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에 내리는 눈 Oct 23. 2023

불행을 더 큰 불행으로 지우고.

공항 가는 길 

   스위스는 10월에 가을방학이 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라서 겨울방학, 2월에는 스키 가라고 스포츠 방학, 4월에는 부활절이라서 봄방학, 여름이어서 여름방학... 그래서 이 방학 시간을 어떻게 때워 줘야 하나가 큰 고민이다. 매 번 시간을 내서 휴가를 가는 것도 일이고 휴가를 가지 않으면 애를 맡길 데가 필요하니 뭘 배우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든 비용을 들여 캠프를 보내야 한다. 휴가도 가지 않고 캠프도 안 보내고 애를 24시간 끼고 일주일만 있어 보면 "아오, 학생은 학교를 가야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방학이 일 년에 다섯 번이라서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들보다 더 급속도로 늙고 있는 것 같다. 


   이번 가을 방학은 추석 즈음이라 한국을 다녀오기로 했다. 원래는 한국 갈 때 스위스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가곤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가까운 공항에서 출발해서 경유 편으로 가 보니 공항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힘들었고,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직항을 타는 여정은 큰 짐가방을 끌고 기차 타는 게 불편했었으며, 낮 비행기라서 애가 14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계속 영화 보겠다, 답답해서 자리에서 탈출하고 싶다 칭얼대면 그것이 부모에겐 고통, 무엇보다도 독일에서 출발하는 표가 스위스 출발 표보다 조금 더 싸다는 게 남편에게 굉장한 소구점이어서 그가 기꺼이 4시간에 가까운 고속도로 운전을 자처했음) 이번에는 독일까지 운전해 가서 차를 공항 주차장에 두고 밤에 출발하는 직항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을 나중에 무척이나 후회하게 되는데...


   늘 그렇듯 한국 갈 때는 챙겨야 될 짐이 많아 허둥지둥 대다가 출발 당일 아침에서야 겨우 대충 짐을 다 싸고 문을 잠그려는데 집 열쇠가 없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거겠지 싶어 무시하고 남편에게도 열쇠가 있으니 그냥 나가려는데 남편이 찝찝하니 찾고 나가잔다. '혹시 어제저녁에 문 열고 열쇠를 안 빼고 밖에 꽂아 두고 잔 거 아니냐, 그래서 누가 빼 간 거 아니냐, 누가 우리 휴가 간 사이에 문 따고 들어와서 다 훔쳐 가면 어떡하냐' 등등 사람 불안하게 옆에서 계속 떠들기에 짜증이 나서 그만하라고 버럭 했더니 열쇠 잃어버린 주제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갈 길이 멀기에 더 찾지 못하고 그냥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이런 맘으로 출발했으니 한국 방문의 설렘과 기쁨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걱정 근심과 불안에 가득 찬 여행의 시작이었다. 


   열쇠 걱정 때문에 목이 타서 그런지, 속에서 열불이 터져서 그런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라도 속에 때려 넣어야 될 거 같아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백화점 푸드코트 못지않게 맛있는 것들이 즐비한 한국 휴게소와는 달리 독일 휴게소에는 간단한 과자와 커피, 음료수 정도밖에 없다. 갈 길이 바쁜데도 내가 들르자고 우겨서 왔지만 막상 너무 달고 짜기만 한 서양과자와 빵쪼가리, 내 취향이 아닌 아이스크림들을 보니 (자고로 아이스크림은 비비빅이지!)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콜라와 팝콘을 사고 다시 차를 탔다. 그런데 그때 우리 앞으로 구급차와 경찰차가 미친 듯 빠르게 달려간다. 


   사고였다. 그것도 대형사고.


   '속도는 무제한'이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 여름에 시작했던 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구간이 많아 위험해 보였다. 150, 180km/h로 달려 나가던 차들이 공사 때문에 차선이 줄어드는 구간에서 갑자기 속도를 확 줄이면 사고 나기 십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우리 바로 앞에서 사고가 나서 트럭과 작은 차 두 대가 서 있었다. 큰 트럭 뒤를 박은 차는 운전석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그 뒤를 다른 차가 또 박아서 연쇄 충돌 사고가 벌어진 거였다. 우리 앞을 막아 선 경찰차 때문에 바로 그 뒤에 서게 되었는데 근처에 있는 모든 경찰차와 구급차가 다 출동하는 줄 알았다. 급기야는 소방 헬기까지 떴다. 누군가 다쳤다면 죽지만 말아 달라고 기도가 절로 나오는데 바닥에 한 남자가 누워 있고 구조인력이 더 이상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 사고 차량에 동승했던 걸로 보이는 여성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떨고 있었고 여자 경찰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도 좀처럼 사고 현장은 수습되지 않고 경찰차와 구급차는 계속 몰려오고 눈앞에는 다친 사람이 누워 있다. 이러다가는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와중에 우리 비행기 놓친다고 경찰한테 현장 바로 뒤에 있으니 우리만 좀 보내 달라고 보챌 수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사고를 낸 차량이나 길을 막은 경찰이나 이렇게 생겨 먹은 아우토반을 탓할 순 없으니 이제는 온통 내 탓과 남편 탓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내가 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해서 이렇게 됐을까. 휴게소만 안 들렀어도, 거기서 10분 정도의 시간을 지체 안 하고 계속 갈 길 갔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서 가족 선물을 사고도 탑승 시간이 남았을 텐데. 어차피 아이스크림은 사지도 않고 몸에도 안 좋은 콜라와 맛대가리 없는 팝콘을 살 거면서 왜 휴게소를 들러 가지고... 아니지, 왜 우리 남편은 독일에서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사자고 했을까. 항상 스위스에서 출발해 놓고 무슨 바람이 불어 이번에는 독일에서 출발하는 표를 사서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나. 아우토반은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면 비행기 놓칠 확률이 큰데 왜 예견하지 못하고 아무 사고도 안 날 거라는 바보같이 순진한 가정 하에 여행을 계획한 거야. 그깟 몇 백 프랑 표값 아끼는 게 뭔 대수라고, 낮 비행기라 애가 안 자서 괴로우면 뭐가 얼마나 괴롭다고, 정말 원수다 원수야...


   사람이 죽고 사는 와중에 비행기를 놓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짜증 반 근심 반으로 사고 현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걱정하고 있던 집 열쇠의 행방에 대해서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열쇠 따위 전혀 생각도 나지 않다가 문득 열쇠를 떠올렸을 때 '누가 문 따고 들어 와도 애 돌반지 몇 개 빼고 훔쳐 갈 것도 없는 집'이라는 대범한 생각에마저 이르렀다. 


   왜 아직도 나는 이 모양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삶에 불평하며, 만족하지 못하며, 짜증 내며, 작은 일에 근심하며 살다가 꼭 무슨 일이 생기고 나서야 이전의 그 안온함 삶에 감사할까. 왜 불행을 더 큰 불행으로 지우듯 살아갈까. 이러니 삶에 더욱 자주 불행이 몰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이전의 작은 불행을 잊지 못하고 곱씹으며 살아가니까.  

   

   왜 아직도 나는 이 모양일까. 남의 사고에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릴까. 눈앞에서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민보다는 나의 사소한 계획들에 대한 걱정이 앞설까. 차 뒤에 자전거를 싣고 우리처럼 평범하게 휴가를 떠나던 저 가족이 지금 남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채로 길바닥에 누워 있고 아내는 온몸을 떨며 울고 있는데 나는 겨우 비행기를 놓치면 다시 사야 할 표값과 호텔비와 어그러질 수많은 한국에서의 계획들과 실망할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릴까. 


   왜 아직도 나는 이 모양일까. 전쟁으로 파괴되는 도시에서 죽어 간 이들과 살아남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영혼이 간절하게 외치는 비명 소리와 눈물을 내 마음이 괴롭다는 이유로 외면할까. 그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가슴 아프지만 당장 오늘 저녁 메뉴를 걱정하고 내일 애 학교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그들을 위한 기도를 중단할까. 가자 지구의 어린이들이 지켜 줄 어른이 없어 서로의 팔목에 이름을 적어 주며 혹시 죽은 후에 그렇게라도 신분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뉴스 기사를 읽고 어찌 가슴이 찢어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마스 테러집단에 인질로 끌려간 어린 딸이 살아서 고통받기보다는 차라리 죽어서 잘 됐다는 이스라엘 아버지의 담담한 인터뷰에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렇지만 당장 내 삶의 근심 걱정이, 해야 할 일들이, 고난과 역경이, 그 무게가 사라진 것도 아니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 가만히 서서 운다.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을 위한 눈물이라기보다는 그 수많은 공부와 독서와 기도와 반성과 회개와 결심도 헛되게 여전히 한치도 자라지 않았고 여전히 비겁한 자신에 실망하여 흘리는 나르시시스트의 눈물 같다. 


(p.s. 기적적으로 비행기는 놓치지 않았고 집 열쇠는 나중에 화장품 가방 안에서 찾았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에 체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