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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Apr 16. 2021

문과생에게 기계란?

- 기계와 대화를 합니다.

낮 12시 프로그램을 하고 있을 당시, 

나는 이른바 '쪽대본'과의 전쟁(?)이었다. 


시사 중심의 프로였던 터라, 

실시간으로 바뀌는 뉴스와 어떻게든 생방 5분 전까지 

가장 최신 뉴스를 다루고 싶었던 선배님들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다보니 매일 쪽대본의 연속이었다. 


내가 맡고 있던 코너는 하루 전에 나올 수 있는 사연각색 꽁트였던 터라, 

미리 준비가 가능했지만, 선배님들의 시사원고는 상황이 달랐다. 

그래도 매번 부탁드렸다. 

'선배님 생방 30분 전까지만이라도 원고가 나왔으면 좋겠어요...ㅠㅠ' 


부탁을 드리고 나면 선배님도 맞춰주려고 노력하셨다. 

허나, 며칠 지나고 나면 이 또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건지...  

원고는 생방이 시작됐음에도 나오지 않은 날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생방 중에 원고를 프린트 해야했다. 

문자창을 확인하며, 청취자들의 반응 문자를 모니터에 올려야 하면서 

동시에 메일을 초 단위로 확인하며 선배님의 원고가 도착했는지 봐야했다. 

겨우 원고가 도착하면, 그 즉시 프린트해서 DJ들에게 넘겨줘야했다. 


그런데 요상하기도 하지. 

바쁘고 정신없는 날은 꼭 뭔가가 말썽이었다. 

내 경우는 매번 프린터기가 애를 먹게 했다. 


그러니까, 노래 한곡이 흐르고 있다. 길어봤자 4분 내외다. 

그 안에 원고를 프린트 해야한다. 

디제이 각각 한부씩, 감독님 한부, 피디님 한부, 내가 봐야 할 한부. 

코너 하나에 평균 A4 4~5장이었는데, 

사람수대로 프린트를 하려면, 일단 제일 급한 디제이의 원고 두 부.

4장 기준으로 8장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은 감독님께 드릴 4장이 나와야했다. 


그런데, 4분 안에 제일 급한 디제이의 원고, 총 8장이 나오는 일. 

프린터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발 동동 거리며 손톱 물어뜯을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프린터기가 덜컹덜컹덕그르르르르~~~ 

그릉그릉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예감이 좋지 않은 날은... 

어김없이 턱!!! 숨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프린터기가 종이를 먹어치우고 좀처럼 뱉어내질 않았다.  


이 때 나는 소리친다. 

"프린터기가 고장났어요!!!" 




소리치며 상황을 알리고, 나는 어떻게든 프린터기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토너 문제인지, 종이가 씹혔는지를 뜯어보며 확인해봐야 했다. 

하지만 토너 문제도 아니고, 종이를 씹지 않았음에도 문제가 생긴 경우엔 

일단 프린터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고!

그러는 사이 모니터로 원고를 띄우거나, 원고 한부로 두 디제이가 사이좋게 보며, 읽어야했다. 

(심지어 게스트가 있는 날은 두 디제이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마이크를 나눠쓰며 소화하기도;;) 


그러는 사이, 다음 코너 원고를 또 프린트해야 했기에, 

나는 급히 정보실로 연결해 말 그대로 '전문가'를 불러야했다. 

하지만 그 분이 1초만에 날아오시는 것도 아니었기에... 

작가실로 뛰어가 프린트를 했던 경우도 있다. 

(그 때 깨달았다. 인간은 위급한 순간 나도 모르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구나... 

 내가 그렇게 달리기가 빠른 인간이라는 걸, 그 순간 알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기계와 대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고칠 수 있는 분야가 아닐 뿐더러,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에게, 기계는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봐도 모르겠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고... 

신비하고 두려운 녀석일 뿐이었다. 


놀라운 건, 타일렀더니 프린터기가 다시 작동된 날도 있었다는거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몇 번 경험했다;) 


"터기야.. 터기야..!! 이러지 말자. 나한테 이럴 필요 없잖아." 

"제발.. 제발 부탁할게... 오늘은 아프지 말자." 

"힘내자. 5장만 더 나오면 되거든???" 


프린터기와 대화하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하지만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무사히 생방을 끝내야했고, 원고 인쇄가 문제없이 잘 되는 것만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글을 쓰는 나는, 

여전히 기계와 친하지 않다. 친해질 수가 없다.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 ㅠ)  

글을 쓰거나 코너를 구성할 때는 자연스럽지만, 

컴퓨터로 뭘 좀 하려고 하거나 기계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엔 말 그대로 똥멍청이가 된다. 


기계 좀 아는 분들은 5분이면 할 일을 나는 1시간씩 걸린다. 

그 사이에 '으악! 앗! 안돼!! 제발!! 어쩌라는거야~ 안해안해!!' 라는 말을 얼마나 외쳐대는지 모른다.....  


AI시대라고 불릴 만큼,  

요즘엔 IT 계열이라든가, 앱 개발자라든가... 

어찌됐든 컴퓨터나 기계와 친한 분들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그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유튜브가 방송을 따라가는 게 아닌, 

이젠 방송이 유튜브를 참고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유튜버'가 돼야겠다가 아니라, 

이제 나도 기계와 어떻게든 가까워져야겠다 다짐하고, 슬쩍슬쩍 영상편집에 도전해보고 있는데... 

하...... 역시나 내 손은 망손, 꽝손, 똥손이다.  


꽝손을 위해 휴대전화로도 쉽게 영상편집이 가능한 어플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나는 대체 뭐가 쉽다는 건지 모르겠다 ㅠ 


아래 영상들은 어플 <VLLO>를 이용해 만들어본 건데, 

이 영상을 본 우리 딸. '이게 뭐야?' 라는 반응. 

휴. 그래그래. 내가 봐도 정말 이게 뭔가 싶다..... 


문과생도 기계와 친해지는 날 오겠지. 

(- 컴퓨터와 친하고 기계 잘 다루는 문과생도 많아요~ 저는 똥멍청;;) 

원고 쓰듯 내 손에도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처음 만들어본 영상편집. 휴...... 노래도 뚝 끊기네요; 

  

같이 방송하던 수의사 박정윤 쌤네 동물병원(올리브 동물병원)에 놀러갔다가 찍어봤어요. 

여기 냥이들은 모두 사연이 있어요. 버려지거나, 아팠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지금은 평온해진 그 아이들을 찍다가 영상편집을 해봤는데, 휴우......... 

글 쓰는 것만큼 영상편집도 잘하는 날이 오리라 믿어봅니다. (내가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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