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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Aug 25. 2021

원상복구의 늪

다시 스위스에서

 다른 업계에서도 쓰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인터넷 회사를 다닐 때 흔하게 쓰던 말이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장벽에 부딪히면 Plan B 정도가 아니라 C, D, E... 한 Plan Z까지 대안을 준비해서 일을 하다가 막바지에 팀장님의 한 마디로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되는 경우에 등장하는 말이다.


 "그냥 원복해!"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말은 아무도 신입사원인 나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듣는 순간 그 뜻을 알 수 있고, 한 번 들은 후에는 업계의 베테랑 흉내를 내고 싶을 때 쓰게 되는, 입에 착 붙는 단어였다.


 원. 상. 복. 구.

 줄여서 원복.


 기획자가 고심해서 구상한 스토리보드대로 사이트가 구현이 안 될 때 개발자와 씨름하며 이렇게 변경했다가 저렇게 변경했다가 하는 동안, 윗분들이 한 마디씩 거들고 그때마다 점점 하나씩 기능과 페이지가 추가된다. 어느새 프로젝트는 '우리도 구글이나 트위터, 핀터레스트같이 깔끔하고 가벼운 서비스를 론칭해 보자!'던 기획 의도를 벗어나 각종 버튼을 덕지덕지 단 무거운 포털 사이트 2탄이 되어 버린다. 이에 절망한 기획자와 개발자가 회사 욕을 실컷 하고 술도 실컷 마시며 방황하고 있으면 팀장님이 결단을 내리시는 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 해 봤어도, 결국은 원안이 제일이더라. 내가 다 설득하고 책임질 테니 원래대로 가자. 내일까지 할 수 있지?"


 처음에는 그런 결정이 나면 허탈했다.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바꿔 보느라 허비한 시간은 뭔가? 안 되는 걸 되게 하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달래기도 하고 읍소하기도 하면서 억지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라고? 애초에 내가 안 된다고 했었잖아. 그때는 나 따위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들 뜻대로 변경해야 할 수백 가지의 이유를 대더니 이제는 그 이유들이 다 사라진 거야? 돌고 돌아 제자리라니...... 게다가 내일까지라니 이 말도 안 되는 데드라인은 뭐냐고!

 

 허탈함, 좌절감, 약간의 분노가 지나가고 나면 무기력과 의욕 없음의 상태가 찾아온다. '란대로 열심히 해 봤자 뭐해? 어차피 나중에 원복 할 것을. 너무 많이 나가지 말자. 원복 할 때 힘드니까 대충 여기까지만 바꿔. 에휴, 원안대로 할 거였으면 벌써 몇 달 전에 다 끝냈겠다. 아, 애초에 이 회사는 왜 들어왔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가 나중에는 불평의 수준이 거의 '열심히 살아서 뭐해? 이럴 거면 왜 태어났나?' 수준으로 확장될 지경이었다. 술을 너무 마셔 위장 버리기 전에,  욕을 너무 해서 돌이킬 수 없는 구업을 쌓는 죄인이 되기 전에 나를 구해 준 줄 모르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나를 갖다 놓는 운명을 원망할 때가 있었다. 버려진 시간과 함께 내 꿈과 포부, 패기, 열정도 같이 버려졌던 걸까.



 그러나 살다 보니 회사에만 원복의 늪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벗어나고 싶어 다른 회사를 가 봐도, 회사가 이상한 건가 싶어 학교를 가 봐도, 학교도 그 지경이니 나라가 이상한 건가 싶어 다른 나라를 가 봐도 원복의 늪은 어디에나 있었다. 뚜렷한 목표와 방향 없이 흔들리면서 이것저것 무위로 돌아갈 수고를 하고 그 수고를 인정받지 못해서 낙담하고 시간은 이만큼이나 흘렀고 나는 이만큼이나 늙어 있고 에너지는 이만큼이나 썼는데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은 채 제자리인 늪에서 짙푸른 이끼 같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게 인생인 걸까? 어차피 죽을 걸 알면서 살아 내듯이 우리는 먼 길을 떠났다가 빈 손으로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야만 하는 걸까.


 '풀만 먹으면서 살을 빼 봤자 지금보다 10kg 덜 나가던 시절의 내가 김태희처럼 미인이 아니었는데 뭐하러 빼.'


 '글 쓰는 일이 업이 될 수 있을까, 작가가 되려면 20년, 아니 최소한 10년 전에 도전했어야지. 이제 와서 어린 시절의 알량한 글재주 하나를 믿고 선회하기엔 너무 늙어 버렸잖아. 이럴 거면 뭐하러 오랜 시간 동안 회사 다니고 박사 따느라 고생한 거야. 그리고 이제는 글재주라는 게 나에게 있는지도 의심되는 걸.'


 '지금 이삿짐을 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또다시 다 싸야 할지도 모르는데.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 인생 참 피곤하다. 낡고 오래된 싸구려 가구들과 잡동사니들을 왜 소중히 다루면서 풀었다 쌌다 해야 되는 거야.'


 노력하고 도전해 봤자 원점일 것이고 그 원점도 그다지 멋지거나 화려하게 빛나지 않기에 나는 다이어트에도, 글쓰기에도, 이사에도 심드렁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서성이는 동안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분명히 배우는 게 있었을 거라는 위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복이란 것도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과감하게 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의 특권인 것을 몰랐다. 시시한 나의 원래 자리가 긴 여행 끝에 돌아가야만 할 정도로 가치 있는 지점이라고 시간이 말해 주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덮치기 전인 1년 반, 2년 전쯤 쌀쌀한 날씨에 커피로 몸을 녹이면서 글을 쓰기 위해 찾곤 했던 카페에 다시 앉아 있다. 그때는 어디에 부칠지, 누구와 나눌지, 무엇에 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혼잣말처럼 공책에 썼다. 지금은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가 닿을 수 있을까 상상하며 쓴다. 돌아왔다고 해서 그 자리 그대로인 것이 아니구나. 덜 외롭고 더 포근해지고 더 너른 자리로 잘 돌아왔구나. 방향 없이 인생에 휩쓸리며 산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치는 파도에 유연하게 몸을 맡기며 살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방향을 바꾸는 법을 배웠구나. 그냥 그때 했어야 할 내 몫의 일을 한 것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남에게 수고했어, 소리를 듣고 싶었을까. 남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수고한 것이 다 사라지지 않는데 왜 그렇게 생색내고 싶었는지. 1년 만에 다시 찾은 카페의 플레이리스트는 똑같은 재즈 음악인데 다르게 들린다. 브라스 사운드가 반짝거리며 속삭인다.


 웰컴 홈. 지금 네가 있는 곳이 바로 그 자리야.


원복의 유래가 궁금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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