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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Feb 10. 2021

쟁기질하며 영그는 꿈

브뤼겔 '이카루스의 추락'에 얽힌 생각

 작년 봄, 아직은 인류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침략자에 어찌 대항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삶을 정지시키고 만 락다운 기간에 유튜브의 미술관 투어 영상들을 보는 게 큰 낙이었다. 주요 전시회들이 취소되자 많은 미술관들이 평소 같으면 입장료를 받고 보여 줬을 명화들을 수준 높은 해설까지 곁들여 방구석 가이드 투어를 해 주었다. 어쩌면 코로나의 몇 안 되는 순기능 중 하나가 순수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본 영상 중에 네덜란드의 민중 화가 브뤼겔의 작품을 해설한 벨기에 왕립 미술관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장은 이 영상에서 직접 해설을 하면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뤼겔의 작품으로 '이카루스의 추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60)'을 꼽는다 [1]. 사실 이 작품은 오늘날에 와서는 대가 브뤼겔이 그렸는지 그의 아들이 그렸는지 의견이 분분해서 그림 옆에 작가명이 물음표 '?'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뛰어남과 현대성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므로 영상 속의 관장은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제목은 익숙한 그리스 신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차용했는데 언뜻 보면 이카루스를 발견하기 힘들다. 일단 후경에 보이는 것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중해 마을의 풍경이지만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역사적으로는 아직도 흑사병을 겪고 침략 세력과 전쟁을 치르던 시기임을 고려해 보면 마을의 모습은 신화적이고 역설적이다. 이 그림 속 기묘한 평화에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텅 빈 거리는 고요했던 2020년의 봄이 겹쳐진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작품의 가운데에는 밭을 가는 말과 농부가 있다. 제목은 '이카루스의 추락'인데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일상의 노동 장면인 것이다. 밭은 구불구불한 산비탈을 내려가며 이어져서 그림을 보는 이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좌측 하단을 향해 움직이는데 재미있게도 브뤼겔은 이카루스를 그림의 우측에 숨겨 놓았다. 보이는 대로 본다면 우리는 이카루스를 발견할 수 없다. 시선을 거둬 의식적으로 찾아야 겨우 바닷물에 처박힌 이카루스의 두 다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카루스의 추락 (브뤼겔, 1560) 출처: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속담에 '사람이 죽어도 쟁기질은 쉴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브뤼겔은 '네덜란드 속담 (1559)'이라는 그림에서 네덜란드의 속담 85개를 한 장면으로 담을 정도로 속담을 좋아했는데 사람이 죽어도 쟁기질은 쉴 수 없다는 말이 그에게 매우 큰 영감을 준 모양이다. 옆에서 이카루스가 죽어 가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에 뿌리박고 살아 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메시지를 이 그림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은 몽상가는 등을 돌린 채 쟁기질을 하는 농부를 보면 초조해진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이카루스가 저기에 있는데! 지금이라도 뛰어가면 아직 빠지지 않은 두 다리를 붙잡고 건져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마치 내가 쟁기질을 하는 동안 나의 못 이룬 꿈이 바닷속에 수장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저려 왔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이카루스를 보지 못한 농부는 그렇다 쳐도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은 충분히 이카루스를 보고도 남았을 텐데 구해주기는 커녕, 이카루스가 빠지면서 출렁이는 물살로 인해 물고기가 도망갈까 봐 낚싯대를 꽉 쥐고 있는 모습이다. 나 역시 혹시 나를 건져 줄지 모른다고 기대했던 기회들이 나에게 낚싯대를 던져 주지 않아서 깊은 실망의 바다에 빠져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고기 잡는 사람의 무심함이 야속하다. 심지어 억울하기까지 하다. 꿈을 꾼 죄, 감히 태양에 다가가려 한 죄, 하늘을 날고 싶었던 죄가 추락과 사망에 이를 정도로 큰 죄란 말인가? 


 영화 '타짜'에서 건달 캐릭터 곽철용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하는 대사 중에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 깡패가 되는 거야!"가 최근에 유행어가 되어 온라인에서 자주 쓰였다. 소시민인 나도 가끔은 인생에 억지를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아, 나도 꿈이 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내 꿈을 짓밟으면 나도 막 나가는 거야!" 당장의 의무를 내팽개칠 거라고 협박해 봤자 그 날 저녁밥을 배달음식으로 때운다든지 다림질하지 않은 옷을 입고 나가는 남편을 모른 척하는 것뿐이지만.


 고단하고 힘들어도 날개를 만들고 밀랍으로 이어 붙여 하루 종일 비행 연습을 하는 동안 배를 곯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비록 추락한다 할지라도 내가 한 때 태양을 똑바로 바라보았노라, 거기 바로 그 직전까지 무모하게 가 보았노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당당할까. 그런데 현실은 매일 반복되는 쟁기질의 연속이라 날개를 만들고 비행 연습을 할 시간이 없다. 같은 자리에서 동동거리느라 태양의 목전까지 갈 수 없다. 오늘도 온라인 미팅 시간에 애를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넷플릭스를 틀어 주면서 죄책감을 한 보따리 느끼고, 미팅이 끝나서 TV를 끄면 울고불고 난리 치는 애를 혼내고 달래면서 이게 다 코로나 기간에 TV를 너무 많이 보여 준 내 탓 같아 자책한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쓰고 싶은 글이 머리에 있는데 밤이 되면 이도 닦지 못한 채 기절했다가 아침에 눈 뜨면서 '아 또 그냥 자 버렸네, 어젯밤에 할 일이 있었는데!' 후회하는 일상의 반복이다.


 꿈이 추락하는 것도 모른 채 매일 밭 가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절망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고맙게도 브뤼겔은 농부의 뒤에 목동과 양치기 개를 그려 넣었다. 목동의 눈은 저 하늘을 바라본다. 목동의 시선을 통해 액자 밖으로 세계가 확장되면서 16세기에 그려진 그림이 현대성 (modernity)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이 그림에서 목동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목동을 통해 브뤼겔은 이 그림 속의 이야기가 다가 아니고 알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쟁기질을 하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저 위에 있다고 힌트를 남겨 준다. 그러고 보니 이카루스의 버둥대는 두 다리가 피어 난 모양이 수면을 뚫고 나오는 새싹 같기도 하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끊임없이 쟁기질하느라 꿈을 묻고 살아가야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밭 간 땅에 나의 이카루스는 어느새 심어져 조심스럽게 움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겨울날이다.


[1] The « Stay At Home Museum » – Episode 2 : Bruegel, by VISITFLANDERS

https://youtu.be/TaoXJUPTS0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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