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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Oct 06. 2023

두터운 현실을 산다는 것

자살시도자를 만나며 (1)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황현산,『밤이 선생이다』

 

매일 같이 응급실에는 자살시도자가 찾아온다. 모든 환자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나와 비슷한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응급실에 올 때에는 아린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그들의 현재는 내 현재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 원래 내 현재는 조그마했기에 타인의 현재가 내 지금이 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자살시도자들을 만나는 일들은 내 현재를 조금은 더 두텁게 해 주었다,


두터운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 일이 아닌 일에도 조용히 눈물 흘리며, 어떤 이들은 소리 내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자기만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비딱하게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달랐었다고 말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힘든 순간에 내게 자신의 현재를 내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내 현실을 그들의 현재로 여겨주었기에 이겨냈던 순간들이 있다. 힘들었던 순간이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조선시대 노비들의 고통까지 내 현재로 여기는 위인은 못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나누어줄 작은 여지 정도 있으면 좋겠다. 애도가 필요한 순간에 눈 감을 수 있는 넉넉함 정도 있으면 감사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 두터운 현재를 지니지 못한다. 눈앞에 현실을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현재만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회색 빛이 도는 세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서로 일깨워 주는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상을 맹신하면 현실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사회를 꿈꾼다. 슬픈 사람이 위로받는 사회, 서로에게 고개 돌릴 틈 정도는 있는 사회.


그래서 현실에게 이 정도는? 하며 이따금 묻곤 한다.

가끔은 외면당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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