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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Oct 11. 2021

헤르만 헤세가 정을 못 붙인 도시

 여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1]'이란 책을 사 왔다. 예전의 나라면 정원 가꾸기나 식물에 관심도 소질도 없어서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책인데 이 책을 산 이유는 일단 그림이 정말 예쁘다. 한수정이라는 작가가 헤세의 글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삽화로 그렸는데 표지에 나온 탐스러운 복숭아나무 (der Pfirsichbaum) 그림이 다 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런데도 책에서 원작자인 헤르만 헤세의 이름, 헤세의 글을 엮은 독일 원서 출판사 발행인 폴커 미헬스의 이름, 번역을 한 안인희의 이름은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은 너무 작아 인터넷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던 점이 아쉽다. 재판을 찍는다면 삽화를 그린 한수정 작가의 이름을 어느 정도 키워서 잘 보이게 편집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산 또 다른 이유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를 감명 깊게 읽지도 않았으면서 혼자 괜히 그를 마음속에서 가깝고 특별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스위스 바젤이란 도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헤르만 헤세의 조부모도 선교사, 아버지도 선교사였다. 부모가 오지로 선교를 나가서 봐 줄 이 없이 유럽에 남은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가 바젤에 있었고 헤르만 헤세의 아버지가 그 학교의 선생이었다. 선교 본부인 바즐러 미션 (Basler Mission) 건물은 오늘날에도 미션가 21번지 (Missionstrasse 21)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건물의 일부는 팔아서 호텔이 되었다. 나는 이 건물의 지하에 있는 작은 방에서 모이는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스무 명 남짓 들어가면 꽉 차는 그 방은 예전에 선교사들의 여행 가방을 모아 두는 방이었다고 한다. 파송을 앞두고 각지에서 모여든 선교사들은 이 건물에서 기대, 걱정, 슬픔, 설렘, 기쁨, 각오 등 갖가지 감정이 뒤섞인 채 뜬눈으로 밤을 보냈겠지. 그들의 여행 가방도 작은 방에서 같이 꼬박 밤을 새웠을 것이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가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비상약, 잠옷, 가족사진, 십자가 목걸이 따위를 담은 트렁크들은 서로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 없이 마지막으로 한 공간에서 밤을 보냈다. 그 방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위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여행 가방들을 모아 놓았던 방에 이제는 각지에서 흩어져 살다가 바젤에 정착한 이방인들이 모여 있다니, 우리가 혹시 100년 전 여행을 떠났다가 타임슬립을 해서 돌아온 여행 가방이 아닐까? 이런 망상.

바즐러 미션 건물.
바즐러 미션 건물 옆에 딸린 기숙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헤르만 헤세 (맨 앞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아이)

 이 교회 건물은 헤세의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해서 헤르만 헤세와 바젤의 인연을 담은 책에서 서문을 제외하면 첫 페이지에 나온다. '헤세와의 바젤 산책 (Spaziergang mit Hermann Hesse durch Basel)' [2]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한 적이 있다. 그것도 서점에 없는 것을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을 해서 오프라인으로 픽업을 했는데 책을 찾으러 갔을 때 내어 준 점원이 무척 반가워하며 나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었다. 알고 보니 남편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 책을 사는 스위스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고 그것도 미리 주문을 해서 사는 한국인은 처음 본다고 놀라워했는데 나 역시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한국 사람 별로 없는 이 동네에 한국 남자랑 결혼해서 사는 스위스 여인이라니, 하필 그 점원이랑 내가 서점에서 마주치다니! 반가워서 더 대화를 이어 가고 싶었지만 다른 손님들도 있고 해서 그냥 나왔던 게 아쉽다. 그 이후에도 자주 서점에 들러서 친한 체하고 싶었는데 왠지 쑥스러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헤세와의 바젤 산책' 책을 볼 때마다 내게 다가왔지만 용기 없어 놓쳐 버린 반짝였던 그 모든 것들이 생각나서 조금 씁쓸해진다.


 다시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책으로 돌아가 보면, '밤나무 (Kastanienbäume)'라는 글에서 흥미 있게 읽은 구절이 있다.


 우세한 나무 종류가 없는 도시나 풍경은 내게는 완전한 이미지가 되지 못하고 언제나 특성 없는 것으로 감정에 남는다. 나는 그런 도시 하나를 알고 있는데, 소년 시절 이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토록 많은 추억에도 그 도시의 이미지는 기차 정거장처럼 낯설고 무심하게 남아 있다. (pp.37)

 

 나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이건 바젤일 거야, 바젤이어야만 해!'라고 속으로 심술궂게 외쳤다. 내게는 바젤이야말로 기차역 같은 이미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커다란 중앙 역이 있고 도로는 전차들이 점령한 아수라장이기도 하지만 홍콩으로 가기 전 3년, 홍콩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돌아와서 또다시 3개월째 살고 있는데도 영 정이 가지 않고 낯설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정착지가 아니라 경유지 같은 느낌. '이 도시가 나에게 무심한 만큼 나도 고대로 갚아 주리라, 아니 더한 무심함으로 살아 가리라' 혼자 오기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적응 못하고 살아가는 내가 패배자 같았는데 대문호 헤르만 헤세도 바젤을 기차 정거장으로 기억한다면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바젤의 문제다. 터가 안 좋은 거여......


 그러나 이런 심술궂은 생각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는 유년기에 5년, 성인 시절에 5년, 총 10년이나 바젤에 살았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을 보낸 바젤을 고향처럼 생각한 청년 헤세는 후일 회고록에서 "나의 바람은 바젤로 가는 것밖에 없었다"라고 쓸 정도로 바젤을 좋아했고 그래서 서점 수습 점원으로 취직해서 튀빙겐에서 바젤로 옮겼을 정도다. 그러니 바젤은 죄가 없다. 어떤 나무는 자갈밭에도 뿌리내리고 잡초는 콘크리트에서도 자기 자리를 만든다. 


 이제 바젤은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초조해진다. 그렇다면 내가 유죄란 말인가. 잡초만큼 강인한 생의 의지를 갖추지 못한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헤세가 말한 그 기차 정거장 같은 도시가 어딘지 꼭 찾아내야겠다는 집착이 생겨 버렸다. 헤르만 헤세의 연보를 뒤져 그가 유년 시절 거쳐 간 도시들을 짚어 간다. 칼브, 괴핑겐, 마울브론, 바트 볼, 슈테펜, 에슬링겐...... 나중에 도망 나온 마을브론 수도원의 기숙학교, 정신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보내진 바트 볼, 슈테펜 정신병원처럼 대놓고 나쁜 기억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아마도 1890~1891년에 살았던 괴핑겐 (Göppingen)이 아닐까 싶다. 합격하면 튀빙겐 신학교에서 무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뷔르템베르크 주정부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헤르만 헤세는 괴핑겐에 있는 라틴학교에 입학했고 큰 문제없이 이년만에 졸업했다. 학대당하고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정신적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낸 도시들조차 어떤 뚜렷한 이미지로 자리 잡은 반면,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학교 생활을 마친 도시에 대해서는 아무 이미지도 갖고 있지 못하고 특성 없이 무심한 것으로 남았다고 하는 헤세의 고백은 의외다. 나무로 대변되는 생명, 짓밟힐 때 더욱더 강하게 추구하게 되는 아름다운 생의 의지, 그것이 없다면 세속적인 성취도 뿌연 허상으로 남는다는 그의 고백에서 난 어떤 메시지를 읽어 내야 하는 걸까.


 헤르만 헤세는 아름다운 여름날 밤나무들이 가득한 슈바벤의 작은 도시를 방문했던 모양이다. 음식점 겸 여관인 '금발 독수리' 주막의 창문 앞으로 밤새도록 붉은색과 흰색 꽃들이 피어 있는 수많은 밤나무들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그 시간을 '경이로운 저녁 시간'이라고 불렀다.


나는 혼자서 창턱에 걸터앉아 여름밤과 가벼운 무더위, 그리고 커다란 양초 모양의 흰색 밤나무 꽃들이 유령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절반쯤은 의식하며 느꼈다...(중략) 하지만 그것이 당시 겨우 여드레 낮과 밤이었을 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백번도 넘게 숲으로 가는 길을 걸었고, 백번도 넘게 장미를 꺾고, 밤나무 도시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백번도 넘는 저녁에 백송이도 넘는 장미들을 준비했다가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우울한 마음으로 어두워지는 거리에 내던졌던 것 같기 때문이다 (pp.45~46).


 집에서 아이 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사슴이 사는 공원이 있다. 거기 사는 사슴들을 보러 아이와 함께 놀러 가곤 한다. 아이는 사슴이 엄마가 주는 풀만 받아먹고 자기가 주는 풀은 안 먹는다고 삐쳤다가 그 토라진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배부른 사슴이 한 번 더 받아먹어 주면 자기 풀도 먹었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지금은 가을이라 공원 안 밤나무에서 밤이 후드득 쏟아져 여기저기 밤송이가 지천이다. 다람쥐가 까 놓았는지 자전거가 밟고 지나가면서 까졌는지 반들반들한 알밤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닌다. 밤을 주워 넣은 아이의 작은 겉옷 주머니가 불룩하다. 어쩌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하나가 떨어지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아이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다시 줍는다. 어느 날은 나랑 주우러 나가지도 않았는데 빨래하려고 보니 바지 주머니에서 알밤이 나와서 물어보면 학교에서 질리안이 선물이라며 줬단다.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다. 사람들은 밤을 주워 사슴에게 주기도 한다. 사슴이 밤도 먹을 수 있는지 몰랐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그것이 겨우 삼 년 남짓한 시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참으로 경이로운 가을날의 오후였다고, 내 생각에는 백번도 넘게 사슴을 보러 가는 길을 걸었고, 백번도 넘게 밤을 주웠고, 백번도 넘게 알밤이 밤송이를 뚫고 나오듯 터져 나오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렇게 바젤을 기억할 수 있을까.



[1]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202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창비.

[2] Spaziergang mit Hermann Hesse durch Basel (2012). Helen Liebendörfer 지음. reinhar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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