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탄다 보다는 잘 "논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사람들을 보면 "모든것에 진심"인 경우가 참 많아요.
치열한 학교 교육시스템부터 시작해서 일터에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즐기라고 만들었던 게임마저 너무 진지하게 한 나머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탄생하고 이스포츠가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도 다른 국가들보다 빨랐죠.
스키도 비슷한거 같아요. 즐기는 활동, "레져"이기도 하지만, 장비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가며 월드컵계열 모델같은 선수용 장비들을 마련하시는 분들이 많고 반경, 길이, 플랙스같은 수치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신중하게 장비를 고르시죠. 여기저기 스키관련 커뮤니티를 보면 카빙 라인같은 기술적인 고민들도 많이 읽어볼 수 있어요... 이런것들을 보며 취미마저 진지하게 대하는 민족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
다른분들과 비슷하게 기술적인 면들을 계속 파는것도 재미있었지만, 뭐라할까, 저는 태생부터 조금 반골(?)기질이 있었어요. 뭔가 주류는 적당히만 쫓고 싶고, 서브컬쳐쪽도 체험해 보고...
어느덧 용평 레인보우를 크게 힘들이지 않고 내려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되니, 스키도 뭔가 다른 방식으로 즐겨보고 싶었어요. 어느 스키장의 어느카페 핫쵸코가 맛있나, 어느 슬로프 경치가 좋나, 스키를 들고 비행기는 어떻게 타야 하나... 이런쪽으로 열심히 연구를 하고 파기 시작했죠.
개인적으로는 지인들과 같이 스키를 타러 놀러갔을 때, "잘 탄다"라는 말 보다는 "잘 논다"라는 말을 들을때 더 기분이 좋아요.
경치 좋은 슬로프를 같이 내려가면서 적당할때 쉬어주고, 식당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점심 먹으러 들어가고, 오후에는 범프 위에서 점프도 해 보고, 조금 지칠때즈음 핫쵸코 한잔하러 산 중턱이나 꼭대기의 카페를 가고. 이렇게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비행기에 스키를 실어서 멀리 원정도 가 보고 말이죠.
안타깝게도 관광에는 "레벨/인증"같은 개념이 없어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기도 힘들고, 어느정도로 잘 즐기는지를 보여주기 힘든점은 아쉽더라고요. 그래도 그동안 영상으로만 보았던 해외 스키장이나 유명한 슬로프들을 하나하나 방문해 가며, 하지만 가끔은 눈보라에 갇히는 등 고생도 하면서 나름의 목표를 하나하나 쫓아가고 있어요. 그런만큼 머릿속엔 이런저런 이야기거리들도 많이 쌓였고 말이죠.
(하지만 그 와중에 일반인들이 방문하기 힘든 무주 레이더스 상단이나, 가리왕산 올림픽코스, 무주 스피츠같은 곳 들은 정말 궁금하네요)
관광스키, 그리고 잘 노는 스키를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비정기적으로 강습은 가끔 받고 있어요. 선생님들께서 이런저런 편하게 스키를 타는 팁들을 알려주시기도 하고, 안전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 주시고, 제가 잘 모르는 숨겨진 슬로프로 안내도 해 주시거든요. 그리고 "라떼는 스키장이~" 같은 뒷이야기 듣는 재미도 있고 말이죠. 그리고 그룹강습을 받다보면 같은반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종종 관광스키에 진심이신 분들을 만나게 되면 그분들이 풀어주시는 다른 해외스키장 썰들이 그렇게 재미있습니다. 그러면서 아 다음 스키장은 저기로 가야겠다 하는 부푼 꿈을 안게 되기도 하고 말이죠.
잘 노는 스키를 지향한다지만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네요. 여가비의 많은 부분을 스키로 지출하는 만큼 비시즌엔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여름휴가는 최소한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도 스키타고 눈을 가를때의 그 중독성은 정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