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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Jun 15. 2022

그림 숙제

 스위스 로컬 공립학교에 애들을 보내는 지인들이 스위스에는 스승의 날 같은 것 없다고 하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애는 국제학교에 딸린 어린이집을 가서 그런지 5월 첫째 주가 스승의 날도 아닌 스승의 '주간'이라며 선생님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으면 가져와도 된다고 떡하니 공지사항이 내려왔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하루도 아닌 무려 일주일 내내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주간이라니! 저 공지를 보고 선물을 안 보낼 학부모가 있을까? 처음엔 '한국에서는 촌지나 과도한 선물의 폐해 때문에 아예 스승의 날에 휴교를 해 버리고 선물을 엄격하게 금지했는데 여기는 이렇게 대놓고 얘길 하다니 시대에 뒤떨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차피 애초에 과한 선물을 하질 않았고 애들이 쓴 카드나 집에서 구운 케이크 같이 작은 선물을 하는 문화였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선물 가져오려면 가져오라고 학교 측에서 공지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스위스에서 만든 거면서 과하지 않은 선물을 찾아 돌아다니고 정성도 들어가야 하니 애한테 카드와 작은 공작품도 만들게 하느라 골치가 아팠다. 요즘 독박 육아니 가사노동 분담 불균형이니 하면서 결혼과 동시에 여자들의 일이 얼마나 늘어나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데 사실 그건 새발의 피 같은 생각이 든다. 단순히 집안일 좀 더 하고 애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 가는 일 좀 더 하는 게 아니라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행사, 아이의 행사, 양가의 행사 이 모든 게 다 아내의 차지가 되면서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3인분 이상의 인생을 꾸역꾸역 혼자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루의 피곤이 쌓여 가뜩이나 피곤한 어느 날 저녁. 그림과 만들기에 취미가 없는 애를 붙잡아 놓고 감사 카드 써야 하니 스케치북에 선생님들 얼굴을 그리라고 시켰다. 아이는 그리기 싫어 의자 끝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엉덩이를 쑥 빼고 거의 책상에 드러누운 자세로 성의 없이 사람 얼굴을 그린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상냥하게 꾸민 어투로 '자, 이제 선생님 머리도 그려야지?' 했더니 검은색 크레파스를 꺼내서 머리카락을 그리기 시작한다. 결국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다.


 "아니, 갈색으로 해야지! 미스 카타리나는 머리가 갈색이잖아!"

 "노우, 이걸로 할 거야!"

 "미스 로미나는 금발이고 미스 멜리사는 까만 머리인데 다 같은 색으로 칠하면 어떡해?"

 "아이 라이크 블랙! 블랙 이즈 더 베스트!"


 애가 그리기 싫어서 아무 색이나 뽑아 들고 성의 없이 다 같은 색으로 머리카락을 칠한 거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하고 '얘는 관찰력이랑 기억력이 떨어지는 바보인가' 싶어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 녀석 정말로 까만색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나는 어른이니까 보이는 대로 보지만 이 녀석은 아이니까 보고 싶은 대로 보겠지. 자기 머리카락 색깔처럼 까만색이 제일 좋은 머리카락 색깔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걸 수도 있는데 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이를 교정하려 했구나. 


 이 아이는 홍콩에 잠깐 살긴 했지만 스위스에서 태어나 평생을 국제적인 환경에서 서양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보고 살았는데도 무의식 중에 자기와 닮은 사람을 편하게 느끼고 찾아다니고 있다. 홍콩에서 소아과에 가면 그렇게 얌전하고 씩씩하게 의사가 시키는 대로 배도 보여 달라면 보여 주고 입도 열어 보라면 열어 보던 아이가 스위스의 백발 할머니 의사 앞에서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커튼 뒤로 도망가서 아예 정기검진을 하지도 못했었다. 교회 주일학교에 모르는 애들밖에 없어서 들어가기 싫다고 엄마가 꼭 따라 들어와야 된다고 하더니 그 많은 애들 중에서 자기랑 똑같이 검은 머리인 일본인 소년을 하나 찾아내서 서로 말도 안 통하는데 그 애만 쫓아다닌다. 아직 어리니까 거북한 차별의 경험이 없을 거라고, 그래서 서양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엄마의 착각이다. 소수자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그런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와 비슷한 무리를 찾고 싶은 본능은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은 것을...


 예전에 미국에 사는 지인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숙제 때문에 씩씩거렸던 게 기억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급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환경미화를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집에서 각자 자기 얼굴을 색종이로 만들어 온 걸 교실 뒤에 붙이기로 했단다. 그런데 애들이 자율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애들 얼굴색에 맞춰 색종이를 나눠 주고 그걸로 만들어 오라고 나눠 줬단다. 그렇게 한국애가 받아서 집에 들고 온 색종이가 너무 진한 오렌지색이어서 한국인 부모는 충격을 받았다. 그 집 아이는 얼굴이 하얀 편이라 백인 아이들만큼 하얗고 오히려 핑크색에 가까운 얼굴빛인데 동양인이라고 진한 오렌지색을 준 거다. 더 가관인 것은 중국 소수민족 멍 족 출신 부모를 둔 아이는 조금 가무잡잡한 얼굴인데 그 애에게는 아예 초코 브라우니 색깔 같은 갈색 색종이를 줬다고... 인종차별을 경계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급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에 정확하게 반대되게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동양인 부모들은 오히려 불쾌함과 차별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색종이를 골라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게 더 좋은 숙제가 아니었을까.  백인 교사의 고정관념으로 바라본 색깔들로 교실 뒤편을 채우고 '하얗고 누렇고 까만 애들이 잘 어울려 살아요, ' 하는 보여주기 식 문화적 다양성에 그친 미국 시골 학교의 한계가 안타까웠던 기억이다. 


 반면 같은 색종이로도 고정관념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 경우가 있다. 2022년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수지 작가의 작품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악장에 모티브를 둔 강렬한 드로잉 그림책인데 여름의 강렬한 햇빛 아래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환희에 찬 모습이 생동감이 넘쳐 책을 뚫고 나올 듯하다.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의 피부가 노란색, 분홍색, 갈색, 까만색, 오렌지색 등 다양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니 한국 독자만이 아니라 세계 시장의 독자들을 겨냥해서 글로벌한 작품을 만든 건가' 싶었는데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나니 내 짧은 생각이 부끄러웠다.


이수지, '여름이 온다' /비룡소
이번에 제가 1악장 그림을 그리면서 색종이를 사용했는데요. 색종이는 문구점 가면 늘 살 수 있는 재료인데 옆에 있지만 그걸 다시 새로운 감각으로 보면 일단 색종이 색깔이 정말 예쁘거든요. 약간 형광빛이 돌기 때문에 색종이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색종이의 색은 물감으로 섞어서 만든 게 아니라 한 가지 색이 딱 얹혀 있기 때문에 그걸 잘랐을 때의 단면이라든가 거기 위에 그림을 그렸을 때 밀리는 크레용의 느낌이라든가 하는 재료가 주는 느낌이 상당히 좋았고요. 그리고 저는 색종이 색깔을 되게 다양한 아이들의 피부 색깔로 사용을 했는데 사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이 표현된다는 느낌이었어요 [1].


 노란 얼굴 까만 머리, 초록 얼굴 빨간 머리, 분홍 얼굴 금빛 머리, 하얀 얼굴 갈색 머리, 까만 얼굴 보라색 머리. 모든 색깔의 아이들이 '이건 나야, 나!' 하며 행복하게 볼 수 있는 그림, '이건 내 얘기야!' 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지금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숙제를 모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이 무겁게 졌으면 좋겠다. 아마도 내가 져야 할 숙제일지 모르겠다.  



[1] 작가의 작업실 EP.2. 이수지 '여름이 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h5gtDeF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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