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환자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보다,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 히포크라테스
항정신성 약물에 대한 환상을 다루기 이전에, 그 배경에 대해 다루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1935년 예일 대학의 신경학자 존 풀턴(John Fulton, 1899~1960)은 침팬지 연구를 진행합니다. 행동 조절이 안되고, 난폭한 침팬지의 전두엽 신경을 절제한 것이지요. 그러자 난폭했던 침팬지가 극적으로 차분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보고서는 학계의 주목을 끌었고,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안토니우 에가스 모니스(Antonio Egas Moniz, 1874~1955)에게 읽히게 됩니다. 그는 정신질환자에게 이를 적용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뇌의 일부를 암처럼 절제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는 존 폴턴의 보고서가 등장한 지 3개월 만에 인간에게 적용합니다. 현대 연구 윤리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1935년 11월 12일, 처음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합니다. 1년 동안 20명의 정신질환자에게 수술을 진행하고, 35% 환자가 효과를 보고, 35% 환자가 약간의 호전이 있었다는 결과를 학회에 정식으로 보고했지요. 그의 수술법은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휩쓸었고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합니다.
당시 세계는 큰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해 정신장애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에게 쏟아야 하는 예산에 부담이 있었지요. 그래서 치료 효과가 엄밀하게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전두엽 절제술이 광범위하게 시행됩니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부작용에 시달리고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전두엽 기능의 영구적 손상으로 인해 감정의 상실, 자발성과 독립성의 상실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전두엽 수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졌고, 1977년도에 이르러서야 미국 의회에서 조사단을 꾸려 실태조사를 진행합니다. 그 결과 '극히 일부의 환자에게 적절하게 시행할 경우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보고하지요.
이만큼 20세기 초는 정신의학의 혼란기였습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비과학적인 치료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전두엽 절제술뿐만 아닌 많은 비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정신질환자들이 희생되었지요.
* 현재도 일부 환자를 대상으로, 뇌의 특정한 영역만 시술하는 정위적 시술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CT 등을 활용해 3차원으로 뇌의 국소 부위를 분석해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찾아서 수술하는 것이지요. 이조차 기존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항정신성 약물의 등장은, 정신의학계에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1950년 프랑스 론풀랑 제약회사는 수면 작용과 진정작용이 있는 약물을 합성해, 우연히 최초의 항정신성 약물 '클로르프로마진'을 발견합니다. 처음으로 조현병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고 공인된 약물로, 장기간 입원에 있던 수많은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정신병원에서 벗어나게 되는 소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요. 세계적인 의료 역사학자 에드워드 쇼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클로르프로마진이 정신의학계에 일으킨 혁명은 페니실린이 의학계에 등장했을 때와 비교할 수 있다. 약이 비록 정신증의 원인을 제거해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정신병의 주요 증상을 제거해 줌으로써 잠재적 정신분열증 환자도 수용소에 갇혀 있지 않고 비교적 정상적 생활을 꾸려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 에드워드 쇼터, 『정신의학의 역사』, 최보문 옮김, 바다, 418쪽
항정신성 약물은 수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등 완벽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치료법이 없었던 중증 정신질환자들에게는 희망과도 같았습니다. 항정신성 약물의 발견으로 인해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의 유익을 누리게 된 것이지요.
클로르프로마진의 개발은 1950년도 초에 이루어지지만 그 약의 효과의 기전(원인)은 1960년도에 이르러서야 밝혀지게 됩니다. 클로르프로마진이 우리 뇌의 도파민을 억제(길항)하는 효과를 발견한 것이지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클로르프로마진의 효과를 보았던 정신의학자들은 조현병의 원인이 뇌의 도파민 체계의 과잉활동이라는 '도파민 가설'을 세웁니다. 이처럼 클로르프로마진의 발견은 정신질환을 뇌의 질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뇌의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물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조현병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정신질환에 사용되는 다양한 항정신성 약물이 등장하게 되지요. 이러한 발견은 정신의학자들에게 약물을 통해 정신질환이 머지않아 정복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람은 심오하고 복잡한 존재였습니다. 당시 조현병의 원인이 도파민의 과잉분비로 생각했지만 현대까지 이어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반증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조현병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항정신성 약물로 정신질환을 정복하겠다는 그들의 꿈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허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것이 환상이었단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많은 제약회사들은 항정신성 약물을 마케팅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전문 의학품(의사의 처방이 필요한)을 대중매체에 광고할 수 있도록 허가한 미국은 정신건강의학과의 과잉진료와 처방이 사회문제로 드러나게 됩니다. 정신의학의 성서로 여겨지는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IV(2013년 DSM-5 개정)의 집필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앨런 프랜시스는 이러한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제약회사들은...삶에서 예상되는 많은 문제들은 알고 보면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한 정신 장애이기 때문에 약을 털어 넣으면 해결된다고 은근히 알리는 방법을 써서 환상적인 수입을 올렸다. 최고로 창의적인 광고의 귀재들과 최고로 광범위한 시장 조사가 결합하여, 이전에는 미치지 못했던 영역까지 제품을 밀어냈다. 그들은 고객에게 삶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꼬드겼다. 간단한 조치로 뇌의 균형을 바로잡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약은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화학을 통해 더 나은 인생을 성취하도록 돕는다고 은근히 약속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치아를 교정하기 위해서 치과의사를 찾아간다. 그렇다면 완벽하지 않은 뇌를 교정하기 위해서 의사를 찾아가선 안 될 게 없잖는가?...약도 그렇게 팔지 말란 법이 없잖은가?"
◆ 앨런 프랜시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 북스, 152쪽
"최초의 항정신병약, 최초의 항우울제, 최초의 신경 안정제는 모두 일회적인 요인으로 발견되었다...이렇듯 우연히 발견된 최초의 약들을 넘어서는 신제품은 이후 제약 회사의 60년 연구에서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앨런 프랜시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 북스, 148-149쪽
항정신성 약물은 분명 인류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약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항정신성 약물이 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진정으로 당사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뇌의 화학적 불균형'만으로는 정신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약물치료가 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약물 치료가 줄 수 있는 것]
1. 양성 증상 감소
항정신성 약물은 조현병 환자들의 양성증상의 감소에 기여합니다. 환청과 망상 등으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환자가 약물 치료를 통해 현실감을 찾는 경우도 많지요. 대부분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조현병 당사자들은 주치의와 상의를 통해 약물을 조절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으로 구분됩니다. 양성 증상에는 환청, 망상, 기이한 행동 등이 있고 음성 증상으로는 정서적 둔마, 무언어증, 무욕증 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양성증상은 없어야 할 것이 생기는 것이고, 음성증상은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2. 기분 및 충동 조절
조울증 및 우울증 당사자들은 기분 조절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조울증 환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끝없이 기분이 고양되다가도, 다시금 바닥으로 떨어지곤 하지요. 이럴 때 약물치료는 당사자들에게 도움을 주곤 합니다. 예를 들면 기분 안정제(리튬, 발프로에이트 등)는 당사자가 조증인 상황에서 고양된 기분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살 예방의 효과도 보고 되고 있죠. 우울증 환자에게는 이들에게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등을 조절해 주는 다양한 항정신성 약물이 사용됩니다.
3. 수면장애 완화
연구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 80%가 수면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하는 등 당사자들에게 수면 장애는 익숙합니다. 또한 불면증이 다시금 당사자를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들고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당사자들에게 약물치료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분이 약물 치료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물치료가 줄 수 없는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약물치료가 줄 수 없는 것]
1. 자존감
항정신성 약물은 정신장애인의 자존감을 형성해주지 않습니다. 정신장애인은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낙인에 노출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가족에게 느끼는 죄책감, 스스로에 느끼는 수치심 등 복합적인 사유로 인해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에 서툰 경우도 있습니다. 정신 장애로 인해 직장을 갖게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이를 반영하는지 조현병 당사자의 자살률은 일반인에 비해 20~50배 정도 높아서, 평생 자살 사망률이 4~10%라고 보고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존을 지키기 힘든 상황 속에서, 항정신성 약물은 정신장애인의 자존감 확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이들이 자존을 지키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이 크기 때문이지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2021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와 업무를 가깝게 할 의향이 없다 (56.3%) , 친목 모임을 가질 의향이 없다 (55.0%), 친구로 지낼 의향이 없다(53.0%), 정신질환자의 이웃으로 이사 갈 의향이 없다 (67.7%) , 결혼으로 가족이 될 의향이 없다 (81.0%)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는, 당사자들에게 '왜 당신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느냐'라고 묻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이 자존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약물 관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을 맞이하는 공동체에 있지요.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 김현경, 『 사람, 장소, 환대 』, 문학과지성사, 31쪽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 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 김현경, 『 사람, 장소, 환대 』, 문학과지성사, 207쪽
2. 정체성
항정신성 약물은 정신장애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해주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는 당사자를 환대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스스로 본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질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격제한제도로 인해, 28개의 이르는 전문직(의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등)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절대적으로 제한되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일을 해도 좋다는 확인을 받아야만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이들에게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가 묻게 됩니다.
3. 사회적 고립의 개선 및 죄책감과 낙인의 치유
약물치료는 당사자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이나, 죄책감, 트라우마 등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치유는 관계 속에서 가능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대니얼 피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친밀한 관계 맺기, 사랑의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정서적 스트레스가 인간관계와 무관한, 화학적 불균형 때문이라는 확신을 확신시켜 가고 있다. 우리 중 일부는 희망과 회복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힘이라는 인식을 넓혀가지만, 우리 사회는 심리적 고통을 주요한 치료로 약물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 대니얼 피셔,『희망의 심장박동』, 제철웅 외, 한울, 23쪽
우리 공동체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약물 관리를 해야 한다고 항상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손을 뻗고, 친밀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분야 인력 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나타납니다. 2019년 기준, 캐나다가 10만 명당 277.5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일본은 107.0명, 미국은 105.0명, 한국은 30.6명에 불과했습니다.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비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지요.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어느 날, 한 환자가 내게 '선생님은 인생에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게 뭐였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내게 힘이 되었던 것은 약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에요. 그건 바로 사람과의 관계였어요' 하고 대답했다. 사람에게 받은 슬픔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미움과 허무함도,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회복되었다."
◆ 나쓰카리 이쿠코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홍성민 옮김, 공명, 11쪽
“암흑과도 같은 삶에 전환점을 만들어주고,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을 치유해 주고, 구원해 준 것은 내 주위의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덕분에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 밝지 않은 인생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둠에서 걸어 나와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의 힘’이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한 나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 나쓰카리 이쿠코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홍성민 옮김, 공명, 9쪽
정신장애인 당사자로, 일본에서 정신과 의사로 활동 중인 나쓰카리 이쿠코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약물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덕분이라고 담백하게 고백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정신과 병원에서 일을 하며, 퇴원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퇴원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원하시는 분을 많이 봅니다. 이 분들을 맞이할 때, 속으로 '약물관리를 잘 안 하셨나?'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곤 합니다. 그분이 돌아간 세상에서 겪었을 아픔에 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말이죠. 약물관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 멀리 있지 않았음을 돌아봅니다.
환자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약물치료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가 약물 치료가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의 병에 초점을 맞추게 하기 때문이죠. 관계와 공동체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당사자들이 고립되어 가는 것을 방치하게 됩니다.
초점을 '병'이 아니라 '개인' 나아가 '사회'로 옮길 수 있어야, 건강한 대안들이 고민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그들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공동체의 더 많은 고민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주거시설의 확립,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기능과 규모 확대, 지역사회 중심 치료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현재 열띤 토론을 거치고 있는 유력한 대선후보들 모두 주택 수백만 호를 새로 공급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지만, 사회적 약자들과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은 단 1호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죠.
"오늘날 정신건강 시스템은 개인의 증상을 완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더 깊은 내면의 인간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정신건강 시스템 자체는 더 깊은 문제에 의문을 던지지 않은 채 단순히 사회의 증상을 치유할 뿐이다"
◆ 대니얼 피셔,『희망의 심장박동』, 제철웅 외 옮김, 한울, 29쪽
우리 공동체가 조금 더 깊은 문제에 의문을 던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