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한 나무 종류가 없는 도시나 풍경은 내게는 완전한 이미지가 되지 못하고 언제나 특성 없는 것으로 감정에 남는다. 나는 그런 도시 하나를 알고 있는데, 소년 시절 이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그토록 많은 추억에도 그 도시의 이미지는 기차 정거장처럼 낯설고 무심하게 남아 있다. (pp.37)
나는 혼자서 창턱에 걸터앉아 여름밤과 가벼운 무더위, 그리고 커다란 양초 모양의 흰색 밤나무 꽃들이 유령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절반쯤은 의식하며 느꼈다...(중략) 하지만 그것이 당시 겨우 여드레 낮과 밤이었을 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백번도 넘게 숲으로 가는 길을 걸었고, 백번도 넘게 장미를 꺾고, 밤나무 도시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백번도 넘는 저녁에 백송이도 넘는 장미들을 준비했다가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우울한 마음으로 어두워지는 거리에 내던졌던 것 같기 때문이다 (pp.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