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내 중국어 모임

2020년 12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홍콩에 살지만 여기를 떠나면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광둥어 대신 중국 본토에서 쓰는 북경어를 배우고 있다. 중국어 과외 선생에게 내가 한국에서 오래전 중국어를 배울 때 썼던 교재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국으로, 프랑스로, 스위스로 십여 년 간 들고 다니다가 여기까지 갖고 온 게 있는데 그걸 써 보면 어때? 하고 꺼내 보였더니 깜짝 놀라며 왜 들고 다녔냐고 한다. 그러면서 이 교재도 좋지만 자기가 쓰는 게 있다며 다른 교재를 추천해서 아쉽게도 십여 년 간 들고 다닌 보람 없이 나의 오래된 중국어 책은 다시 책꽂이 행이 되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들춰 본 책에 적힌 필기에서 회사 회의실의 공기와 그때 그 중국어 모임 멤버들의 얼굴, 어린 선생님의 말투까지 한꺼번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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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회사에서는 자유롭고 개성적인 구성원들을 억누르면 안 되고 재미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서 직원들의 취미 생활과 자기 계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사장의 의지로 내가 다닌 회사에서는 금요일 오후는 팀 별로 영화나 공연을 감상하기도 하고 주중 저녁에는 외국어 교육을 시켜 줬었다. 세계적 IT 기업처럼 건물 한 층을 게임룸으로 만들어 준다든지 실내에서 세그웨이나 킥보드를 타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미친 듯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개발을 하는 그런 풍경은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유롭고 재미있고자 노력하는 회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미로 사내 중국어 모임에 들어가 중국어를 배웠는데 아직 머리가 잘 돌아가는 20대 때니까 꽤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만 우리 층 실장님이자 상무님이 나와 같은 중국어 수업을 듣는 바람에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중국어 숙제를 밀리기 시작한 상무가 수업 도중 대답을 곧잘 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에게 다 같은 초급반인데 너는 왜 잘하냐고 물어보았다. '아, 고등학교 때 제3 외국어로 중국어를 해서 조금 기억이 나서 그래요'라고 대답하자 그가 무슨 고등학교에서 제3 외국어까지 배우냐고 물어보아서 외고를 나온 걸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외고-학부 영문과-석사 미국 유학파'라는 내 학력을 알게 된 상무님은 나를 언어 천재로 인식해 버리고 말았고 그때부터 나는 "너는 금방 하잖아, 니 숙제하면서 내 거까지 적어 줘"라는 말 한마디로 상무님의 중국어 숙제 셔틀이 되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어린 중국어 선생님이 숙제를 안 해 왔다고 상무님을 혼낼 것도 아니고, 사내 취미반 활동이 상무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자기 안에 쌓이지도 않는데 나에게 중국어 숙제를 대신시켰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내 책과 그의 책을 나란히 펼쳐 놓고 답을 두 번 적는 정도의 가벼운 수고만 하면 될 뿐이었으니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중국어 숙제 셔틀을 하며 몇 주가 지나자 이번엔 상무가 개인적으로 듣는 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 숙제를 들고 왔다. 기업 CEO나 연예인, 사회에서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모여서 듣는 과정이니만큼 교재는 최고 수준으로 해야 된다고 구성원의 영어 실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출간하는 아티클을 모아서 수업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이 아저씨들이 장난하나. 그냥 한국말로 된 책으로 할 것이지 웬 하버드야. "야 내가 죽겠다, 일도 많은데 영어로 이걸 읽어 가려니 속도도 안 나고. 너는 금방 하지? 네가 읽어 보고 요약 좀 해 줘라. 대충 해, 일에 지장 안 가게~오케이?" 그렇게 얼결에 나는 그의 중국어 숙제 셔틀에서 대학원 숙제 셔틀로 승진했다.

밤에 자리에 앉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읽고 있으면 야근하는 줄 알고 다가 온 팀장님이 '아니, 하버드에서 나온 걸 읽고 있어? 우리 팀 프로젝트랑 상관있는 거야?' 하고 기특해하면 사실 관련 없는 거니까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하니 팀장은 의아해하며 퇴근하길 몇 차례, 드디어 내가 상무님의 대학원 숙제 셔틀이 된 것이 몇몇 팀원들에게 알려졌다. 회사 옆 지하 식당가에서 점심에 5천 원짜리 메밀국수 하나 사 주고 매주 숙제를 시키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며 대신 화를 내주는 젊은 과장님도 있었고 (아니요, 저도 상무님이랑 단둘이 저녁에 고깃집이나 일식당 갈 생각 없어요, 괜찮아요) '부사장님 대학원 졸업 논문은 우리 팀장님이 써 주신 건데 너는 상무님 졸업시켜 주겠네', 라며 담담하게 일갈하는 경험 많은 현자 같은 차장님도 있었다. 신입사원인 나보다 실 전체를 총괄하는 상무가 훨씬 바쁜 것도 사실, 내가 영어 논문을 그보다 빨리 읽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니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의 숙제를 대신해 주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이 사태에 대해 더 의견이 많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 '너는 금방 하잖아, 넌 잘하니까'라는 그 말에 도취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게 나의 본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나의 여가 시간을 희생시켜 가면서 하는 일이라면 결국은 어느 순간에 끊어내지 못하면 회사 생활에 독이 되는 것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그러다 회사의 해외 진출 업무를 맡게 되어 내가 다른 팀으로 차출되고 나니 상무가 다가와서 말했다. "너 내 숙제해 주기 싫어서 도망가냐?" 완전 100퍼센트의 농은 아니었다. 본인도 그동안 숙제시키면서 그게 맞는 일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니 그렇게 물어본 거겠지 싶어 내심 통쾌했다. 나는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니 어느샌가 그의 숙제가 나의 의무가 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면 나는 도망가는 비겁자 혹은 배신자가 되는 게 의아하긴 했지만.


그런데 그렇게 도망간 글로벌 사업부에서 나는 이제 번역 셔틀이 되었다. 해외 사업을 하게 되면서 방대한 양의 기존 문서 번역이 필요했는데 나의 본 업무는 기획인데 어쩌다 보니 낮에는 기획하고 밤에는 번역하는 '주기야번'의 삶을 살게 되었다. 원래는 외주업체에 돈 주고 번역을 맡겨야 되는 일인데 우리 서비스를 잘 모르는 그들이 해 온 번역이 내부자들이 보기엔 딱 의미가 맞지 않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고 그걸 영어도 하고 서비스도 잘 아는 내가 손보면 '바로 이거야!'라는 임원들의 피드백에 팀장급이 '그래 넌 금방 하잖아'라고 주문을 외웠고 난 정말로 몇백 페이지의 파워포인트를 하룻밤만에 번역해 내는 마법을 부렸다. 나 하나만 밤새면 번역에 들어갈 회사 예산도 아끼고 번역 결과물의 퀄리티는 더 좋고 모두가 만족하니 그냥 이번만 해 주지 뭐,라고 쉽게 시작했는데 그게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엔 나는 경력이 너무 없었다.


지나고 보니 '넌 금방 하잖아'라는 말이 가진 강력한 힘에 나는 매 번 기꺼이 굴복했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이 아니라 심지어 주일학교 교사를 해도, 봉사 활동을 해도, 집안일을 해도 내가 하면 금방이니까, 나에겐 너무 쉬우니까, 저 사람이 나보고 잘한다 하니까, 늘 남의 짐을 하나씩 더 졌던 것 같다. 조약돌 하나씩 빼서 봇짐 속에 넣다 보면 어느새 주머니에 구멍 나는 것을 모르고 나는 깜냥도 안 되면서 '그래 여기에 넣어! 작은 조약돌 하나쯤이야' 하면서 기꺼이 나의 주머니를 열었다. 그 짐들이 무거운 무게로 내 주머니를 찢고 내 안의 인내와 친절이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 바닥을 드러내면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싶어 수치를 느꼈다. 큰 수레를 하나 장만해서 남의 짐을 다 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내 그릇을 키우기 전에는 거절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나이 마흔이 넘고 나서야 깨닫는다. 칭찬받고 싶어 안달 나 잔뜩 열어젖힌 욕심 주머니의 주둥이를 좀 오므려야지. 칭찬과 함께 버거운 책임도 들어온다. 버겁지 않은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 분량만큼만 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기를, '넌 금방 하잖아'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 내 안의 교만을 털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12월의 첫날이 되고 이 해괴한 2020년도 다 갔구나, 하니 문득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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