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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Aug 05. 2023

여자친구가 죽었다.

자살은 어떻게 예방될 수 있을까

여자친구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에게도 표현하기 어려운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을 돌아다녔고, 이제야 부유하는 생각들을 붙잡아 글을 남긴다.


이 글은 나의 애도 일기이다. 만에 하나 비슷한 경험을 한 누군가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여자친구는 만 2년이 넘게 우울증을 앓았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보호해 줄 사회적 제도는 무용지물이었다. 부당한 업무 배제를 경험했고, 노골적인 모멸감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여느 가해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현재까지도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만난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울증을 극복해 왔다.


학부 수석 졸업이었던 여자친구는, 상담 공부를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유수한 대학원에서 합격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중간고사에서도 쟁쟁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높은 성적을 받았다.


야속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직장에서 다시 괴롭힘을 경험했다. 세상에는 단단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부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약했던 그녀는, 괴롭힘 당사자 앞에선 고개를 숙이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와 두려움에 떨었다.


자살사고는 다시 악화되었고, A4용지 4페이지 분량의 피해 사실과 정신건강의학과 의무기록을 회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여느 대기업에서 그렇듯이, 가해자와 분리 조치는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우울증을 빌미로 "당신의 건강을 위해,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라는 논조의 대답을 괴롭힘 가해자에게 전달받았다. 명백한 2차 가해였으나,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여느 피해자가 그렇듯이 약자에 대한 보호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의 처리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으나, 당연히 연락이 없었다.


나는 이제 왜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공론화하고 신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감과 무력감이 너무나도 심하다. 우리는 상처를 굳이 더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살고 싶어, 삶에 대한 이유도 있어. 하지만 자살 충동이 찾아올 때 너무 무서워"라고 말해왔던 그녀는 내면에서 자살 충동과 씨름해 왔고, 세상을 떠났다.


10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처음 자살 생각을 떠올린 뒤 시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자살 생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병원을 찾는다. 자살에 실패해서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다시 시도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도움을 청하러 오는 것이다.

◆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 中


심한 자살충동이 찾아올 때, 개인의 의지는 갈 곳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나종호 교수님이 설리님을 추모하며 남겼던 글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  (https://brunch.co.kr/@psych/25)에 십분 동의한다.


그날 나는 여자친구가 먹고 싶어했던 식빵을 샀다. 저녁에 만나자고 이야기를 한 후 찾아갔고, 신고 후 응급조치를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급성 우울감이 찾아왔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너무 길다. 이 힘든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제야 여자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남들한테 평범한 하루가 가끔은 나에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하루인 걸 알아주는 것 같아"


나는 응급실에 자살 시도로 온 분들을 상담하는 일을 한다.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가까운 사람도 지키지 못한 내가 자살을 예방할 자격이 있는가"는 생각이 계속해서 찾아온다. 그래서 앞으로 남길 자살 예방에 관한 글은 나의 치유 일기이기도 하다.


자살 충동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위로를 전합니다. 응급실에 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기를, 주위에 도움을 청하기를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를, 당신은 빛나는 사람입니다.


*자살예방전화 : 1393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 1577-0199

*보건복지상담센터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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