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Mar 25. 2021

J 감독님의 마지막 문자

- 이런 마침표는 싫다.

J 감독님의 꿈은 '개그맨'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게 그냥 좋다고 하셨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꽤나 웃겼던 터라 

호기롭게 개그맨 시험을 쳤다는데, 

그 때 아셨단다. 

난 웃기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게 개그맨을 꿈꾸며 방송국 주변을 다녔던 감독님은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됐네요..." 

라는 누군가(-그게 우리, 혹은 나일지도 모를) 의 말처럼, 

눈 떠 보니 '효과 감독'이 돼 있었다고 하셨다.


감독님과 함께했던 12시 프로그램은 

2시간 내내 꽁트 중심의 프로그램이다보니, 

대본 사이사이 적절한 효과음은 무조건 필요했다. 


전화통화를 하는 상황이면, 연결된 상태의 효과. 

마음 속 얘기를 풀어갈 땐 에코효과.  

상황에 비오는 날이면 빗소리.

근데 그냥 빗소리도 아니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리. 세차게 들이붓는 소리... 

창문에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 등등. 


무엇보다 효과음은 소리 하나로 상황을 단번에 

이해시켜주는 힘이 있었다. 

밋밋한 부분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방귀소리 효과음도 그렇게나 다양한 줄은 몰랐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센스있는 효과음 덕에 사람들은 웃었다. 


개그맨을 꿈꿨던 감독님은 효과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웃게 했다. 


  



"자! 생일 선물~" 


감독님은 생일 선물이라며 내게 '복권' 한장을 내미셨다. 

스트레스가 꽉꽉 눌러차서 터지기 일보 직전마다 

복권 한장으로 겨우 해소한다는 걸 아셨던 감독님은 

내 화가 또 폭발 직전이었다는 걸 기가막히게 눈치채셨는지... 


"화 말고, 대박 터지시길!!!" 이라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스윽 건네주셨다. 


감독님이 선물한 복권은 굉장했다. 

이렇게 되기도 어렵겠다 싶을 만큼, 

맞는 번호가 단 하나도 없었다. 


당첨 번호를 야무지게 다 피해간 복권. 

그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감독님은 이렇게 생일 선물로도 웃기는 분이셨다. 




디제이와 제작진. 서로서로 돈독했던 탓일까.

아니면 프로그램이 큰 문제없이 잘 굴러갔던 탓일까. 

나는 12시 프로그램만 4년 6개월 이상. 

5년차가 돼 가던 무렵,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일은 같이 못하게 됐지만, 

방송국 안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다음에 식사 같이해요~' 라는 기약없는 말과 함께 

우린 또 각자 자리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12시 프로그램이 개편되면서 이것저것 바뀐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디제이도 코너구성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딱 하나. 효과감독의 의자가 빠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고, 

라면집 알바생도 3개월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하듯, 

어깨 너머로 효과 감독님이 효과음을 어떻게 찾고 쓰는지 

슬쩍슬쩍 보던 사람들은 

'효과 감독이 굳이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였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J 감독님의 자리가 사라지고 말았다. 

쉽게 말하면 해고였다. 


 



'감독님. 괜찮으세요? 식사라도 해요...' 


어떻게 메시지를 보내야 좋을지...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만 하다가 끝내 보내지 못했다. 

어설픈 위로 같았고, 생각보다 감독님은 잘 지내실 거라, 

씩씩하게 또 다른 길을 찾으실거라 믿었다. 


외면인지, 믿음인지 모를 감정 속에서 

나는 또 정신없이 살아갔고, 

J 감독님의 존재는 내 일상에서도 잊혀지는 듯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감독님이 방송국을 나간지 1년이 채 안됐을까.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다. 

방송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정신없고, 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문자' 한통이 왔다.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보니, 

J 감독님이었다. 


'오마나! 내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아이고 죄송해서 이를 어째!!! 

계속 밥 한번 먹자 먹자 하셨는데...'  


감독님의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괜히 찔려서 뭐라 답장을 해야하나 하면서 

메시지를 열었는데...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누가 사망을 했다고...?!!!' 


 



J 감독님의 번호였다. 

감독님의 이름이 정확히 찍혀있었고, 

감독님과 헤어지면서 '밥 한번 먹자' 라는 내용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감독님 본인이 사망했다는 문자였다. 

장례식장 주소가 있었고, 

언제 발인이라는 날짜까지 찍혀있었다. 


신종 스팸인가...? 

처음엔 그저 황당했다. 

말도 안되는 문자라 남편에게도 문자를 보여주며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감독님의 가족이 보낸 문자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감독님이... 돌아가셨다고?! 


믿을 수 없었다... 

부랴부랴 옷을 차려입고, 장례식장으로 가면서도 

감독님이 '메롱~ 놀랐지?' 하면서 장난치실 것 같았다. 


그래. 평소 장난을 많이 치셨으니까. 

아니지. 말도 안돼!! 아직 젊은 분이 왜...?? 


장례식장이 가까워질 수록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안내된 장소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겼는데 

감독님의 얼굴이 보였다. 


환하게, 해맑게,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감독님의 영정사진이... 


온 몸이 돌처럼 굳어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멍하니 서 있었을까. 

감독님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자, 감독님의 아내 분이 보였고, 

방송국에 종종 놀러오던 두 딸들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아내 분을 손을 잡고, 

'어떡해요...' 라면서 왈칵 울어버렸다. 

 

"심장마비요.... 그렇게 갑자기...." 


아내 분은 말을 다 잇지 못하셨다. 


생각해보니 감독님은 효과 감독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용접 일까지 겸해서 일주일 내내 일만 하신다고 했다. 

두 딸들 대학까지 보내려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난 재미있어! 일하는게~' 라며

껄껄껄 웃어보이던 분이셨다. 


일이 너무 고되셨나. 스트레스가 심하셨나. 

아니... 그 이유가 뭐든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거 받아" 

 - 이게 뭔데요? 

"작가 안경!" 

 - 예? 작가 안경이란 게 따로 있어요? 

"그냥 드라마에서보면 작가들이 이런 거 많이 쓰던데...?" 


'내가 작가처럼 안보이나...?

 그리고 나 렌즈 끼는데?' 

 

감독님이 불쑥 주신 안경을 받아들고, 당시엔 이런 생각 뿐이었다. 

 

안경테가 어찌나 빈틈없이 동~그란지... 

평소 이런 디자인을 안써봤던 터라 처음엔 어색했는데

그 안경을 쓴 날이면 잘 어울린다는 말을 종종 듣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눈이 뻑뻑한 날이면 렌즈대신 안경을 찾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주신 안경에서 손이 한참을 머물지만

끝내 나는 다른 안경을 쓰곤 한다.  

감독님 얼굴이 생각나서. 

불쑥 또 떠올라서. 







 







 


 


 




작가의 이전글 2014년 4월 16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