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보편적인 이야기
넷플릭스 '홍콩 남녀' 감상기
도시 이름이 제목에 들어갔거나 도시를 주요 모티브로 하는 영화치고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담아낸 영화는 드물다.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뉴욕의 가을', '미드나잇 인 파리', 서울에서 올 로케한 태국 영화 '헬로 스트레인저'까지 이 영화들은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도시의 정형화된 이미지들을 나열하다가 몇 개의 로컬들만 알 법한 정보를 끼워 넣고 충분히 리얼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홍콩 남녀'를 보는 게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알아가는데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드라마를 꼭 무슨 도움을 받기 위해서 보는 건 아니니까 일단 보기 시작했다. 12개의 단편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였는데 일단 든 생각은 '한국 배우들이 참 잘 생겼구나'하는 거였다. 한국은 남자 배우들도 피부가 도자기같이 매끄러운데 홍콩 배우들은 그렇지 않아서 한류가 왜 아시아에서 이렇게 인기 많은지 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호흡이 짧은 단편 안에서 기승전결을 다 보여 주느라 배우들의 연기가 과장되고 어색할 때가 있는 것도 단점이었다.
피부가 안 좋아서 한류 스타들의 위엄을 깨닫게 만든 캘빈 배우들의 외모와 과장된 연기 같은 단점을 제하면 의외로 드라마의 메시지는 묵직하고 던지는 질문들이 심오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텔레파시스트'는 거짓말로 성공과 사랑을 이루려고 한 남자의 이야기다. 캘빈은 보험 설계사인데 영업 일도 시원치 않고 여자 친구와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 문제로 싸우고 헤어지게 된다. 여자 친구가 고양이를 찾기 위해 동물과 텔레파시를 통해 교감하는 능력이 있다는 텔레파시스트 (혹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큰돈을 지불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텔레파시스트 행세를 하기로 한 캘빈은 거짓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이런저런 임기응변으로 동물의 마음을 읽어내는 척하며 명성을 얻고 승승장구하다가 동창회에서 첫사랑 위야를 만난다. 그는 위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캘빈의 거짓을 꿰뚫어 본 위야는 큰 실망을 하고 그의 마음을 거절한다. 그때 주변에 있다가 캘빈을 알아보고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걸 도와 달라고 말하는 캘빈의 팬들에게 위야는 이렇게 쏘아붙인다.
"강아지가 자던 침대가 무슨 색인지 물어보세요. 만약 틀린다면 그 강아지의 생물학적 구조가 이상해서 교감에 혼선이 생긴 거예요. 아, 강아지 이름도 물어보세요. 강아지 이름이 틀리면 강아지가 자기 이름을 싫어해서 스스로 바꾼 걸 거예요. 강아지를 못 찾는다면 그 강아지가 너무 긴장해서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몰라서 그럴 걸요. 네 기사를 읽고 배운 대로 말했는데 어때, 괜찮았어?"
이 대사는 한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선악의 명확한 구분은 촌스럽고 1차원적인 것이라 여겼다. 참인 듯 거짓인 듯한 명제, 선인 듯 악인 듯한 행위, 못 만든 척하는 B급 영화, 현자인 듯 바보 같은 사람에게 끌리고 그런 회색지대에 예술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며 이도 저도 아닌 것들에 넌덜머리가 나서 불행해도 좋으니 진리를 알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진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 역시 회색지대에 있다. 고통은 실재하는데 고통의 원인은 무수히 많아 딱 하나를 꼽을 수 없고 고통 끝에 있을 결과는 아직 보이지 않아 삶은 혼란스럽다. 혼란에도 불구하고 진리 추구를 포기하진 않았다. 다만 이 회색지대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목소리를 -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연단되는 과정에 뜻이 있다고 변명하고, 상심하는 영혼에겐 위로보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책망하는 - 분간하고 싶다. 또한 내가 내뱉는 말들이 읽을 수 없는 남의 진심을 아는 척, 세상사에 통달한 척하는 거짓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홍콩 남녀'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 '이층 침대'는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이야기였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과 주택난이란 현실을 배경으로 결혼해서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형제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사기를 당해 결혼 자금을 날려 먹어 독립하지 못하고 이층 침대의 아래층 침대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밤마다 위층 침대의 형 부부는 시끄럽게 굴고 최소한의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암담하지만 월세방을 구해서 나갈 순 없다. 그러면 형한테 지는 게 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서로 경쟁심이 강했던 형제에게 아버지는 선언한다. 먼저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쪽에게 집을 물려주겠다고. 그때부터 주인공의 고민이 시작된다. 사실 그는 불임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착한 친구 장뤄원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 자기 대신 아내와 동침해 달라고. '설마 친구의 아내와 자겠어?' 반신반의하며 지켜보았는데 진짜로 그 일이 벌어졌다. 너무 자극적인 설정에 실망해서 계속 드라마를 봐야 하나 싶었는데 자괴감에 빠진 주인공의 대사가 내 마음을 쳤다.
왜 난 집 살 돈도 없을까? 왜 월세 낼 돈도 없지? 허름한 집 하나 때문에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해?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많은 도시의 청춘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왜 난 집 살 돈도 없을까? 왜 월세 낼 돈도 없지? 왜 전세 자금이 없지? 왜 등록금이 없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왜 삶이 나아지지 않지?' 아무리 개인이 발버둥 쳐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부조리는 지속되고, 급기야 어떤 개인은 부조리에 편승하기로 작정한다. '어쨌든 상관없어, 집이 생기잖아!'를 외치며 아내와 친구를 동침시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역시 어리석은 욕망의 결과는 서글픈 파국이다. 반인륜적인 행위를 통해서라도 갖고 싶었던 집을 물려받았지만 그의 삶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주인공뿐 아니라 그의 형도 불임이어서 같은 부탁을 마음 약한 친구 장뤄원에게 했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 형의 아이나 동생의 아이나 장뤄원을 똑 닮았던 것이다.
친구의 아내와 동침하는 장뤄원 홍콩의 집값이 미쳐서 여기 젊은이들만이 이렇게 미친 짓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쨌든 상관없어, 논문이 생기잖아!'를 외치며 연구 주제에 타협했던 순간. '어쨌든 상관없어, 지금 외롭지 않을 수 있잖아!'를 외치며 무의미한 교제를 끊어 내지 못한 순간. '어쨌든 상관없어, 타이틀이 생기잖아!'를 외치며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는데 명함에 연연했던 순간. 그런 순간들에 나는 얼마나 도덕적이었나? 얼마나 나 자신에 솔직했나?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는 바람에 모두가 불행해져 버린 지옥을 책임지지 않는 친절한 악마에 내 영혼을 저당 잡혔던 적 없다고 할 수 있나?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라고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가 되고 싶다는 아우성이 처절해서 자꾸 듣게 되는 발라드가 있다. 비틀스의 '이매진'이나 '예스터데이'같은 보편적인 노래, '바로 그 노래'가 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아름다운 가사에 비해 멜로디가 좀 아쉽다. 그래도 너무나 평범하고 뻔한 노래가 되어 이별의 때에 선명하게 떠오르고 싶다는 그 가사가 특별해서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은 노래다. 드라마 '홍콩 남녀'를 보면서 나는 그 노래를 떠올렸다. 이 드라마는 홍콩이라는 한 도시에 사는 어떤 남녀들만의 특별한 이야기인 척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보편적인 욕망과 보편적인 관계, 보편적인 삶의 끝에 있는 보편적인 심판을 홍콩의 코드로 풀어낸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1편부터 12편까지 어느 에피소드쯤에 서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