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나에게 소나무가 보이는 서재를 주오
2020년 12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Dec 16. 2020
코로나 일 확진자가 100명이 넘어가면서 홍콩도 정부의 규제가 심해져서 저녁 식당, 스포츠 시설, 마사지, 미용실 등은 물론이거니와 미술관과 박물관도 닫았다. Hong Kong Museum of Art (HKMOA)가 닫기 전에 중국 시화전과 보티첼리 전을 보고 온 게 다행이었다. 올 가을 HKMOA의 주력 전시회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빌려 온 보티첼리의 작품들이었나 본데 코로나로 인해 관람객도 적고 미술관을 닫아야 하는 기간도 생겨 아무래도 흥행 실패인 듯하다. 몇 안 되는 사람들 틈에서 여유롭게 보티첼리 전을 감상하고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중국 시화전도 둘러보았다. Chih Lo Lou라는 수집가가 기부한 중국 시화들 중에서 몇 작품을 선정하여 "淡泊明志 (Avowal through Withdrawal)"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淡泊明志 (담박명지).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명리를 좇지 않고 뜻 (심지)를 분명히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1]를 차용한 제목의 전시였다. 그중에 한 작품은 Gao Jian (1635-1713)이라는 화가의 그림과 한시가 어우러진 동영상이 어두운 복도에서 흘러나오는데 한자가 어려워 잘 읽을 수가 없어서 영어로 된 해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영어를 꽤 한다고 해도 모국어가 아니니 빨리 흘러가는 자막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나만 그런가? 스타워즈 영화 시작할 때 흘러가는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하는 자막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고작 네 줄의 영어 해석을 완전히 다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짧은 영상을 지켜보았다.
羈鳥戀舊林 (기조연구림)
池魚思故淵 (지어사고연)
開荒南野際 (개황남야제)
守拙歸園田 (수졸귀전원)
The captive bird longs for its home in the grove;
The fish in the tank craves for its former abode.
So I have cleaned up the wilderness south of the village;
Remaining rustic, I have returned to my farms.
- Returning to my farm by Tao Quian (ca. 365-427)
HKMOA에서 만난 도연명의 시 이 영상을 찍어 중국어 과외 선생에게 보여 주며 번역이 잘 된 거냐고 물어보았다. 홍콩 제일의 미술관에서 만든 공식 영상이니 물론 바른 번역이겠지만 한시는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보아도 어미나 어조가 번역가에 따라 좀 자유로운 것 같아서 내가 중국어 원어민이 아니라 놓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선생이 번역이 잘 되었다고 하며 이 사람 매우 유명한데 아냐고 물어서 처음 들어 본다고 했더니 중국에서는 중고등학교 때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이 시인의 시를 달달 외워야 한단다. 이 시인은 벼슬을 하다가 밀려나서 차라리 조기 은퇴를 하자, 하고 시골로 낙향하여 농사짓고 가난하게 살면서 치열한 속세를 떠나 은둔하여 사는 신세에 대하여 많은 명시를 지었다고 한다. 중국어 선생의 설명을 듣고 나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이희승의 '남산골 딸깍발이'를 교과서에서 읽으며 나는 '안빈낙도' '안분지족'과 같은 사자성어를 외웠다. 왜? 명문대에 가기 위해...... 무능한 듯 청빈한 남산골 딸각발이의 삶에서 가난하지만 기개를 잃지 않고 만족하며 사는 삶의 자세를 배우기보다 그것을 네 글자로 함축하면 '안빈낙도'인데 수능 시험에 나오니 외우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남산은 청빈한 양반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관광지이자 부자들이 사는 동네, 재개발을 향한 욕망이 들끓는 동네였다.
바쁜 현대인들이 이 시를 보며 여유를 찾고 욕심을 내려놓고 각자의 마음속 고향을 찾았으면 하는 의도로 기획한 전시 같은데 몇 안 되는 관람객들은 한 작품당 감상 시간이 몇 초를 넘기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휙휙 지나가 버리고 종일 전시장 구석에 앉아 사람들을 감시하는 직원의 코 앞에서만 이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이 직원은 마침내 주입식으로 안빈낙도의 정신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되었을까?)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는 옛 시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홍콩인들을 무심하다 누가 탓하랴.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에 개간할 황무지가 어디 있으며 돌아갈 시골이 어디 있겠는가. 도시 국가 홍콩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태생이 도시인이다. 사람 살기도 비좁아 모든 건물은 하늘로 치솟고 농작물 심을 땅이 없어 거의 모든 농작물을 수입한다. 중국산이 대부분이지만 때로 출처가 의심스러운 중국산에 대한 불신으로 일본산을 고급으로 치는데 처음에 홍콩에 와서는 당황했다. 한국 주부들은 방사능 우려 때문에 일본산 식품을 꺼리는데 여기는 중국산 아니면 일본산이어서...... 어쨌든 그런 형편이니 '속세에서 밀려나 시골에서 은거하며 산다는 개념 자체가 대륙이면 몰라도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와 닿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Tao Quian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뭐야, 도연명이었어? 무릉도원 이야기 '도화원기'를 지은, 그 유명한 도연명이었단 말인가. 원어로 발음을 몰라서 중국어 선생에게 처음 들어본다고 말해서 망신을 자초했구나. 영상에 나온 시는 '귀원전거 (歸園田居)'라는 제목의 시로 그 풀이는 다음과 같다.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못 속 물고기 옛 연못을 생각하는 법,
남쪽 들 언저리에 황무지를 개간하며,
소박함을 지키려, 전원으로 돌아왔네.
미술관에서 나눠 준 팸플릿에 따르면 도연명은 관운이 없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커리어를 일찍 마감하고 낙향하여 은일지사로 돌아가 살았다. 그가 생각하던 천국 '무릉도원'은 결국 소박한 농사꾼들이 사는 시골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피가 끓는 '마음만 청춘'이니 어찌 시골에서 농사짓는 삶에 만족하리오. 오히려 도연명을 동경했지만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 낙천 백거이 (白居易)의 삶이 부러운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심양루를 읊다 (題淳陽樓) -백거이 (白居易)
항상 도연명을 좋아했으니,
시문 속에 담긴 생각이 어찌 그리 높고 깊은가?
또한 위응물도 빼어났으니,
시의 정취가 또한 맑고 한가했다네.
오늘 아침 이 누각에 오르니,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음을 알겠구나.
장강은 차가운 속에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여산은 푸르게 하늘에 의지하고 있네.
깊은 밤 분포에 달이 떠오르고,
새벽 향로봉에 안개가 피어오르네.
맑은 빛과 신령한 기운이,
밤낮으로 그들에게 좋은 시를 짓게 했네.
나에게는 이들 두 사람의 재주가 없으니,
어찌해야 그 사이에 이를 수 있을까?
높은 곳에 올라 우연히 시를 지으니,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강산에 부끄럽도다. [2]
도연명의 재주가 본인에겐 없다고 한탄하고 자신의 시가 강산에 부끄럽다는 백거이지만 오히려 이런 겸손함이 얄미울 정도로 그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명석하여 5, 6세에 시를 짓고 29세에 진사과를 합격하고 36세에 한림학사라는 국가의 문서를 관장하는 중요한 자리에 오른다. 그때에 자기가 나이도 적절하고 관직도 적절하다고 삶에 만족하며 지은 시가 '송재자제 (松齋自題)'이다.
송재자제(松齋自題)
非老亦非少 (비노역비소)
年過三紀餘 (년과삼기여)
非賤亦非貴 (비천역비귀)
朝登一命初 (조등일명초)
才小分易足 (재소분이족)
心寬體長舒 (심관체장서)
...
書不求甚解 (서부구심해)
琴聊以自娛 (금료이자오)
夜直入君門 (야직입군문)
(晩歸臥吾廬 (만귀와오려)
(形骸委順動 (형해위순동)
(方才付空虛 (방촌부공허)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다
삼기 (서른여섯)를 지난 나이
천하지도 않고 귀하지도 않다
일명을 갓 얻어 조정에 올랐으니
재주 작아 분수 차기 쉽고
마음 넉넉하니 몸도 길이 느긋하다
...
책은 심해를 구하지 않고
거문고로 짐짓 스스로 즐긴다
밤에는 숙직하여 군주의 문에 들어가고
느지막이 돌아와 내 집에 눕나니
형해는 천리의 움직임에 내맡기고
방촌은 늘 공허하게 둔다 [3]
참으로 부러운 팔자다. 서른여섯이란 나이가 늙지도 않고 젊지도 않다고 여긴 모양인데 나에게는 너무나 젊게 느껴진다. 젊은 나이도 부럽고, 관직도 나이에 비해 높이 올라가서 그럴싸한 타이틀을 단 것도 부럽고, 조정으로 출근하는 것도, 퇴근해서 돌아와 누울 '자가' 주택이 있는 것도, 책을 많이 읽어도 그 뜻을 지나치게 알려고 집착하지 않는 여유도 부럽다. 무엇보다 소나무가 보이는 서재에서 이 시를 지었다는 제목을 보니 서재가 있는 것이 부럽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이제껏 내 서재를 꾸밀 수 없는 작은 집에서만 살았는데 (방이 남는다 해도 그 방은 아기방이 되거나 남편의 재택근무용 오피스가 되었다) 거실 한편에 놓은 책상이나 주방 식탁에서 애가 깨기 전 새벽에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늘 한탄하곤 했다. 내가 뛰어난 작가가 되지 못함은 서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을 들은 내 동생이 뼈 때리는 대답을 하긴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말 들어봤냐고...... 장소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 뛰어난 사람은 감옥 안에서도 명문을 쓰지만 나는 범인이니 서재가 필요한데, 뛰어난 작가는 아니더라도 성실하게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에게 소나무가 보이는 서재만 있었더라도!
그러나 백거이의 뛰어남은 젊은 나이에 명문을 생산해 낸 것에 있지 않고, 나이를 더 먹고 관직이 올라가도, 때로는 자리에서 밀려나기도 하며 부침이 있는 삶을 살았어도 상황에 관계없이 만족하는 마음을 잃지 않은 데 있다. 그에게서 소나무가 보이는 서재를 앗아가도 명시가 나오지만 나에게는 소나무 서재가 주어져도 이 강퍅한 마음을 어찌하지 않는 한 하찮은 잡문도 나오기 힘들 테지.
수졸귀전원 (守拙歸園田)하고 싶지만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삶.
송재자제 (松齋自題)하고 싶지만 자족하는 내용의 시를 쓸 서재가 없는 삶.
'나에게 고향을 찾아 주오, 소나무가 보이는 서재를 주오!' 바라기만 하는 삶.
지금 이 졸렬한 삶이 내가 직시해야 하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이다.
알면서도 초라하고 부러운 것이 많은 밤이다.
[2] <백거이 시선>, 백거이 지음, 정호준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