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표예림 님을 추모하며
사람들은 고통에 같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그 고통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때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신체적 고통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고통의 양은 정해져 있고, 그 한계에 도달하면 한계를 넘어설 무언가를 내주어야 한다. 슬프게도 너무 많은 사람이 그 대가로 목숨을 내놓는다...역설적이지만, 고통으로 정신이 소진된 사람의 생각으로는 자살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 정반대의 조치다.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일을 베푸는 거라고 생각한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66p
잠을 설쳤다. 보면 영향을 받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유튜브에 게시된 유언을 보았다. 멀리서 그녀의 용기를 응원했던 나로선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가해자에게 분노,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삶에 대한 무망감, 자신을 아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미안함으로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마 고개를 가눌 수 없었다.
그녀의 27년 삶 중 12년의 학교폭력,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학교폭력을 고발한 이후 따라온 수많은 2차 가해 속에서 과연 나라면 버틸 수 있었을까.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당신은 충분히 애썼어요.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요. 이제 평안해요.
나는 다시 자살시도자를 만나러 가지만, 자살이란 정말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로리 오코너가 말한 자살은 사회를 대한 기소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는 어떤 답을 낼 수 있을까. 아니 답이 있기야 한 걸까.
가슴 무거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