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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Feb 08. 2022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 말해줄 수 있다면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1978년 4월, 무카이야치 이쿠요시(이하 '무카이야치')는 '우라카와 일본적십자병원'에 정신과 사회복지사로 오게 됩니다. 당시 무카이야치는 친구에게 '3년만 지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며, 이곳에 터를 잡게 될 줄은 몰랐지요. 그는 당시 선배도 없었던 신임 사회복지사였습니다. 병원 내 상담실조차 없어서, 간호사 대기실에 책상 하나 놓을 수 있는 공간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전화 한 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면서 일을 했던 그에게,  '정신장애인의 사회 복귀'는 말할 거리도 못 되었지요. 타지에 외부인으로 온 본인이 '사회 복귀'를 가장 필요로 했습니다.


같은 해 6월, 우라카와 국철 회사에서 일하던 조현병 당사자 오카 히로야키는 '자신처럼 정신과에서 퇴원한 동료끼리 모일 기회를 만들고 싶다'라고 무카이야치에게 제안합니다. 정신장애인 회복자 모임 '도토리 회'의 시작이었습니다. 4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점차 정신질환자들이 모이게 됩니다. 다음 해, 무카이야치는 낡은 교회를 빌려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눈보라가 치면 건물 안까지 들이치고, 부엌은 얼어붙던 곳이었지요.


무카이야치는 사회복지사란 '정신질환자와 아무 때나 가까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 이어야 하고, '공사 일체'를 표방했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과 같은 지붕 아래, 즉 '베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지요. 그곳에서 지역 아이들을 위해 토요 학교를 열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자 자조모임, 정신질환자 자모 모임을 이어갑니다.


당시의 '베델의 집'은 단순한 주거지에 불과할 뿐, 앞날이 불투명했습니다. 당시 우라카와 지역에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습니다. 베델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일으키는 사고도 계속해서 일어났지요. 술을 마시고 폭력을 하거나, 환청 및 망상으로 인해 도로에 맥주병을 던지는 등 지역사회에 민폐를 끼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장애인은 병원 주변의 낡은 싸구려 연립주택에서 살았는데, 재발로 인해 재입원하게 되는 경우엔 경찰이나 구급차가 오는 것은 부지기수기에 항상 지역사회의 빈축을 샀지요. 이처럼 당시 우라카와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는 것이었습니다.

 

1983년 10월, 이러한 상황의 돌파구가 된 것은 베델의 집 거주자 '하야사카 기요시'였습니다. 그는 조현병이 발병한 이후,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슨 일이든 '3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몸이 굳게 되곤 했습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는 많았지만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겨우 일을 구해도, 몸이 굳게 되어 베델의 집 식구들이 찾아가 데려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델의 집 사람들이 그를 위해 '잠시'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일은, 우라카와 지역의 다시마를 포장하는 부업이었습니다. 사업은 5년 동안 지속되었고, 규모도 점차 커졌습니다. 하지만 5년 뒤, 베델의 집 회원들의 재입원 등으로 일손이 부족해졌습니다. 또한 거래처와 베델의 집 회원과 큰 마찰이 생겼고, 베델의 집과 거래를 중단합니다.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다시마 포장 사업이 중단된 것은 '베델의 집'에게는 기념할만한 일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스스로 우라카와 다시마 산지 직송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다시마는 투기적 요소가 강한 사업입니다. 매년 작황이 크게 가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자금력과 확실한 판매처를 확보해야 했지요. 더욱이 판매해야 할 매장의 대부분 오래된 유통 경로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델의 집 사람들은 '장사를 해보고 싶다' , '우라카와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하며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다시마 산지 직송 사업은 지역사회로 나가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사업이었습니다. 거래처 확보, 다시마를 담을 봉지, 밀봉 기계, 라벨지 등 사업에 필요한 제반 사항이 많았고, 베델의 집 사람들이 직접 인맥을 가꾸며 사업을 준비했지요. 구성원들의 불안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회의는 계속되었고, 아이디어가 모였습니다. 그 결과 '회사'를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형식적으로 그 해 연말 1988년 12월, '베델의 집'은 소규모 공동 작업장 '우라카와 베델'을 설립합니다. 회원 중 한 명(사사키 미노루)이 사업 밑천을 위해 10만 엔을 출자했지요. '우라카와 베델'은 그 10만 엔으로 다시마를 사서 가공하는 사업을 시작합니다.    


장사는 단순한 다시마 봉지 포장에서 시작합니다. 회원들이 다시마를 자르고 다듬어 봉지에 넣습니다. 마무리로 크레용으로 그린 다시마 그림을 스테이플러로 붙입니다. 모두 손작업으로 작업한 아마추어 세공 제품이 완성되었지요.


1년이 채 되지 않은 1989년 6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베델의 집'은 흑자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작업장 구성원에게 첫 '급료'가 지급됩니다. 고생해 얻은 장사의 보수였습니다. 그리고 1989년 말, 베델의 집은 종이 기저귀 등 복지 용품을 판매하는 '복지 숍 베델'을 개점합니다. 베델의 집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곤 했던 우라카와 일본적십자병원은, 청소 외주 일을 맡기게 됩니다. 1989년 10만 엔의 자금으로 시작한 베델의 집의 장사는, 6년 후엔 1천2백만 엔, 8년 후에는 2천2백만 엔의 매출을 기록하게 됩니다.  


출처 : https://bethel-net.jp/ (베델의 집 공식 홈페이지)


1993년 6월 4일, '베델의 집은' 염원하던 공식적인 '회사'를 설립합니다. 회사 이름은 '유한회사 복지 숍 베델' 사장은 베델의 집 회원(사사키 미노루)였습니다. 베델의 집 모든 작업장 사업의 총수입은 1998년, 1억 엔을 넘어서게 되지요.


베델의 집은 일본에서 크게 유명해졌고, 매년 수천 명이 견학을 오는 등 이들의 이야기들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2022년 지금도 베델의 집은 다시마 산지 직송 판매 사업과 카페 및 매장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업재활 (재활용품 수거, 청소, 농업, 창작활동 등)과 공동주거사업, 그룹홈 사업, 방문간호 등을 이어오고 있으며 매년 수많은 정신장애인들이 베델의 집의 도움을 받습니다.


* 출처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 출처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지금까지 간략하게 베델의 집의 성장과정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베델의 집의 성과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그들의 철학에 있습니다. 이들이 지켜온 몇 가지 규칙을 소개하려 합니다.


1.  안심하고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직장  


베델의 집 작업장은 조금 이상한 장소였습니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아침에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일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베델의 집' 멤버들 대부분은 예전에 일을 했었지만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불안, 잡다한 걱정이 쌓여 병이 재발함으로써 직장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한다'는 말을 들으면 늘 '재발'이나 '좌절'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일한다는 것은 가장 고생스러운 생활 체험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베델의 집에서는..."안심하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영원불멸의 키워드로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66p  


'하야사카 기요시'는 무슨 일을 하건 '3분' 동안 밖에 할 수 없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델의 집에 들어온 이후,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에 도전했지만 매번 '3분'의 이유로 직업을 유지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베델의 집이 일반적인 시각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그의 '3분'이 '10분'이 되도록 기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3분'인 채로 있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요.


이와 같은 원리는 베델의 집을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실패로 힘들어왔던 '베델의 집' 사람들은 이곳에서는 일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베델의 집의 약함을 긍정하는 태도는, 사람을 모았고 연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만약 그에게 다른 사람의 두 배나 되는 끈기와 다른 사람을 얼씬 못하게 하는 작업 능력이 있었다면 현재의 '베델의 집'의 사업은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야사카의 '약함'이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을 잇는 '유대'가 끊이지 않게 된 것이다...일반 기업이라면 열 명이 처리하는 일을 다섯 명이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중시하고 효율을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베델의 집'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일을 두 사람, 세 사람이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베델의 집' 식의 효율화다"

-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206p  


한 회원은 오전밖에 일을 하지 못해서 오후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요청받은 회원은 돈 계산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돈 계산을 할 수 있는 한 명이 더 돕기로 합니다. 이처럼 한 명의 정신장애인의 한계가 두 사람의 고용을 낳고 인력의 확대로 이어집니다. 바깥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비효율이겠지만, 베델의 집에선 이것이 '효율화'였습니다. 이렇게 베델의 집은 유지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일주일 내내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하루만 일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이 '실업'입니다. 하지만 하루 일하는 것으로 충분한 '베델의 집' 사람들에게 하루의 일은 '취직'과 같은 것이지요.


베델의 집은 '장사'를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생을 되찾기 위해서" , 정신장애인은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며, 고통을 제거하고 불안을 없애고 고민 자체를 없애는 것을 목적을 삼곤 합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취업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요. 그 과정에서 '고생' 이 함께하는 인간적인 행위의 풍요로움을 놓칩니다. 그렇게 '베델의 집'은 그들이 잃어버린 '고생하는 힘'을 일상에서 되찾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경쟁 원리에 지배당하는 일상, 예전에 그토록 괴로워했던 일상 속으로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되돌아가는 '사회복귀'를 지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병의 깃발'을 나부끼면서 '장사'를 통해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고생이라는 현실로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52p


2. 베델의 집에 오면 병이 드러난다.


베델의 집에는 비장애인들도 자신의 '병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델의 집'을 간간히 도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부임하게 된 목사 '하마다 유조'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고 '베델의 집'사람들은 착한 사람 냄새를 식별하듯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쾌감을 느꼈지만 이내 몰려드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고, 스트레스는 쌓여갔지요. 노력하려고 하면 할수록 베델에 집에선 고립되어 갔습니다. 이미 한참 넘어버린 허용량은 그를 폭발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의 속임수나 도피는 통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3분'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하야사카 기요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 병을 드러내."


그는 본질을 간파당한 나머지 눈에 보이는 '베델의 집'의 냉장고 같은 물건에게 뛰어듭니다. 그뿐이 아니라 회원들에게도 감정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목사로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지요. 베델의 집에서는 자신이 직접 명명을 붙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명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마다 유조'는 자신의 병명을 '착한 척하는 폭발형 커뮤니케이션 장애'라고 명명합니다.


"저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고 안심했던 것 같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불안해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자신을 속여왔습니다...베델의 집은 실컷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줍니다. 철저하게 내려버려 둡니다. 떨어질 데까지 떨어뜨려 줍니다. 약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받아들여주는 '베델의 집'은 정말 마음이 넓은 '장소'입니다. 지금의 저는 그런 '장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 우라카와 베델의 집 지음, 베델의 집 사람들 (궁리, 2008), 187p  


베델의 집에 작동하고 있는 '약함의 긍정'은 그 안에 사람들이 척하지 않을 수 있게 돕습니다. 자신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게 돕는 것이지요.  


"정상인에 눈으로 보면 대체로 비상식적이고 불가해한 언동과 결점만이 눈에 띄는 그들이지만, 그들 모든 것을 통해 보이는 것은 그들의 과장 없는 정직한 생활 방식이다. 병이 있어도, 아니 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 그대로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치장하고 젠체하며 일부러 자신을 꾸미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파탄이 나고 마는 사람들인 것이다...그런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방문자는 그곳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정신장애인의 진실한 모습 같은 게 아니라, 그들 앞에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치장하지 않고 일부러 꾸미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베델의 집' 사람들 앞에 있을 때...'우스꽝스러운' 자신이 보이는 것이다."

-  사이토 미치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삼인, 2006), 115p


3. 약함의 힘 - 네 모습 그대로 괜찮아


베델의 집은 약함이나 모자람을 알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다양한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그것을 서로 예방하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강함'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 안에 '약함'이 갖는 가능성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베델의 집' 은 그렇게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일반적인 병원이나 의료진은 재발 방지의 명목으로 정신장애인에게 지나칠 정도로 '실수할 권리'를 빼앗아왔습니다. 베델의 집은 삶의 다양한 어려움과 실수를 '살아가는 고생'으로 소중히 여기는 장을 만들어 주지요. "재발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좋다" ,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 "헤매더라도, 중도에 실패하더라도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등의 말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습니다.


"절망에서 시작해 깊은 환멸을 빠져나가 오로지 내려가기만 하는 생활 방식이기 때문에 '베델의 집'에서는 고생이 주어지고 고민이 권유된다.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맞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활 방식이 제창된다. 신기하게 아니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 생활 방식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그 밖에 다른 어떤 곳에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좋은 표정, 깊은 안도감, 생각지도 못한 풍요로움을 낳고 있다."

-  사이토 미치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삼인, 2006), 282p


'베델의 집'은 약함을 강함으로 나아가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약함이란 강함이 약해진 것이 아니다. 약함이란 강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도 아니다. 약함에는 약함으로서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수십 년간 그들의 문화를 지켜왔고, 그대로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고 고생의 연속이었지요.  그래서 '베델의 집'엔 독특한 '약함의 문화'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과 병원에서 퇴원을 앞둔 분들과 상담을 합니다. 퇴원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 때문이기도 하고, 지역사회자원(정신건강복지센터, 재활시설 등)을 소개해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면담에서 빠뜨리지 않고 했었던 말이 있습니다. 외래 진료의 유지, 약물관리의 중요성, 지역사회자원 이용 등을 강조하며 '재발의 방지가 중요하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실제로 재발률을 낮추는 요인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환자를 대하며 '재발해도 괜찮다' , '당신 있는 모습 그대로 괜찮다'와 같은 약함을 긍정하는 태도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정신장애인을 만나고 있는 제게 '베델의 집'의 모습은, 전문가로서 제 모습을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베델의 집'은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도리어 고생과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지역사회에 민폐도 끼치면서 말이죠. 우리는 약점을 감추고 가면을 쓰는 것에 익숙합니다. 어떤 경우엔 그 가면이 자신의 진짜 얼굴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요. 가면은 우리에게 잠시 안도감을 줄 수는 있어도, 서로가 진실하게 '만나는' 일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외로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가 정신장애인에게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장소이기를 바랍니다.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일이 가능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으면서 말이죠. 그런 저에게 '베델의 집'의 이야기는 그러한 공동체가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베델의 집은 정신장애인이 어떻게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공동체는 어떠한지 묻고 있었습니다.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고 외치면서 말이죠. 베델의 집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2021년, 베델의 집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친애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님...우리는 당신의 편지 중 '나는 당신에게 약함을 주었습니다'라는 말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겨온 '약함을 유대로'라는 표어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러니 앞으로는, 당신과의 만남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비관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많은 괴로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 경험이 우리의 생활과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베델 바이러스'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당신도 우리의 소중한 동료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아가고 싶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이렇게 적었어도 가끔 당신을 잊어버리고 화내는 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순조롭다'라고 생각하고 지켜봐 주세요.

- 베델의 모두로부터

*출처 :청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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