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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23. 2021

2014년 4월 16일

- 세월호

평소와 비슷한 루틴으로,  

나는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알람소리에 

온갖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그날은 녹음도 있고, 생방도 있었던 상황이라 

서둘러 출근했고, 방송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30분 즈음이었다. 


내가 쓴 원고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 

녹음 원고를 프린트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여자 피디가 

"이거 속보 봤어? 배가 기울었다는데... 무슨 말이야...?

 아니 근데 이팀... 이번 주말에 이쪽에 공개방송 잡혀있지 않아??"  


그랬다. 그 주 주말, 우리팀은 4월 19일 토요일에 

진도 쪽에 공개방송 일정이 잡혀 있었고, 

이미 코너 구성과 게스트 섭외까지 모두 마친 후였다. 


사실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터진다. 

이번 일도 우리의 일상처럼 무뎌져버린 또 하나의 사건사고겠거니 생각하며 

나와 담당피디는 가볍게 기사들을 확인했다. 

심지어 기사들 대부분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도 아닌...

침몰 중이라는 다소 황당한 타이틀이었던 터라, 

오늘 안에 잘 마무리 되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했다는 속보 기사를 확인했고, 

우리보다 4시간 앞서 하던 아침 방송에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청취자들을 안심시키는 방송까지 했다.  




"속보 다시 봐봐! 그게 아니래. 아직도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있대!!!"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 오전과 달리 뉴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뒤집혔다...)  


결국 12시대였던 우리 방송에서는 

아침 방송 때와는 전혀 다른 소식들로 방송을 이어가야했다. 


전원 구조가 사실은 아니다.  

지금도 배는 침몰하고 있다.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취자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전원 구조되기를 기도했다. 

우리도 함께 바라며, 어떻게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1시가 넘어가고부터, 

DJ들의 목소리는 더욱 낮아졌고, 

문자 게시판 앞으로는 '사진'들이 전송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딸이 보내준 사진이에요. 친구들과 잘 있다며 보내줬어요" 

"우리 아이가 있는 반 전체 사진이에요..." 

"꽃받침 하고 있는 아이가 바로 우리 첫째에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꿈에도 모르던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며 훗날 추억이라 불릴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혹시 모를 상황을 느꼈는지, 

저마다 부모님에게 세월호 안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낸 것이었다. 


매끄럽게 방송을 이어가야 하는데, 

문자 사연 하나하나에 절박함, 참담함이 묻어있어서 

제대로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방송에서는 '희망'이니 '기적'이니...

이런 단어들을 써가며 애썼지만, 

구조하는 과정얘기만 들어도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실시간 현장상황을 파악해야겠다 싶어서, 

진도에 계시다는 분과 전화연결도 해봤지만 

발만 동동 구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막막함 속에 그 누구도 감히 격려도 위로도 하지 못했다. 




리포터들은 팀을 구성해 교대로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매 방송마다 리포터들을 통해 현장 상황 소식을 들었고, 

끝내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거칠고 깜깜하고 차가운 바다에서 눈을 감은 아이들은 

싸늘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 엄마가 준, 만원도 채 안되는 용돈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아이. 

(-수학 여행지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받은 용돈으로 그 아이가 사고 싶었던 건 뭐였을지..) 

  

# 부모님이 사준 새 신발을 한짝만 신고 있던 아이. 

(- 새 신발을 신고 나갔을 그 아이의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했을지..) 


# 자신을 덮칠 검은 바다가 무서워 친구와 구명조끼 줄을 서로 묶고 있던 아이들.

(- 얼마나 겁이 나고, 괴로웠을지..) 


#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마지막 문자를 남긴 아이. 

(- 남겨질 부모님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을지..) 




두달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우리는.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노래로, 사연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했다. 

(- 물론 어떤 정신으로 방송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때를 떠올리면 늘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다.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기만 하고, 억지로 지우개로 지워낸 것처럼... 흐릿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기분좋은 봄바람으로, 향기로운 꽃으로,  

따스한 햇볕으로, 싱그러운 풀잎으로, 든든한 나무로... 

그냥 그렇게 우리 곁에,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으리라 믿으며...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늘 쓰던 원고를 썼고, 

사연을 읽어갔고, 

녹음 준비를 하고,

생방송을 하고, 

그렇게 살아갔다. 


또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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