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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Dec 02. 2021

악어에게 동전을 던지지 마시오.

"엄마, 오늘은 뭐하고 놀까?"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묻는 아들의 질문에 당황한 일요일 아침. 요즘 가을 축제, 기차 박물관, 크리스마스 마켓 등 이런저런 곳들을 좀 다녔더니 주말이면 응당 특별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나 보다. 이렇게 아무 계획도 없을 때 가기에 제일 만만한 곳이 시내에 있는 동물원이다. 연간 회원권을 사면 5번은 가야 간신히 손해 안 보는 가격이라 이제까지 안 사고 버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야겠군, 하고 온 가족이 동물원으로 총출동했는데 우리 같이 창의력 부족한 부모가 많은지 동물원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참을 차를 타고 빙빙 돌다가 펭귄 산책 시간을 놓칠까 봐 나와 아들만 먼저 동물원 입구에 내렸다. 바젤 동물원의 겨울철 명물은 단연 펭귄들이다. 겨울에 날씨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10도보다 높은 온도는 펭귄에게 너무 더워서 산책 금지) 매일 아침 11시에 우리를 나와 산책을 하는데 그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추운 날씨에 대부분 다른 동물들은 우리 안에 들어가 꼼짝 않고 있기에 볼거리가 별로 없으니 사실상의 하이라이트는 펭귄이 산책하는 모습이라 11시가 지나 버리면 김이 샐 것 같아서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멀리 가서 차를 대고 오라고 하고 나와 아들만 내린 거다.

바젤 동물원 킹펭귄

 산책을 하는 펭귄들은 황제펭귄 다음으로 큰 종류인 킹펭귄인데 동물원에 세 종류의 다른 펭귄들 - 킹펭귄, 젠투펭귄, 아프리카 펭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들만 산책하는 이유가 있다. 젠투펭귄은 호기심이 많아서 주변에 있는 작은 물체들, 나뭇잎이나 나무 조각 같은 것들을 먹을 수도 있어서 모든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한겨울이 되어 산책로를 청소하기 전엔 위험해서 아직 산책에 합류하지 못한단다. 젠투펭귄이 호기심이 많아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으는 이유는 짝짓기 방식과 관련 있다. 짝짓기 계절이 돌아오면 젠투펭귄은 주변에 있는 돌멩이를 모아 마음에 드는 펭귄에게 둥지를 지으라고 선물로 준다. 반면 킹펭귄은 알을 낳아서 자기 발 위에 올려놓고 품고 지내기 때문에 둥지가 필요 없어서 돌멩이나 나뭇잎, 나무 조각 같은 주변 사물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뭇잎이 쌓여 있는 가을길을 산책해도 안전한 것... 역시 내 집 마련의 열망만 버리면 물질 전반에 대한 소유욕 자체가 줄어드는 것인가!


 한참 펭귄들을 구경하느라 밖에 있었더니 추워서 실내인 비바리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양서류, 파충류들이 사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악어가 사는 못 위에는 불어로 안내문이 붙어 있다.


'Ne jetez pas de pièces de monnaie dans le bassin! (못에 동전을 던지지 마시오!)'

동전을 던지지 마시오
악어가 사는 못

 이곳 바젤은 스위스, 독일, 프랑스 3개국의 국경이 마주하는 곳에 자리 잡은 도시다. 코로나 시국 전에는 서로 다른 나라라는 것을 거의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의 생활권이었고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통제되었을 때나 나라마다 다른 방역 수칙이 적용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 다른 나라였구나!'하고 실감할 정도다. 바젤은 스위스에서 제3의 도시답게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문화생활할 데가 많지만 프랑스 국경 도시인 상 루이 (Saint Louis)는 시골이라 별달리 할 게 없어 그런지 바젤의 미술관, 동물원, 축제 등에서는 많은 프랑스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비바리움을 찾은 프랑스인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분수에 동전 던지듯이 악어가 사는 못에 자꾸 동전을 던졌는지 저런 안내문을 써 놨는데 조금 씁쓸하다. 밑에 작은 글씨로라도 독어로는 같은 내용을 써 놓지 않았다는 게... '우리 스위스 사람들은 교양 있고 상식이 있어서 절대 악어에게 동전을 던지지 않거든!'이라는 차별적인 속내가 보인다고 하면 내가 과민 반응하는 걸까? 그리고 정말 스위스 사람 중에는 이제까지 단 한 명도 동전을 던진 사람이 없었을까.


 예전에 일본 관광지에서 '침을 뱉지 마시오'나 '훔쳐 가지 마시오'같은 안내문을 오직 한국어로만 붙여 놔서 논란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 이탈리아 관광지에서는 비슷한 내용을 오직 중국어로만 써 놓아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불쾌해했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그런 행위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만 안내문을 써 붙여 놓는 게 자리도 덜 차지하고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인간이 하는 일이 어디 효율성만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지던가. 혹시 이 안내문을 읽고 불쾌함을 느낄지 모를 사람들을 배려해서 다양한 언어로 안내문을 작성하는 것이 소위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정신일 텐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미국보다는 유럽이 PC를 덜 의식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을 비롯해 바젤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프랑스에서 왔고, 스위스 사람들은 비싼 장바구니 물가를 피해 주말마다 상 루이로 원정 쇼핑을 가는 등 상 루이라는 지역 없이 바젤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프랑스인들을 하대하는 마음이 스위스에 있는 걸 보면 인간이 구분 짓기 본성에서 벗어나서 타자를 능동적으로 포용하며 살기란 정말 힘든 일 같다.


 타국에서의 일상은 노골적인 차별보다는 무감각함과 무지에서 비롯된 사소하고 은근한 불편을 더 자주 겪게 된다. 그래서 대놓고 항의하기 애매하고 맞서 싸우는 것도 피곤하니까 '내가 예민하게 생각한 거겠지, 저 사람 의도가 그게 아니었겠지'하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마치 오늘 있었던 작은 일처럼.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는 모임에 준비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저번 주에 다른 위원이 자신이 보고 감동받았다며 한 영상을 추천했는데 예수의 일생을 그린 영화와 찬송가가 어우러진 영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올리비아 핫세가 성모 마리아로 나오는 '나자렛 예수'라는 옛날 영화라서 (1977년 작품) 모든 배우가 백인이었다. 특히 예수 역을 맡은 배우의 파란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면서 화면이 빨려 들어가고 다른 장면들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중동에 살았던 예수가 이렇게 하얀 피부에 이렇게 파란 눈동자였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용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요즘 할리우드는 '인어공주'를 실사판으로 만들면서 흑인을 인어공주로 캐스팅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에서 19세기 영국 여왕을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등 PC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오히려 '블랙 워싱 (Black washing)'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데 2021년의 정치적 감각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져 있는 구닥다리 영화를 파티에서 틀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난감해졌다. 하지만 추천한 사람의 성의도 있으니 쉽게 반대 의견을 꺼낼 수 없었고 다른 위원들도 별 말 없길래 '또 나만 불편하게 생각했나 보다, 내가 너무 예민했구나, 나 하나 입 다물면 되겠네'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 준비 모임에 영화를 추천한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자 다른 위원들도 이야기하기가 좀 편해서 그런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거다. 사실 예수 역할 배우가 너무 파란 눈이어서 몰입하기가 힘들었고 보기가 불편했다고...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한 마디 보탰다. 맞다고, 처음에 좀 불편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가 주는 좋은 메시지가 폄하되어선 안 되니 같은 내용을 다룬 좀 더 최신 버전의 역사적 고증이 잘 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상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그렇게 영상 문제는 잘 넘어가고 다른 안건에 대해 토의를 하는데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추천한 사람이 자기가 추천한 영화를 다른 위원들이 싫다고 해서 상처 받으면 어떡하지? 혹은 자기가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하지 못하고 영화를 추천한 걸 깨닫고 창피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내가 준비 모임에서 유일한 동양인인데 혹시 내가 이 얘기를 먼저 꺼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앞으로 그 사람이랑 불편해지면 어떡하지?'

 '사실 내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어야 되는데 왜 나는 다른 사람이 먼저 얘기할 때까지 기다렸지? 트러블메이커 되기 싫어서 비겁하게 가만히 있었던 거 아니야? 좋은 사람 되고 싶은 사적 욕심보다는 구성원들이 즐길 수 있는 더 좋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건데 왜 그런 목표에 부합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머릿수만 채우고 있었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나도 안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상처 받는다 해도 그 사람의 몫이지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자괴감에 시달리기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를 포기하고 다수의 선을 위해 나서야 하는 법을 배우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것을. 그러나 육아책 백만 권을 읽어도 좋은 부모 되기가 힘든 것처럼 소통에 대해 아무리 이론적으로 빠삭해도 '상처 주지 않고 거절하기'나 '미움받을 용기 내기'는 쉬운 게 아니다. 이방인의 삶에는 전사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평화주의자를 자처할 수 있는 사치가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대표하게 되어 버린 공동체 내의 소수자들을 위해 불편한 말을 꺼내는 것, 그 어려운 미션을 손에 받아 쥐고 난처해하며 오늘도 이렇게 살아낸다.


*덧붙이는 말: 재택근무하던 남편이 입이 심심한지 과자를 모아 두는 서랍을 뒤지다가 불쾌해한다. 다음 주에 있을 어린이집 행사에 과자를 가져 오라길래 꼬깔콘 상자에 '어린이집에 가져갈 것. 먹지 마시오.'  포스트잇 메모를 붙여 놨는데 이거 누구 보라고 붙여 놓은 거냐며, 일본 오다이바에 한국말로 '침 뱉지 마시오' 경고문 붙여 놓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자기를 차별한다고 난리다. 애는 한글 읽을 줄 모르고, 나는 먹어도 되니까 괜찮고, 자기만 평소에 과자 훔쳐 먹는 사람 취급했다고...


 사실 이 사람 전적이 화려하다. 식구 수대로 계산해서 딱 3개씩 귀한 한국 과자를 한인마트에서 사 오면 나는 야금야금 아껴 먹고 애는 내가 꺼내 주지 않으면 먹지 못하니까 상관없는데 남편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 온 날 다 먹어 버린다. 그러한 과거의 행동 패턴에 근거하여 포스트잇 메모를 붙였는데 차별적으로 보였다니, 집에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과자 독식 금지령을 내리는 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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