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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Jun 27. 2022

응급실 이야기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놓는 지점에 이른 사람들의 심연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시도로 사망한 인구는 11,395명 입니다. 하루 평균 약 36명, 한 시간에 한 명 이상의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OECD 국가의 10만 명당 자살률 평균은 약 11명으로, 한국의 25.7명(2020년)에 비하면 2배 이상 낮은 것으로 보고 됩니다.


'자살은 큰 대가를 초래한다. 매년 80만 명 이상의 개인들이 자살로 사망하고, 이는 15~29세의 사망원인 중 두 번째를 차지한다. 자살로 사망하는 성인 한 명당, 20회 이상의 다른 자살시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 WHO(국제보건기구),『자살예방: 세계적 의무 PREVENTING SUICIDE: A GLOBAL IMPERATIVE』,  중앙심리부검센터 역, 14p


우리나라의 자살시도로 사망하는 인구가 약 1만 명이니, 한해에 최소한 20만 번 이상의 자살시도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자살시도로 응급실로 내원하게 됩니다. 보건복지부 '2020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결과 보고에 따르면, 전국 77개 응급의료기관에 자살시도로 내원한 환자는 22,57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사업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이지요.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2013년 25개의 응급의료기관에서 시작한 사업은, 2021년 기준 응급의료기관 77개소로 그 규모가 3배 이상 확대 되었습니다.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선정된 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 응급의학과, 사례관리자 총 3개의 직역으로 구성된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를 조직하여 다학제적 접근을 진행하게 되지요.


일반적인 사업 프로세스는(기관마다 다소 상이) 이러합니다.


1) 자살시도자가 응급실로 입원하게 되면, 응급의학과는 응급처치 및 자살시도 여부를 파악한다.

2) 자살시도자가 신체 ·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면 사례관리팀과 정신건강의학과에 협진을 의뢰한다.

3) 정신건강의학과에선 의뢰된 자살시도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재시도 위험성이 높다면 입원 및 외래 진료를 연계한다.

4) 사례관리팀은 의뢰된 자살시도자에 대해 초기평가(자살위험성 평가 포함)를 실시한다.

5) 사후관리를 동의한다면 사례관리자는 단기 사후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주 1회, 총 4회)

6) 이후 자살시도자의 동의를 받아 지역 자살예방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한다.


복지부가 2020년 응급실 사후관리사업 수행병원에 내원한 자살시도자 2만 2,572명의 실태 분석 결과의 일부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사례관리자와 사후관리를 4회 이상 완료한 8,069명의 자살 생각은, 사후관리 초기 27.5%(2,218명)이었으나 4회 진행 시 15.7%(1,266명)로 11.8%p 감소하였다.
2) 자살위험도의 경우, 사후관리 초기와 4회 진행 후를 비교했을 때 사례관리서비스 4회 이상 완료자 중 자살위험도가 높은 사람의 비율은 7.9%p 감소했다.
3) 우울감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사후관리 초기 65.3%(4,504명)에서 4회 진행 시 48.5%(3,232명)로 16.8%p 감소하였다.

◆ 보건복지부, 2020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결과 보고


사례관리팀이 자살시도자에게 1회 이상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면 자살 위험성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4회기 모두 사후관리에 참여하고 자살예방센터에 연계까지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그 폭이 증가하였습니다. 서비스 수혜자의 자살사망률(4.6%)이 비수혜자(12.5%)에 비해 3배 이상 감소하기도 했지요.


최근 사례관리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에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나는 자격이 있는가?' , '나는 전문성이 있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고 그걸 넘어가면 아주 조금은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지요.


상담을 해야 하는 일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했던 건, 항상 성장하는 길에 나를 놓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담이론이나 전문적인 개입 방법론을 공부하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져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몇 년간 마음이 아픈 이들을 만나며 느꼈던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실은, 이들의 바라보는 세상을 느낄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세계는 나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이제 와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어떤 부분에선 나의 세계보다 더 반짝였으며 개성이 넘쳤지요. 이들의 세계는 우울하기만 할 것이라는 건, 나의 편견이었음을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현대 자살학의 아버지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자신의 저서에서 말합니다.

"자살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통로는 뇌 구조 연구나 사회적 통계 연구, 정신질환 연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평범한 말로, 자살하려는 사람의 말로 직접 서술한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가족력에 대한 탐문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가요?' 그리고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이다. "

◆ 에드윈 슈나이드먼, 『자살하려는 마음』, 서청희, 안병은  옮김, 2019, 한울


이들에게 진심 어리게 그리고 바르게 묻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이직을 준비하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글을 쓰는 게 어려웠지만(핑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이나마 아직은 따뜻한 세상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자살예방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이어가 보려 합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우리 우산과 마음 모두 챙기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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