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내리는 눈 Nov 20. 2021

K-아줌마의 수능날 단상

 요즘은 수시라는 입시제도가 생겨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처럼 사회적으로 수능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면 내가 수능 시험을 치른 지 너무 오래되어서 '나 때 수능은 이랬는데 말이야',라고 회고하기엔 수험생 시절과 너무 멀어졌고 그렇다고 해서 자녀가 입시를 앞두고 있는 나이도 아니니 학부형으로서의 관심도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수능날이 되면 경찰차는 지각생을 싣고 달리고, 길거리 아저씨들은 시계를 잊고 온 수험생에게 시계를 빌려 주고, 비행기는 듣기 평가 때문에 안 뜨고, 심지어 주한미군도 작전을 멈추고 수험생들 파이팅하라고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는 등 온 나라가 한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평소엔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댓글들이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만 보다가 어떤 어머니가 수능날 애 도시락에 깜박 잊고 수저를 안 넣어 줬다고 어떻게 하냐고 하는 글에 모두들 걱정하며 '여분의 수저가 고사장에 있을 것이다, 다른 애들한테 빌렸을 수도 있다, 이런 애들이 있을까 봐 우리 애 도시락에 1회용 나무젓가락 여러 개를 싸 줬다', 하는 위로의 댓글들이 달린 것을 보았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할 수가... 심지어 그 집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었는지 종일 신경 쓰였다는 새 글도 올라왔다. 수능날 생판 모르는 남의 아이가 수저가 없어서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시험 봤을까 봐 신경 쓰여 아무 일도 못하는 게 바로 K-아줌마의 마음이다. 한때 K-고3이었고 이제는 K-아줌마인 나도 그 글에 감정이입이 꽤나 되었다.


 사실 나는 숫기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못 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방학을 맞아 한국에 들어가면 한국 핸드폰이 없으니 공항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들어가곤 했었다. 엄마는 버스 안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만 쓰자고 부탁해서 집으로 전화를 해라, 그러면 네가 도착할 때쯤 맞춰서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가겠다, 했지만 나는 그런 숫기가 없어서 1시간 내내 버스 안에서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을 찾다가 결국은 말 거는 것을 포기하고 전화를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심지어 30대 때의 일이다! 그러니 더 수줍었던 고등학교 때였다면 모르는 사람들에게 수저 남는 것 있냐고 말을 건넬 수 없어서 아마 도시락 먹는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수저를 안 넣어 준 엄마에게 심통이 나서 속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손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기분이 나빠져서 점심시간 이후 시험을 잘 못 보고 집에 와서 '엄마 때문에 시험 망쳤잖아!'하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때 예민 보스 고3이었던 나로서는 수저 없는 도시락을 가져 간 남의 집 아이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하긴 시험날 도시락에 관련해선 나도 추억이 있다. 수능 전 날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저녁 먹을 때가 되니 엄마는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영등포에 있는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만 파는 만두를 먹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군말 없이 (그렇게 기꺼이 뭔가 부랴부랴 사 주는 모습을 처음 봄) 저녁에 백화점이 문을 닫기 전에 목동에서부터 영등포까지 운전을 해서 만두를 사다 주었고 난 그걸 먹고 배 두드리며 다시 잤다. 수능 날 도시락은 뭘 싸 줄까 하길래 평소에 제일 좋아하던 메뉴인 케첩 소시지 야채볶음과 시금치 된장국을 싸 달라고 해서 잘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후 대학교에 논술 고사를 치르러 가던 날 점심 도시락을 같은 과를 지원한 우리 반 친구와 먹었는데 그 친구는 엄마가 바빠서 따라오지 못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도시락을 친구와 함께 까먹고 면접까지 보고 집에 가는데 그날 따라와서 옆에서 우리가 밥 먹는 걸 지켜보았던 엄마가 그러는 거다. "네 친구 도시락에 국이 없고 보온밥통이 아니라서 차가운 밥을 국물도 없이 목 막혀서 어떻게 먹을까 안쓰럽더라." 그때의 나는 친구와 수다를 떨며 밥을 먹으면서도 걔 도시락에 국물이 없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무심했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고 나도 엄마가 되어 보니 알겠다. 엄마가 되면 남의 집 아이 도시락이라도 수저가 없으면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차가운 밥을 먹다가 목이 막힐까 봐 국물이 있는지 여부부터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올해의 수능 시험이 쉬웠는지 어려웠는지, 어떤 대학을 몇 점을 받아야 갈 수 있는지, 등급이니 컷이니 이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충실하게 학창 시절을 지냈고 그래서 원하던 학교를 들어갔고 공부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래 했지만 이제는 안다. 수능시험과 대학 간판은 그저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열리는 여러 문들 중 하나의 문일 뿐 그 문 자체가 행복이나 의미 있는 삶과 같은 '있어 보이는' 고차원적인 답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성공과 번영 같은 세속적인 목표에도 도달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 시절은 다만 나에겐 수능 전 날 먼 길을 운전해서 만두를 사 왔던 우리 엄마의 모습, 시험이 끝나고 어둑어둑한 때 교문 밖에 서서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며 울상이 되어 있던 그녀의 얼굴, 언덕길을 올라가는 차의 뒷자리에서 내가 가채점을 하는 동안 표정 관리하며 운전하던 그녀의 뒷모습으로 남았을 뿐이다.

  

 수능 시험이란 화제에 초연한 척하지만 그래도 올해 수능시험 문제를 좀 들여다 보기는 했다. 독일어 콘텐츠를 구독하니까 유튜브 홈 화면에 2022학년도 수능 독일어 풀이 영상이 떠서 한 번 클릭해 보았다. 그런데 문제를 보는 순간 드는 생각. "아, 이것은 K-독어인가!"

 

 외고 독어과를 나왔고 독어권 스위스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이 풀기에 좀 쉽기도 했지만 난이도를 떠나서 문제의 만듦새가 이렇게 깔끔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나 싶었다. 현지에서 B2 독어 능력시험을 보면서 어렵지 않은데 뭔가 좀 형식과 논리가 생경해서 틀리는 문제들이 있었는데 이 수능 독일어에는 그런 문제가 단 하나도 없었다. 문제를 낸 출제자의 의도가 간파되고 어디서 어떻게 틀리기를 기대하며 이런 보기를 넣어 놓은 것 같다는 것까지 보였다. 그래서 모든 질문의 답이 깨끗하게 하나로 딱 떨어졌다. 문법을 넘어선 정서와 문화가 언어에 분명히 담겨 있고 그것이 사고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걸 시험을 치르면 알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내가 미국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강의할 때에도 한국인인 내가 생각하기엔 전혀 어렵거나 헷갈리지 않고 아주 당연하게 답이 보이는 일부 문제를 애들이 어려워하고 제일 완벽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한 학생은 중국계 미국인 학생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도 동양적 사고방식과 서양적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꼈었는데 독어 시험 문제를 보면서도 한국과 독일/스위스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느껴졌다.


 내 독어 실력이 시험 점수 같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늘 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한국에서 시험으로 독어를 배운 나는 이미 늦었으니 포기하고 유럽에서 살아 있는 독어를 배우는 아들 녀석에게 희망을 걸어 보는데 최근 이 녀석이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만 세 살이지만 작년에 홍콩에 살다 왔으니 실상은 이 녀석이 독어를 제대로 배운 건 겨우 몇 달 되지 않는데 그래도 집에서 가끔 '엔트슐디궁(Entschuldigung 실례합니다)'이니 '아우토(Auto 자동차)'니 '페어티히(fertig 끝낸)'같은 단어를 섞어 쓰는데 발음이 예사롭지 않고 현지인 같기에 좀 기대를 했나 보다. 최근 바젤에 사는 외국인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부의 설문지가 집으로 날라 왔다. 내년에 만 4세가 되면 정식 공교육 과정인 킨더가르텐 (Kindergarten 유치원)에 진학해야 하는데 아이가 독어를 어느 정도 하는지 알아보고 독어 실력이 부족하면 킨더가르텐에서 집중 교육을 시켜 주기 위해 미리 조사를 하는 것 같다. 우리 애는 사립학교에서 영어와 독어를 이미 배우고 있고 공립 유치원에 진학할 계획이 없어서 설문지 작성을 미루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3번 경고를 받을 때까지 답을 안 하면 벌금을 물고 자녀 방임으로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데드라인 며칠 전에 설문지를 작성하는데 거기에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해서 아이가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지 확인하는 항목이 있어서 애한테 물어보았다.


 "보 이스트 다스 펜스터? (Wo ist das Fenster 창문이 어디 있지?)"

 "봐스? (Was 뭐라고?)"

 "봐스 이스트 다인 리블링스에센? (Was ist dein Lieblingsessen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봐스?"

 "뷔 그로스 비스트 두? (Wie gross bist du 너 키가 몇이야?)"

 "봐스?"


 이 녀석 독어로 물어보니 독어로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도 못 알아 들어서 모든 답을 '봐스 (뭐라고?)'로 하고 있다.


"허, 얘 봐라. 거울은 영어로 뭐야?"

"거어~우우우울."

"창문은 독어로 뭐야?"

"창! 문!"


 영어 단어를 모르면 r 발음 들어가게 최대한 굴려서 '거어~우우우울'로, 독어 단어를 모르면 무조건 세고 투박하게 강세를 줘서 '창! 문!' 하는 임기응변 능력을 갖춘 걸 보니 이 아이는 뼛속까지 한국사람이 맞는 것 같다. 


 수능 날 인생이 결정되어서 중요한 게 아니다. 수능 시험을 잘 보면 여러분은 나라의 동량재 (棟梁材)가 될 거라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과는 달리 20년 후의 나는 우리나라의 기둥과 들보의 한 귀퉁이도 떠받치고 있지 않은 미미한 아줌마일 뿐이다. 그때 외웠던 단어들과 문법들이 타향살이에서 그럴듯한 방패가 되어 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이 오면 그 시절을 지난 이로서 뭉클해진다.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11월 중순이면 드는 생각들, '또 이렇게 한 해가 갔구나. 난 뭘 했지?' 하는 회의감에 허무해질 때... 뭘 좋아하는지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몰라서 막연하고 답답했지만 그런 고민조차 빈 도화지에 가득한 무한한 가능성이었던 나날들, 실패를 해도 미래에 몇 번의 기회는 더 주어질 거라고 믿었던 순진함과 자신감, 치열하고 뜨겁게 나만 걱정하며 살았던 맘 편한 시절이 그립고 안타까워 그때의 나처럼 보이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금수저 다이아 수저 물고 태어나지 못했어도 도시락에 수저가 없어 밥을 못 먹을까 봐 걱정해 주는 이웃들의 따뜻한 맘을 물고 어제 시험을 본 모든 청춘들이 앞으로 꿋꿋하게 걸어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엊그제 바람이 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