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내리는 눈 Jan 26. 2021

'칭찬 미팅' 부작용

 "큰 일이야. 할 말이 없어."


 점심 식탁에서 남편이 한숨을 푹 내쉰다. 조금 이따가 같은 부서 사람들끼리 서로 칭찬을 하는 온라인 미팅을 갖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친하지 않고 잘 모르는 사람을 칭찬하라고 정해 주어서 할 말이 없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자 부서원들끼리 서로 얼굴 본지도 너무 오래되고 단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높으신 양반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무작위로 짝을 정해서 서로 칭찬하는 모임을 가져 보자고...... 결재하는 것 말고는 출장이나 회의 참석이 주요 업무였던 상사가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지자 심심해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계획한 거 같다고 남편은 투덜거렸다.


 "누구를 칭찬해야 하는데?"

 "걔 있잖아, 저번에 일 시켰는데 3주 동안 연락도 없이 안 한 애."


 남편은 좀처럼 아랫사람을 쪼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래도 너무하다 싶어 데드라인이 임박해서 왜 일한 내용을 보내지 않냐고 이메일로 독촉하니 자기가 코로나 걸려서 회복 중이라고 했던 직원이 있었다. 코로나 걸린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 없으니 알았다고 잘 쉬라고 한 후 결국 남편이 그 직원이 했어야 할 일까지 다 해서 일을 마무리했던 기억 외에는 별로 그 사람과 엮인 일이 없어서 남편은 칭찬거리를 찾지 못해 난감해했다.


 "그럼 아픈 와중에도 묵묵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 했다고 해 주면 되잖아. 비록 먼저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았고 일도 전혀 하진 않았지만 코로나 걸렸다가 회복한 게 장하니까."

 "걔가 코로나 걸렸던 거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사생활 정보인데 말하기 좀 그렇지."


 결국 남편은 몇몇 친한 직원들에게 SOS를 쳤다. 내가 스위스를 떠난 후 온라인으로만 그 사람과 일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너희가 같은 사무실에서 부딪히면서 느끼기엔 어떠냐, 칭찬할 만한 성격이나 사건 같은 것이 있으면 좀 알려 달라고 했더니 다들 말끝을 흐리면서 '생각해 보고 알려줄게' 하고 답이 없다고 한다. 그는 정말로 칭찬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험담이 되니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서원들의 마음 씀씀이, 혹은 적을 만들지 않는 생존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영리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남편은 평소 그 사람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고 살지 않다가 오히려 이번 기회로 인해 '얼마나 일을 못하고 장점이 없으면 다들 말을 안 해 주겠어' 라며 그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굳히는 듯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상사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점점 '칭찬 미팅'으로 인해 상대방의 단점만 느끼게 되는 블랙 코미디였다. 마치 미국 시트콤 '오피스'의 한 장면처럼.


미드 '오피스'의 한 장면. 출처 판도라 TV

  내친김에 남편은 인사 평가에 대한 불만도 쏟아 놓는다. 연말 평가 시 동료 입장에서 제삼자 평가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다들 미국인이 써 주길 바란단다. 왜? 미국인은 사소한 것도 찾아내서 오버하면서 칭찬을 잘해 주니까. 반면에 무뚝뚝한 동유럽이나 독일인이 걸리면 무미건조하게 기술하고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칭찬에 인색하다. 그중에 최악은 동양인인데 자신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도 겸연쩍어하고 남에 대한 칭찬도 익숙하지 않은 한중일 직원들은 'He is good.' 한 줄 쓰고 말아서 그들에게 평가당하는 직원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정말 좋다고 생각해서 좋다고 한 줄 쓴 건데 읽는 사람에겐 구체적으로 칭찬할 게 없어서 그렇게 쓴 거 같아 보이는 평가이니 말이다. 이런 문화 차이로 인해 동료 평가의 실효성이 떨어져서 이제는 다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항목이 되었지만 그래도 관행적으로 인사 평가에 껴 있어서 직원들에게 귀찮음만 선사하고 있다. 모두가 칭찬은 듣고 싶어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객관적이라 미국인처럼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하지 않는다는 유럽인들의 이 오만함을 어찌할꼬.


 오후에 온라인 칭찬 미팅을 무사히 마친 남편에게 저녁 식탁에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칭찬할 게 도무지 없는 사람에게 어떤 칭찬을 했냐고.


 "그냥 뭐, 성실하다, 남을 잘 도와준다, 힘든 상황에서도 잘해 낸다, 블라블라 (blah blah)했지 뭐."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어떤 칭찬을 받았어?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냥 뭐, 성실하다, 남을 잘 도와준다, 열심히 한다...... 이러던데?"


 맙소사. 실력 없고 무책임한 직원에 대해 억지로 한 칭찬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칭찬을 받아서 남편은 전혀 기분이 좋은 것 같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칭찬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한 말도 아닌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그래도 자기는 진짜로 성실하고 진짜로 남을 잘 도와주잖아."

 "아, 몰라. 다 헛소리야." 


  집에 일을 갖고 와서 밤을 새워서라도 다 해 내고 남의 일까지 다 해 주는 바람에 저녁 육아에 참여하지 않을 때도 있어서 가끔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될 정도로 성실한 남편이기에 '성실하다, 남을 잘 도와준다, 열심히 한다'는 적절한 칭찬이었건만, 모두가 서로에게 '성실하다, 남을 잘 도와준다,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돌려 막는 바람에 그 칭찬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져 버린 형국이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이렇지 않던가. 100만큼 한다고 100을 다 인정받으리라는 보장 없고, 100을 한 사람이나 1을 한 사람이 같은 보상을 받는 게 억울하다 불평해 봤자 주는 사람 마음인 것을. 세간의 평가란 이렇게 기준 없이 흔들리는 얄팍한 것이라 거기에 휘둘려 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만 확인시켜 준 '칭찬 미팅'이었다. 


 나라도 뻔하지 않은 칭찬을 찾아내서 남편에게 해 줘야 하나? 그런데 나 역시 칭찬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쑥스러운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앞으론 야근하지 말고 저녁에 애나 잘 씻기고 놀아 주라고, '회사에 충성해 봤자 소용없잖아!'라고 아무 말이나 했는데 후회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 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