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걸어야 한다면
2017년 7월 5일 수요일
날씨 구름 많고 더움
아침부터 알람이 울린다. 물론 내 알람은 아니고 어제 그 문제의 대학생 중 한 명이겠지. 도미토리에서 소리 알람이라니, 더이상 얘기하기도 입아프다. 그 친구들도 나름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왔을텐데 꼰대 한 명 잘못 만나서 웬 고생인가. 그러니까 제발 상식을 좀 탑재합시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고, 대학에 다닌다고 다 지성인이 아니란 말이다.
아메리칸 스타일의 조식이 제공되어서 다른 곳 보다 5,000원 더 비싸다는 사장님의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을 향했지만 타 게스트하우스의 일반적인 조식과 크게 다를게 없다. 심지어 기대했던 감귤잼도 없...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식빵과 딸기잼은 언제나 옳지.
오늘의 코스는 산술적으로도 쉬운 코스이다. 전날 부지런히 걸음 게이지를 채워놓은 덕에 15코스만 순수하게 역방향으로 걸으면 끝난다. 고작. 16km 4~5시간만 열심히 걸으면 쉴 수 있다. 어제와 같은 산길과 숲길도 거의 없는 순수한 바닷길. 뽀송뽀송하게 마른 빨래 덕에 컨디션도 꽤 좋다.
첫 날 부터 고민하던 올래패스북을 구매하였다. 이미 지나쳐버려 스템프를 못찍은 17, 16코스가 눈에 아른거리긴 하지만, 작은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한다. 15코스 완주 도장과(역방향의 장점?) 16코스 시작 스템프를 찍으며 오늘의 걸음을 시작한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바다를 참 좋아한다. 동해, 서해, 남해, 지중해, 태평양 가릴 것 없이 모든 바다를 사랑한다. 온전히 바다에 집중하며 걸을 수 있는 올레길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15코스는 '애월바다'를 온 몸으로 느낄수 있는 코스이다.
15코스는 이렇듯 예쁜 해안 산책로가 꽤 길게 이어진다. 꼭. 올레걷기가 아니더라도 1~2시간씩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을 것 같다. 오늘도 제주의 숨은 예쁨을 하나씩 알아간다.
계속되는 해안길을 걷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도 제법 있는데, 갑작스레 사람과 차들이 많아져 급하게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다 사람들이 많아지니 조금은 당황한듯. 바닷가에는 아까부터 보이던 서핑보드를 탄 남자 두 명이 멋 드러지게 낭만을 즐기고 있다. 같은 남자가 보아도 정말 멋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배우고 싶다. 서핑보드
바닷가 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어젯밤 얼려 놓은 얼음생수가 제 역활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진작 얼음생수 들고 다닐걸 ...오늘 밤에도 꼭 냉동실이 있는 숙소를 잡고, 생수를 얼려 놓으리라 다짐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15코스 중간 스템프 찍는 곳이 나타난다. 아침에 구입한 올레패스에 당당히 도장을 찍고 가던길을 계속 걷는다. 바다를 보며 걷노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는다.
어정쩡한 시간과 피곤함의 상태로 15코스의 시작점에 도착하였다. 본래 이 근처에서 숙박을 하려고 하였지만, 찐한 항구의 향이 가득한 곳으로 영 괜찮은 분위기가 아니다. 14코스를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협재에 도착하니 아무래도 조금 더 걸어야겠다.
협재까지 가기엔 조금 내키지 않아 '응포리포구'라는 작고 예쁜 항구 마을에 자리를 잡는다. 한 가지 특이한점은 이 동네 게스트하우스들은 다 입실이 다섯시이다. 이제 세시 조금 넘었으니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 그렇다고 더 걷기엔 힘들고. 민폐를 끼치기도 싫어서 숙소 근처 카페에 가있으려고 했지만, 인상좋고 친절한 사장님께서 얼리 체크인을 혼쾌히 허락해주셨다. '하티'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6인 도미토리 1박에 무려 3만원이다. (숙소가 하루에 5천원씩 비싸지고 있다.)
인도향이 가득한 휴게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주인장 내외는 인도 여행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으신가 보다. 가격이 비싼 만큼 내부 인테리어나 시설, 침구 등이 상당히 고급지다.
오늘은 6인실 중 다섯명이 일행이라고 한다. 꿀잠 자긴 글렀다. 내일은 호텔에서 잘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