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이야기
2017년, 입대를 앞두고 봉사활동을 위해 3주간 소록도에 방문했습니다. 사실 봉사활동이라는 표현보단 '소록도에 계신 한센인을 만나고 왔다'가 올바른 표현일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에 방문하여 한센인의 역사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소록도 전체가 국유지이자 병원으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국립소록도병원의 직원 및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입니다. 환자의 대부분은 고령자이고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지요.
현재 국립소록도 병원은 한센병 환자의 진료와 치료를 담당하고, 한센병 인식 개선, 한센병환자의 사회복귀 등 한센인을 위한 일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자혜의원'은 대한제국 말기-일제강점기 전반에서 한반도 전역에 설립된 의료기관입니다. 을사늑약을 통해 설립된 한국통감부는 지방민의 의료 개선을 목적으로 각 도에 최소 하나의 자혜의원이 개원하게 됩니다. 1925년 비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선총독부는 소록도자혜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자혜의원들을 각 도 산하의 도립의원으로 개편하게 됩니다.
일본은 나병 또는 문둥병으로 흔히 알려진 '한센병' 환자를 관리하게 위한 강제 수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35년에는 '조선나예방령'을 제정하여 조선총독부 나요양소를 설립하였고 이들을 강제 수용할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소록도에 '감금실'을 만들게 되지요.
감금실은 자유를 박탈당한 한센인들을 향한 인권탄압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한센인은 감금실에서 금식, 감식, 체벌을 겪었습니다. 강제 노역과 가혹행위는 만연했으며 부당한 처우에 반항한 한센인들은 감금실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고, 단종 수술을 당했습니다.
한센병 진단을 받게 되면, 호적에서 기록이 지워지고 소록도로 강제로 끌려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화로, 11세의 남아가 한센병 진단을 받아 강제로 소록도로 보내야 했습니다. 차마 아버지는 아들을 소록도로 떠나는 배에 태울 수 없어서 같이 죽자며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냐, 남은 가족은 누가 책임지냐는 아들의 말에 멈추게 되지요.
또한 단종을 위한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가 산모에게 죽어가는 태아를 산모에게 보여주고, 산모에게 죽은 아이를 양동이에 넣어 직접 버리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해방이 왔습니다.
하지만 해방의 목소리는 소록도까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945년 8월 22일, 해방 7일 뒤 소록도갱생원(현, 국립소록도병원)에서는 운영권 장악을 위한 세력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한센인들을 운영권을 자치회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었으나, 갱생원 직원은 한센인들을 살해한 이후 구덩이에 묻는 등 학살을 벌였습니다. 당시 한센인 84명이 살해당했습니다. 이후 꼭 57년 만인 2002년 8월 22일에 84명의 희생을 기리고, 한센인의 인권 회복을 기원하며 소록도 주민들은 ‘애환의 추모비’를 소록도에 세웁니다.
한센병은 나균(한센균)에 의해 감염되는 질환으로 유전병이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지금은 한센병 환자가 한센병 치료제 '리팜피신' 600mg을 단 한번 복용하면 3일 이내에 99.9% 전염력이 소실되는 등 통제된 전염병이며 완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유전성과 전염성을 띈다는 이유로 강제 수용과 임신 중절을 단행했으며 이는 1990년대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2007년 10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됩니다. 법률에 따른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조사에 따르면 피해신고는 2009년부터 2013년 4월 말까지 1만 38건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 중 6462건(신고당시 사망 1758건)이 피해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1년부터 한센인 539명은 국가를 상대로 강제 단종과 낙태에 따른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합니다. 2017년 2월 대법원은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 4000만 원, 단종 피해자 9명에 3000만 원의 배상금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게 됩니다. 법원은 제1심, 항소심 모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대법원 역시 피고 대한민국의 상고를 기각하여 원심 판결을 확정하게 되지요.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들에게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한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위와 같은 침해행위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하여야 하며, 침해행위의 상대방인 한센인들로부터 ‘사전에 이루어진 설명에 기한 동의(prior informed consent)'가 있어야 한다. 만일 피고가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 한센인들을 상대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하였다면 설령 이러한 조치가 정부의 보건정책이나 산아제한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서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위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원심이 설시한 바와 같이 피고 소속 의사 등이 한센인인 원고들에 대하여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 등은 법률상의 근거가 없거나 그 적법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이 사건 수술이 행해진 시점에서 의학적으로 밝혀진 한센병의 유전위험성과 전염위험성, 치료가능성 등을 고려해 볼 때 한센병 예방이라는 보건정책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그 수단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 등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설령 원고들이 위와 같은 수술에 동의 내지 승낙하였다 할지라도, 원고들은 한센병이 유전되는지, 자녀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열악한 사회·교육·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동의 내지 승낙한 것으로 보일 뿐 그들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는 그 소속 의사 등이 행한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에 대하여 국가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
『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230535』
한센인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날을 기원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에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작지만, 깔끔하고 정돈되게 한센인들의 역사를 기리고 있는 공간입니다.
한센병박물관에서 만난 한센인의 시를 옮기며 글을 맺습니다.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감금실』, 김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