 별 거 아니라고 겸손 떨며 미소 지었었다. 그런데 친구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불안한 상황에서 손 잡아 달라고 하는데 손을 내밀자니 우리가 위험할 것 같아 남편에게 절대 데리러 가지 말라고 꽥 소리를 질러 버린 것이다.


 밤새 테러에 관한 소식이 업데이트되는데 스타드뿐만 아니라 프티 깡보주 식당에서, 칼리옹 바에서, 바타클랑 극장에서, 벨 레키프 술집에서, 볼테르 거리에서, 레 알 슈퍼마켓에서, 또 어디 어디에서 이제는 셀 수조차 없이 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났음을 미디어는 보도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절대 집 밖을 벗어나지 말라는 정부 명령이 반복적으로 뉴스 자막에 흐르고 있었지만 나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고 의리 있는 남편은 G를 픽업해 왔다. 어젯밤에 데리러 가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을 테니 날이 밝자마자 외출금지령을 어기고 G를 데려 온 남편의 우정을 이해하고자 마음을 다스리는데 한 술 더 떠 이 두 남자는 어찌나 대범한지 잠깐 세느강변을 산책하고 동네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하고 오겠다 한다. 차마 G가 듣는 데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낼 순 없으니 한 번 흘겨보고 맘대로 하라고 하자 두 남자는 정말 맘대로 나가 버린다. 아니, 어젯밤에 친구의 여자 친구 눈치가 보여 그 집에 한 시도 더 있을 수가 없다더니 G 이 녀석, 사실은 눈치 더럽게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지나 세계 이 곳 저곳에 파리의 테러 소식이 전해지자 지인들이 나는 괜찮은 거냐며 SNS로 안부를 물어 왔다. 오래전에 시카고로 유학을 나간 첫 달에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자 한국에 계시던 할머니가 우리 손주 괜찮은 거냐며 안절부절못하셨던 것처럼 단지 여기 산다는 이유로 지인들의 관심과 걱정을 듬뿍 받고 나니 더 응석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고 온 남편과 G가 동네 카페 야외 테라스에 사람들 다 평화롭게 앉아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있더라며 나보고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자신들의 행동을 변명하듯 말하는 게 얄미워, 먼 데 있는 사람들에게 나 지금 무섭다고 털어놓고 싶어졌나 보다. 평소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미국에 있는 스승님에게 이메일을 보내 스타드를 지날 때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고 쓸데없는 이메일을 보내니 그에게 답장이 왔는데......


 ‘네가 무사해서 참 다행이야. 폭발이 일어났을 때 불편할 정도로 그 지점과 가까웠었던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한 줄 쓰신 후 같이 하고 있는 연구 얘기를 한 10줄 써 보내신다. 조금 허탈했다. 불편? 어젯밤 그 상황은 불편 (uncomfortable)이 아니라 불행 (misfortune)이었는데? ‘언컴포터블’이란 단어에 내가 모르는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건가? 그저 언짢고 불편한 마음이 아니라 공포와 긴장 속에 푹 절여져 있다가 겨우 헤엄쳐 나왔는데 남이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그 이후에 내가 공포에 휩싸이고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계속 떠오르는 머릿속 아지랑이가 되었다. 베를린에 갔다 온 정확히 2주 후에 내가 돌아다녔던 크리스마스 마켓에 트럭이 돌진하여 사람들이 죽는다든지, 구경 가서 은혜받았던 프랑스 시골의 성당에 테러 분자가 난입하여 신부님의 목을 따서 죽인다든지, 이런저런 입에 담기 싫은 사건들이 유럽에서 반복될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나를 비껴가는 불행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미국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정치인 바이든의 책상 위에 있는 두 컷 만화가 요즘 화제다. 수십 년 전 교통사고로 첫 아내와 딸을 잃고 아들들도 부상을 입어 국회의원 선서를 아들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한 바이든에게 그의 아버지가 건넨 위로 차 건넨 만화란다. 미국 유명 작가 딕 브라운의 '공포의 해이가르' 중에서 주인공인 해이가르는 자신이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좌초되자 신을 원망하며 하늘을 향해 외친다. "왜 하필 나입니까? (Why me?)". 그러자 신은 그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왜 넌 안되지? (Why not?)[1]"  

공포의 해이가르

 고통이든 공포든 피하고 싶은 감정을 맞닥뜨렸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왜 내게 이런 불행이 오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아직도 고통을 잊고 신속하게 치유되는 법이나 원인 모를 공포감을 극복하는 법은 모르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아무 일 없는 매 순간에도 자각하지 못했을 뿐 나는 고통의 발원지, 불행의 정점에 불편할 정도로 가까웠다. 불행과 불편은 한 글자 차이다. 지금 나를 집어삼킬 것 같은 이 불행에 대하여 절망할 때 나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하고 신은 침묵한다. 그러나 나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간 그 모든 불행들에 대하여 곱씹으며 어째서 그때 내가 아니라 그곳을 나보다 조금 전 혹은 후에 지나간 다른 사람이었는지에 생각이 미칠 때, 어쩌면 지금 품고 있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서서히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길 바라고 있다. 한 줌 희망을 위하여.



[1][출처: 중앙일보] 아내·딸 잃고 神 원망한 바이든, 그런 그를 일으킨 ‘두 컷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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