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재난 앞에서 공동체의 역할
2020년 2월 19일, 우리나라 코로나 첫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청도대남병원의 환자였습니다. 당시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148명이었습니다. 103명은 정신질환자로 5층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었고, 나머지 45명은 일반 환자로 2, 3층 일반병동에 머물렀습니다. 첫 사망자는 정신과 폐쇄병동 환자였습니다. 청도대남병원의 환자 확진자는 103명입니다. 모두 폐쇄병동 환자였지요. 다시 말해 청도대남병원 정신질환자 확진율은 100%였습니다. 이후 6명의 환자가 잇따라 사망합니다. 당연히 모두 정신질환자였습니다.
첫 번째 코로나 사망자 A씨(63, 조현병)는 장례식 없이 화장됩니다.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였으며, 수십 년간 장기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였지요. 두 번째 코로나 사망자 B씨(55, 조현병)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병동 문을 나섰습니다. 당시 B씨는 부산대 병원으로 후송되며 '바깥나들이를 하니 기분이 좋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공익인권재단 '공감'에서 발간한 '코로나와 장애 보고서(2021)'에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청도대남병원은 정신과 폐쇄병동이 108병상으로 입원 병상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은 병상을 다인실로 운영하여 집단 감염에 취약한 구조였고, 간호사 1인이 돌보는 병상이 4~5개에 이르러 다소 높은 편으로, 각 환자에 대한 실질적 관리 혹은 돌봄 또한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코로나 19의 집단감염 발생의 원인이자 코호트 격리조치 이후에 감염상황이 더욱 악화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감염병이라는 재난의 첫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코호트 격리'는 청도대남병원이 시작이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의료관련감염 표준예방지침에서 '코호트 격리'는 1인실 격리를 우선하여 시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격리 대상의 환자가 많을 경우에 비슷한 조건의 환자들을 한 병실 또는 한 공간에 격리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우리나라는 청도대남병원 환자들을 한 병실과 공간에 코호트 격리합니다. 청도대남병원의 병상의 대부분은 '온돌식 다인실'로 구성되었고 과밀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증상이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모두 뒤섞여 생활했지요. 그결과 정신질환자 감염률 100%, 103명 중 7명의 사망자를 낳게됩니다. 당연하게 전문가들은 대남병원의 코호트 격리 조치는 올바른 결정이 아니었다는 의견을 나타냅니다.
여파는 이어졌고 2020년 9월 2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취약한 정신의료기관 시설기준 개선 및 입원절차 존중에 대한 의견 표명'을 실시합니다.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에서는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제2항) 모든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을 것(제3항)을 기본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국가가 일반의료기관에 견주어 정신의료기관에는 낮은 시설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이를 방임하는 것으로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와 같은 비극이 예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는 더 슬프게 합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WHO(국제보건기구) 합동 평가단은 국내 의료기관의 다인실 위주의 병상과 밀집된 환경이 감염병에 취약하다고 경고했었습니다. 이후 후속 조치로 2017년 병상 면적 확대와 병상 간 이격 거리 확보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의 기준이 강화되었지요. 하지만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예외는 인정되었습니다.
정신의료기관은 높은 밀집도로 인해 일반 병상보다 감염병에 매우 취약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희생되기 전까지 말이지요. 우리나라는 청도대남병원 사태 이후 2021년 3월 5일에 이르러서야 정신의료기관 밀집 환경 개선안이 담긴 「정신건강복지법」시행규칙 일부 개정이 이루어집니다.
조현병 환자는 감염병에 취약합니다. 대한조현병학회지 24권 2호에 실린 김성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교수의 연구(COVID-19 유행 시기의 조현병 환자 지원)의 내용입니다.
"해외 여러 국가의 보고에 의하면 조현병 환자는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치사율이 2-3배 높았고, 이러한 위험성은 인구사회적 변인들을 통제하고서도 유의하였다. 국내 보고에서도 중증정신질환자는 대조군에 비해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으로 이환되거나 사망하는 비율이 2.3배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조현병 환자의 코로나19에 대한 높은 치사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먼저 이들의 건강관리 능력 부족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낮은 접근성을 고려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조현병 환자에서 비만, 당뇨, 심폐질환 등이 병발하는 빈도가 일반인구에 비해 높은데, 이들 기저 신체질환은 코로나19 감염 시 사망율을 높일 수 있다."
조현병 환자는 일반 인구보다 코로나에 굉장히 취약하며, 그 이유는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정신건강복지법」은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제2조),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제2항)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지요.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습니다. 같은 연구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이스라엘의 조현병 환자와 대조군 각각 약 25,000명 대상으로 조사한 역학 연구에서 백신을 미접종한 경우 조현병 환자가 일반인에 비해 코로나19 감염 시 사망률은 3.2배, 입원율은 6.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백신을 접종하면 일반인과 조현병 환자에서 치사율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은 수준(0.9-1.1배)으로 감소하였다. 백신이 조현병 환자의 치사율 감소에 더욱 큰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를 고려하면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백신접종여부를 확인하고 권유할 필요가 있다."
조현병 환자는 양성증상(환청 및 망상 등)으로 인해 현실검증 능력이 부족합니다. 음성증상(사회적 욕구 감소, 정서적 둔마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지지가 필요합니다. 일차적으로, 만연한 그들을 향한 사회적 낙인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조현병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의 감소 등은 조현병 환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립되기 쉬운 조현병 환자들이 백신을 적극적으로 접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에게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 10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 19 고위험군에 우울증과 조현병을 포함한 정신건강 질환자를 추가합니다. 기존에는 암, 당뇨, 비만 등 신체 건강에 국한된 항목만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정신질환자들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재난 앞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1995년에 발생한, '시카고 폭염 사태'입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2017)의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1995년 7월, 시카고에 섭씨 41도, 체감온도 48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지속됩니다.
"그 결과 7월 한 달 동안 시카고에서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폭염으로 사망합니다...매년 미국 전역에서 열사병으로 4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995년 7월 한 달간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인해 7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진 것은 재앙에 가깝습니다", p23
미국질병관리본부는 죽음의 원인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 결과, 질병으로 인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던 사람들, 에어컨이 없었던 사람들이 폭염으로 사망할 위험이 3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들, 폭염에도 집에 남아있던 사람들, 외부 사람과 접촉이 적은 사람들, 즉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더 숨졌습니다.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에릭 클리넨버그'는 조금 더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 연구의 제목은 「폭염:시카고 참사에 대한 사회적 부검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입니다.
이러한 연구는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중요합니다. 죽어간 사람들이 왜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는지, 그들이 왜 집 밖을 나가 에어컨이 있는 공간으로 갈 수 없었는지, 그 배후의 사회적 환경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 사람들이 죽어가는 아픔 속에서 공동체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묻기 때문이죠.
연구 내용 중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시카고 론테일 북부와 남부는,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슷한 두 지역입니다. 하지만 북부는 10만 명당 40명, 남부는 10만 명당 4명으로 10배 이상 사망률의 차이가 보고되었습니다. 두 지역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클리넨버그 교수는 론테일 북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을 빌려 대답합니다. 폐허로 남은 도시공간, 그 골목마다 마약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높은 범죄율 때문이라고요. 물론 론테일 북부에서 범죄자나 마약 판매상 숫자가 많아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한 공동체의 와해가 큰 문제였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불안한 치안으로 인해 외출을 꺼렸고, 다른 주민을 믿지 못하다 보니 집 밖에서 발생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개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폭염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론테일 북부 사람들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고 또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 거리로 나갈 수도 없었던 이유입니다", p28
우리 공동체의 정신질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한 이유(공동체의 부재)도 이와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덜 건강한 것이지요. 해외 사정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영국 킹스 칼리지 자야티 다스 문시 박사의 연구진은 코로나 19로 인한 초기 봉쇄 기간에 정신 질환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할 확률은 지적 장애 환자에서 9.24배, 섭식 장애 환자에서 4.81배, 치매 환자에서 3.82배, 조현병 환자에서 3.26배, 인격 장애 환자에서 4.5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9년 7월, 또다시 기록적인 폭염이 시카고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대처할지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시카고 시장은 '비상 기후대응 전략'을 작동하고 '폭염중앙통제센터'를 가동합니다. 폭염을 피할 수 있도록 쿨링센터 34곳을 열고, 누구나 그 센터까지 갈 수 있도록 무료로 버스를 제공합니다. 쿨링센터의 수가 부족하다고 판단된 시점에는, 단 하루 만에 학교 31곳을 새로운 쿨링센터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취약계층인 독거노인, 낙후된 건물에 사는 주민 등을 경찰과 공무원이 방문해 일일이 건강을 확인했습니다. 그 숫자는 총 3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었지만 1995년의 700명보다 훨씬 적은 110명에 그치게 됩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을 두고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습니다" , p30
사회적 재난에 대한 공동체의 적극적인 대처가, 많은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게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는 정신질환자들이 아픈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돌보았을 때 우리의 안녕이 지켜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억해야 합니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오늘(2022년 1월 26일) 코로나 확진자가 1만 3천 명을 넘었습니다.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당분간 확진자 수 증가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아마도 정신질환자는 더 고립되겠지요. 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정신질환자들의 아픔을 이전보다는 더 기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오늘 당신의 사회는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