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의 대립, 타협 없는 논쟁.
시작에 앞서, 이것은 어쩌면 지극히 이상적이며, 몽상 혹은 망상 사이의 무언가에 속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이것을 고민하고 고뇌해야 한다. 처음 태어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고민해도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부족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보내고 있다. 아니, 풍족한 가정에서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가고 싶은 곳 대부분을 갈 수 있고, 가지고 싶은 것 대부분을 가질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것 대부분을 지원해주시는 내 인생 평생의 조력자가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나 돈 문제로 시달려야 했고, 유년기의 아침을 부모님 없이 보내야만 했다. 일어나 눈을 떴을 때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었다. 나의 부모님은 그렇게 사셨다. 어쩌면 지금도.
나의 아버지는 원래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사진에 관련된 지식, 그리고 직접 찍은 작품을 보면, 객관적으로 보아도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사진은 직접 전부 찍으신 사진이다. 나는 진심으로 아버지가 사진작가를 하셨어도 잘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사진작가가 되어서는 돈을 벌 수 없고, 가장의 노릇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진작가라는 꿈을 버리셨다고 한다. 돈 때문에.
이전에 한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있었던 일이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시기에 나의 문장을 읽고 조언과 수정을 해주셨던, 나의 선생님과 같은 분이었다. 책을 쓸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나의 첫 책 첫 페이지에 그분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나는 그분을 참으로 좋아했고, 정말 감사했다. 평생 글을 쓰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분은 사라졌다. 처음 글을 보여주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나는 펜을 내려둔다는 말을 남기고. 현실은 언제나 넘어뜨린다, 꿈을, 나를, 모두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역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현재까지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칭송받는 이유는 이 책의 이야기가 단순히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 진부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베르테르, 알베르트, 로테, 이 세 인물을 개인(나), 현실, 이상으로 생각해보겠다. 알베르트(현실)는 로테(이상)에게 총을 받는다. 선택지는 두 개, 알베르트(현실)를 쏘아 이상을 쟁취한다, 혹은, 베르테르 자신을 쏘아 현실을 인정하며 굴복한다. 즉, 현실에 굴복하거나 현실에 반항하며 이상을 쟁취하거나,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지만 대부분은 굴복을 택한다. 살인에 대한 두려움, 이후 삶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함이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젊은 현대인들의 슬픔'이라고 쓴다.
많은 유명인이 꿈을 좇아야 한다고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결국 현실의 벽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모순적이지만 이것을 쓰는 나도 그러하다. 어렸을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재능과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진학하고 싶었던 학과를 지원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하며 학과를 정했다. 이 현실이라는 것에는 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환경, 시선, 사회. 하지만 그것 중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돈. 결국 돈 때문에 하지 못하고,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한다. 돈이 없어 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해, 돈을 벌 수 없어, 돈이 되지 않아 포기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른 꿈을 가졌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는 등이 아니다. 이들은 꿈보다는 목표에 가깝다. 많은 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혹은 말하지 않은 내면 속 작은 바람, 이상, 혹은 현실에서 벗어난 무언가, 내가 말하는 꿈이란 그것을 뜻한다. 우리는 그 꿈과 목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계는 선택을 강요한다. 그것 중 무엇을 따라도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이 현실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참으로 비참하다. 그렇다고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돈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를 않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이는 인간이 타고난 태생적 본능 때문에 그러하다. 무한한 욕망과 유한한 자원, 우리는 결국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자원을 가져야 함을 뜻한다. 어쩌면 전부 가져도 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다, 우리는.
나는, 모두가 가진 재능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재능이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특별하게 타고난 무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니 대부분이 '당신의 재능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오랜 시간을 고민하거나 적지 못한다. 그러나 재능이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무지한 한 인간이 불현듯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 단순한 예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는 휴일에 야구를 관람하러 갔고,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보며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해 '노르웨이 숲', '1Q84' 등 걸작을 써낸 현시대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재능이란 우연한 관심부터 시작된다. 그 우연한 관심, 그것이 재능의 시작. 재능은 여러 과정을 거쳐 일생의 꿈이 된다.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이 글에는 오류가 상당히 많다. 고려하지 않고 배제한 요소도 매우 많다. 그러니 이는 그저 말도 안 되는 허상과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고팠던 하소연. 가끔은 후회하기도 한다. 나는 14살부터 이 글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일기 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무언가 기록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단어 하나의 변화로 문장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기도 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기에 글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의 시선은 형용 불가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겨울 바다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으로, 나는 이것을 숨겨야만 했다. 나는 기성 작가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생 글을 쓰며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 10년 전 나의 모습과 선택을 평생 후회할 것이다.
이 글은 몇 번을 읽어도 그저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한, 존재하지도 않는 지극히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후회 없는 삶은 없으리, 그러나 그 후회가 버리고 무시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기를 바란다. 자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며 모두가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