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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02. 2019

헐크보단 브루스 배너가 필요한
세상

헐크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캐릭만은 아니에요.


올해 개봉했었던 어벤저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 어벤저스 앤드 게임이 우리나라에서만 천만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여러 명의 히어로들이 힘을 모아 타노스로부터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구를 지켜나가는 스토리. 나 역시 천만 관객 중 한 명으로 어벤저스 시리즈의 마지막 스토리를 함께했었다.


어벤저스 팀 중에 한 명의 히어로인 헐크.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인격이 공존하는 캐릭터로 미스터 그린이나 덩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험 도중 감마선에 노출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 후 분당 맥박수가 높아지고 분노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녹색 괴물인 헐크로 변하게 된다.



변하기 전엔 침착하고 점잖은 성격이지만 녹색의 헐크로 변하면 다혈질의 엄청난 파워를 가진 모습으로 영화에서 그려진다.






우리는 흔히 성격이 거칠고 다소 공격적인 행동을 하며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헐크 라 부른다. 내 주위에도 본인의 별명이 자칭 헐크 라 말하는 한분이 계신다.


성격이 조용하다 못해 어쩔 때는 다소 소심하게 보일 정도로 차분하고 친절하고 따뜻하며 다툼이라고는 평생 누구와도 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분. 그런 분이 헐크로 변하는 순간은 자신의 차 운전석에 엉덩이를 붙이면서 시작된다.


운전을 하기 전엔 과자 부스러기를 등에 지고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에게도 길을 양보해 주실 것 같은 그분은 운전대만 잡으면 개미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돌변해버리고 만다.


같은 방향이라며 극구 데려다주시겠다는 그분의 차를 탔던 그 날. 갑자기 끼어든 차가 그분을 변신의 길로 이끈 시발점이 되었다.



끼어든 차에 흥분하시며 운전석 창문을 내리시더니 세상에 있는 모든 육두문자를 마구 퍼부어대며 얼굴까지 활화산처럼 변하신 그분을 보며 난 차가 끼어들어 급정거하며 놀란 가슴보다 그분의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소문난 맛집의 욕쟁이 할머니도 아니고 욕을 그렇게 찰지게 하는 분은 난생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참을 화를 내시더니 잠시 후 조금 진정되셨는지 아무렇지 않게 "거 사람 다치면 어쩌려고 하여간 운전을 저런 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꼭 있어요."하시는 그분을 보며 딱히 "그러게요"라며 동의하기도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라고 말하기도 뭐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멋쩍게 앉아있었다. 그간 내 마음속 좋은 이미지였던 한 분을 잃는 순간이었다.


한바탕 차 안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닌 찰진 육두문자들 탓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 아무 말없는 내게 그분이 하시는 말씀 "내 별명이 원래 헐크거든."


모르시는 것 같은데 헐크가 다혈질이고 괴팍한 건 맞지만 헐크는 괜한 욕을 하거나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해하거나 이유 없이 먼저 공격하는 그런 캐릭터는 아닌데 헐크도 엄연한 히어로들 중 한 명. 변신한 헐크가 다소 거칠긴 해도 다른 히어로들의 친구이고 사랑을 아는 남자이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한 영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며칠 전 친구와의 약속 장소 위치를 잘 모르는 탓에 택시를 탔다. 그리고 그 날 난 또 한 명의 헐크를 만났다.



운행 중 갑자기 차선을 바꾼 차량 탓에 핸들을 급하게 바꾸던 택시가 한번 휘청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길로 급하게 차선을 바꾼 차량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그 차량 옆에 위치한 후 급하게 창문을 내리시던 기사님.


상대편 차도 동시에 창문을 내렸다. 그런데 상대편 차량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분의 체격이 다소 크고 인상이 조금 거칠 게 보이셨던 것.


곧 또 온갖 종류의 육두문자들이 난무하겠구나 하던 내 예상과 달리 그렇게 거칠게 상대편 차량을 쫓아가셨던 기사님께선 그쪽 운전자 분을 보시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다시 창문을 올리시곤 갈 길을 가셨다. 밀려는 창피함은 왜 뒷자리에 손님으로 앉아있던 내 몫이었는지.


지구를 구하는 일도 다른 이를 돕는 일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변신하면서까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본인과는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헐크가 영웅인 건 맞지만 우리 모두에겐 헐크가 아닌 변신하기 전 점잖고 지적이며 다정한 브루스 배너 박사가 훨씬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순간에 화를 다스리지 못하여 생기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의 예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극심한 화로 인해 심한 경우 타인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 그로 인해 구속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결과들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하루에도 여러 번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화라는 것이 단순히 나의 기분과 감정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까지도 다치게 하며 화를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나 행동들로 인해 크게는 타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까지 있으니 화라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있는 유일 병이 화병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참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화는 타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힘들게 만든다. 결국 지나친 화는 자신의 몸도 마음마저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화라는 것이 무조건 참는다고 억누른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미칠 듯이 화가 날 때 주체하지 못할 분노가 끓어오르는 순간에 우리 모두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잠시 숨을 고르며 한 박자 쉬어가는 건 어떨까?


그럼 화가 난 순간에 참지 못하고 저지르게 되는 후회 가득할 행동들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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