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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실 Jan 03. 2017

2017 백수일기 :: 1일째

아이스아메리카노 1000원

평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인 마냥

스마트폰 알람을 무의식적으로 끄고 다시 잠에 든다.

꿈뻑이던 눈을 뜬 시간은 9시 30분.

조급하게 일어나 양치를 할 필요도 머리를 감을 필요도 없다.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지각을 걱정할 필요도, 지하철을 탈지 운전을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공.식.적.인 백수이기 때문에.


안경을 쓰고 화장실로 직행하기 전,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한다. 이불을 정리하고 향초를 킨다. 

퇴사하기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소박한 여유로움이다. 


읽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미뤄뒀던 음악 정리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백수가 되었다는 괜한 너스레를 떤다.


백수의 첫 아침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늦은 아침을 먹는다.



2011년 2월

첫 출근을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앞선 두 번의 퇴사와 이직의 순간에 며칠간의 짧은 휴식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현실의 끈을 놓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지난 6년을 살아왔다.

어찌 보면 조금은 비겁한, 좋게 생각해보자면 너무나 계획적인 삶.

언제나 목적지를 정해놓았고, 그 결과를 위해 쉴 새 없이 뛰어만 왔다.

휴식과 여유는 그저 사치로만 여겨왔던 지난 6년.


이제는 휴식과 여유라는 '사치'를 누릴 것이다. 

온전하게. 오직 나만을 위해.


몇 달 째 미뤄놓고 진행 중인 유럽 여행기를 쓴다.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다.

냉장고 위 캡슐커피머신을 꺼낼지, 

집 앞 테이크아웃 커피집을 갈지 고민하다

보일러의 온수 버튼을 누른다. 


집 앞 언덕을 조금만 내려가면 여러 작은 개인 카페들이 있다.

그중 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 1000원

오직 현금만 가능한 가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커피 한 잔 천원.

돈을 내면서도 미안한 마음이다.

값이 싸다고 향까지 저렴하지는 않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의 고소함이 더욱 향기롭다. 



커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린다.


옥수수 통조림, 양파, 비엔나 소시지.

쓰레기봉투까지 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렇게 오늘의 지출은 마감.


그 사이 전 직장 후배와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집으로 돌아와 플스를 켠다.

언제나 북적이던 친구목록과 파티창이 조용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시간을 보낸다.

퇴근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미국 여행 이야기를 한다.

벌써 가이드북을 두 권이나 샀다.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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