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설 Aug 13. 2023

자살을 대하는 태도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지난달 18일 서이초 새내기 교사 A 씨(24)는 교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추모하는 물결이 있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는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사건과 관련해 자신 SNS에 "사회적 문제를 가려서 듣는 비판적 사고"의 제목의 의견을 공유했습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모든 직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즉 직종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어떤 심리상태에 이르면 자살이라는 지극히 예외적인 선택을 한다...한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사안일 수 있는데, (여론이) 바로 사회적 폭력의 피해자로 단정하는 것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인과관계를 무시한 피해자 단정은, 만약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근거도 없이 어느 학생과 그 학부모를 살인자 또는 타인을 극단적으로 선택하게 만든 살인자로 모는 것과 같다...교육도 사람을 다루는 감정 노동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선생님은 모두 존경받는다는 환상 속에 마음이 여린 분이 직업을 잘못 택한 것일 수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자진(自盡)한 교사는 특정 학생이나 학부모의 문제로 죽는다는 억울함을 호소한 유언을 남긴 것이 없다고 하는데, 왜 이런 위험한 단정들을 하는가...우리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모두 나약한 존재들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건 사고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고 있다..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환상에 빠지는 일이 올바른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인과관계도 없는 원인을 지목하고 단죄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우선, 저는 이 글이 어떤 의도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부문별 한 마녀사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근거가 부족한 사항에 대해 가해자를 특정하는 태도는 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살을 대하는 냉소적인 태도가 전형적으로 나타난 글이라고 생각하며, 크게 세 가지 부분을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1) 이번 자살이 직종과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외적인 '선택'이며 개인적인 사안일 수 있다는 주장 
2) 직장 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것이 '여린' 개인의 잘못된 직업 선택일 수 있다는 주장

3) 공감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 행위(추모)에 대해 '사건 사고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환상에 빠져있다'라는 주장


제한적인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개인이, 조금이나마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요는 이렇습니다.

1) 고인의 담임 학급에서는 신고된 학교폭력 사안이 없었음.

2) 다만, 7월 12일 수요일 오전 수업 중에 발생한 소위 연필 사건은 B학생이 A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A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자신의 이마를 그어서 상처가 생긴 사건을 확인함.

3) 당일 오후 A학생 학부모가 고인의 휴대전화으로 전화하였으나 부재중이었으며 고인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후 A학생 학부모와 연필 사건과 관련된 통화를 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학부모와의 통화에서 엄청 화를 내셨다는 내용과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것에 대한 불안해 한 사실을 확인함.

4) 다음 날인 7월 13일에는 고인이 교감에게 사안을 보고하였으며 교감은 인성생활부장 동석하에 학부모 간 만남을 조언함.

5) 7월 13일 오후, 교무실에서 고인 및 인성생활부장 입회하에 A학생 어머니, B학생 아버지 간 학부모 간 학부모 만남이 있었으며 B학생 학부모가 A학생 학부모에게 사과함.

또한 공개된 고인의 일기장 내용 및 가족 및 지인의 의견 및 상담 일지를 중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고인은 학부모가 '넌 교사 자격이 없다'라고 화를 냈고, 개인 전화번호로 '너 때문에 반이 엉망이 됐다'라고 폭언을 퍼부었으며 고인은 '개인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방학이 되면 전화번호를 바꾸겠다'라고 이야기함.

2) 사망하기 사흘 전 고인은 어머니에게 "엄마 나 요즘 너무 힘들어"라고 메시지를 보냈으며 어머니가 "아이들이나 학부모가 힘들게 하냐"라고 묻자 고인은 "그냥 다.",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너무 힘들다"라고 보고함.

3) 일기장엔 "월요일 출근 후 업무폭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 게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거리고 있는 걸까. 어차피 돌아가면 모두 똑같을 텐데 그대로 원상복귀"라며 무력감을 호소함.

4) 고인이 학교에 상담 요청을 한 건 8차례이며 사망 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음.


이번엔 초등학교 교사 집단의 자살률을 다른 교사 집단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은 7월 30일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취합한 교육부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공립 초·중·고 교사 100명이 자살로 사망하였고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교사가 5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고등학교 교사 28명, 중학교 교사 15명 순이었습니다. 


2022년 기준 전국 교원 수는 중고등학교 24만 명, 초등학교 19만 명이며 더 큰 비율로 초등학교 교사가 사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초등학교 교사가 견디기 힘든 직장 내 스트레스를 경험했고, 아는 정신건강에 주요한 영향을 주었을 수 있겠다. 또한 초등학교 교사가 타 교원 대비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일 수 있으며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중고등학교 교원보다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고민해 볼 지점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률이 타 교원 직종에 비해 높은 것이 직장 내 스트레스, 학부모의 갑질 등이라고 단정하기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단순한 스스로의 '선택'이며 '여린'마음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전체 인구와 비교하게 되면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률(연간 약 10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자살로 사망, 초등 교원 인구는 19만 명으로 10만 명당 약 5명)은 전체 인구 자살률(2020년 기준, 10만 명당 24명)에 비해 낮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는 전체 자살률이 아닌  타 전문직종간 비교를 통해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률 및 정신건강에 대해 면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살로 사망한 이들에게 사회가 조금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종호 교수(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칼럼 중 일부를 인용합니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감정은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로막는다."

결국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한다.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만은 그들에게 자살은 선택지가 아닌, 현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선택지가 없었다고 느낀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정당한가?'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임에도 이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기보다는 덮기 급급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도 어찌 보면 자살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우회하려는 자세가 반영된 신조어 일지 모른다. 이제는 자살에 관해 떳떳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반복되는 자살은 우리 정신 건강의 현주소다.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나종호,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 中


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들의 모든 책임이 사회에 있다, 그리고 모든 자살을 막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 없기는 때문이지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中


다만, 자살이 개인의 책임이라는 목소리에 비해 사회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는 너무 작습니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힘을 싣고자 글을 남깁니다. 


저는 공감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망설임 없이 서이초 교사 선생님을 가슴 깊은 곳에서 추모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나라의 코로나 19 첫 사망자는, 정신질환자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