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에 찌들어서 그런지 걱정이 많아 그런지 어느 새부턴가 알람을 듣지 않고도 아침에 일어난다. 부스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데 오랜만에 보는 이름으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다. 못난 제자라 면목 없어 몇 년째 연락을 드리지 못한 박사과정 지도교수가 보낸 메일. 학교 다닐 때는 하루에도 몇 통씩 내가 필요해서 메일 보냈었는데 이제는 그 흔한 크리스마스 안부 인사조차 건너뛰고 기어코 선생님이 먼저 연락하게 만들어 버렸다. 노교수의 건강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던 터라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명종 10개가 한꺼번에 울려 대는 것처럼 마음이 시끄럽고 심장이 쿵쾅대서 잠이 확 달아나 메일을 열어 보았다.
내 논문 심사 위원이었던 교수님 K의 부고였다. 2년 전에 생각보다 이른 은퇴를 하셔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때 치매와 암 진단을 받으셨던 듯하다. 결국 어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건조한 문장 속에 지도교수님의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나는 얼마나 못났으면 연락도 생전 안 하는 제자에게 부고를 전하는 일까지 스승에게 떠 안겼을까.
나는 K교수님의 학생은 아니었으므로 그녀와 그렇게 깊은 유대관계를 쌓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톱만 한 성공과 티끌만 한 성취에도 자기 자신의 능력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빚진 부분이 더 큰 게 세상 이치이듯, 그녀로부터 받은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아니,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솔직히 세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세어 보니 너무나 많은 것들을 K로부터 받았으면서 그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지난 2년을 살아온 것이다.
처음 입학했을 때 자기 학생도 아닌데 따로 불러서 적응은 하고 있냐며 따뜻하게 물어 봐 주고 차가 없다는 내 말에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동성은 갖추는 게 좋으니 자전거를 사라고 조언해 주었던 일.
여름 방학에 오랜만에 캠퍼스에서 마주쳐서 인사하니 얼굴을 다 가리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고 깔깔 웃으며 반가워하던 개구쟁이 같은 얼굴. 한국의 프로 메이크업과 사진 촬영 기술의 결정판인 내 웨딩 사진을 보고 잡지에 나오는 모델 같다며 놀라워했던 순진함. 같이 참여했던 학회에서 거하게 저녁을 얻어먹고 숙소까지 걸어갈 때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이 불편해서 잘 걷지 못하는 나를 걱정해서 느리게 내 곁에서 걸어주던 밤. 그녀의 헬스커뮤니케이션 세미나 수업에서 처음 접한 죽음에 대한 소통 연구 주제. 졸업논문 심사 위원으로서 물심양면 나를 도와주고 내 지도교수가 병환으로 부재했을 때 대신 그 몫을 해서 기어코 모자란 나를 졸업시켜 준 영원히 잊지 못할 은혜.
이밖에 많은 격려와 도움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 많은 선의들과 공동의 노력, 어떤 이들의 눈물과 희생의 결과가 겨우 이런 나라는 게 염치가 없어서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고 서서히 은인들로부터 멀어졌던 과거에서 지금나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인연에 켜켜이 먼지가 쌓일 만큼 시간이 지나 하나둘씩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때마다 늘 같은 후회를 반복하면서 나는 역시나 자라지 않고 맴돌고 있다.
괴상한 '금의환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성공하기 전엔 연락하지 않겠다' 했더니만 성공은 언제까지고 요원해서 연락할 수 없다. 2년 전 그녀의 이른 은퇴식 때 동기가 다 같이 감사 인사라도 보내자고 했는데 학계에 남아 성과를 내면서 착실히 살아가고 있는 동기는 감사 카드를 쓸 자격이 있지만 나처럼 대륙을 떠돌며 방황하는 이단아는 한 줄 감사 인사조차 쓸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주저하다가 그만 인사를 보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고마움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의 대가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하는 혹독한 징벌이었다.
K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또 다른 교수가 쓰러져서 뇌 기능이 손상되고 많은 기억을 잃었는데 (이상하게 혹은 당연하게 우리 과 교수들은 정교수가 된 후에도 치열한 경쟁과 실적 압박으로 과로해서 쓰러지는 일이 꽤 있었다) 같이 논문 쓰고 학교에서 주류 세력으로서 친하게 어울렸던 교수들의 이름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유일하게 기억했던 두 명의 이름이 우리 과의 대모 같았던 푸근한 과사무실 비서와 K였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두가 인정했다. "K는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모두에게 따뜻한 사람. 그래서 기억을 잃어도 마음에 남는 이름. 그게 K였다. 정작 그녀가 치매를 앓고 기억을 잃어갔을 때 그녀의 마음에는 어떤 이름들이 남았을까. 감히 나의 이름이 끝까지 남아 있었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녀가 길러 낸 많은 제자들이 얼마나 그녀에게 감사하고 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잊지 않고 떠났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말: 오전에는 K교수님 때문에 눈물 쏟고 오후에는 지인의 출산 소식에 기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하루 동안 생과 사, 인생의 처음과 끝을 목도했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인가 하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어지는 것이 인류의 운명이라고, 인생이 내 귀에 대고 고래고래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을 소통하는 것의 어려움에 관한 글들을 써 보겠노라고 다짐하고 몇 달 전에 선언까지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K를 보내는 이 힘든 마음까지 준비되지 않았지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