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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31. 2021

언제 행복하세요?

-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니?

주말 새 코너를 짜야하는데, 생각만큼 괜찮은 구성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 8시 반부터 방송국에 나와 있었는데, 

저녁 8시가 넘도록, 나는 아직 방송국이었다. 


생방을 끝내고, 내일 생방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주말 코너 회의에 들어갔는데, 3시간. 4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구성만 맴맴 돌았다. 


"일단 원고로 한번 써봐봐." 


E피디는 참 쉽게 얘기했다. 

(원래 남일은 뭐든 쉬운 법이다..) 


회의할 때 이미 아이디어를 너무 많이 뱉어내서, 

머리가 오류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런 상황에 새 코너 구성을 당장 원고화 시켜보라니... 


"저 그냥 집에 가면 안될까요? 머리가 작동을 안해서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왜 인지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사실 E피디는 소문난 워커홀릭이었고, 

꼼꼼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주말 새 코너구성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나와 덩달아 퇴근을 못하고 방송국에 남아있으니, 

내 어찌 홀랑 퇴근을 할 수 있겠는가. 

 

휴-  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E피디가 그랬다. 


"한숨 쉬지마. 지금 니 짬에선 한숨 쉴 때가 아니야." 


순간 이 말에 울컥했다. 


"저기요. 피디님! 한숨도 맘대로 못쉬면 어떡해요? 

 그리고 제가 요가를 배워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요가 수업을 하다보면 일부러 한숨을 크게크게 내쉬라고도 해요. 

 다시 말하면 내 몸을 정화시키기 위한 호흡인거죠. 

 지금 저도 마음 잡고, 원고 잘 써보겠다는 뜻에서 쉰 한숨이었어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뒷일을 예측할 수 없고, E피디의 다음 반응도 뻔히 짐작할 수 있었던 나는, 

그저.. "네.. 알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작가실로 총총총 들어가는 게 전부였다.  


기분도 꽃 같고, 머릿속도 꽃 같고, 

참 인생 꽃같다 싶었던 그 날!!! 

 

나는 머리를 질끈 묶고, 믹스커피 두 봉을 뜯었다. 

어느 선배는 담배 한대 태우고 나면, 아이디어가 번쩍 떠오른다던데, 

비흡연자였던 나는 선배가 말하는 그 반짝 아이디어가 

때론 달달한 믹스커피 한잔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날은 두봉을 뜯어 진하고 아주 달달하게 탔다. 


뜨거운 믹스커피를 호록호록 마시고 나서, 

손가락을 키보드에 올렸다. 


'원고 신이시여.. 제발 강림하소서....'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원고를 써내려갔다. 


얼마나 썼을까. 집중 빡! 해서 한호흡으로 쭉 써내려간 나는,

마지막으로 오타는 없는지 눈으로 휙휙 확인한 다음 '인쇄'를 눌렀다. 

A4 6장 반이 나왔다. 


믹스커피 두 봉의 힘으로(?) 써내려간 원고를 들고 

나는 다시 E 피디와 마주앉았다. 


E피디는 볼펜을 휘휘 돌려가며, 

원고를 찬찬히 읽어갔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겨읽던 E피디는,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 


원고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뜬금 질문이라, 

나는 잠시 어버버댔다. 


"어.... 네? 스트레스요? 

 어.... 저는 여행이죠!" 


당시에는 돈을 버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여행을 가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여행으로 인해 큰 돈이 통장에서 훅- 빠져나갔어도, 

'괜찮아. 다음 달의 내가 열심히 일해서 갚아줄거야' 

이 생각 하나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이건 좋은 순환이었다. 


모은 돈으로 여행가기 - 일해서 채워넣기 - 여행가서 쓰기 - 일하기... 


그래서 목,금으로 녹방이 잡힐 때마다, 

나는 주말을 끼고 국내는 해외든 여행을 다니곤 했다.  




"맞다. 너 여행 자주 다니지?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아니, 그럼 좀 쉴래? 한 2주 정도 휴가를 줄게!" 


갑자기 스트레스니 뭐니 이런 얘기를 왜 꺼내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E피디의 진심은 언제나 '뒤'에 있었다. 

문제는 그 말의 진짜 뜻을 알기까지 스무고개를 해야하는 것처럼 

바로 해석이 되지 않았다는 거. 


'말 그대로 휴가를 주겠다는 뜻일까? 

 아니야. 이러다 그냥 쭉 쉬라는 뜻? 

 지금 뭔가 또 맘에 안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겨우 꾹 참았다. 

그러다가 물었다. 


"피디님은 언제 행복하세요?"  


새 코너 원고를 읽고 또 읽어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E피디는

본인과 같은 뜬금없는 내 질문에, 몇 초간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글쎄. 우리 애랑 있을 땐가...?" 


 맞다. 생각해보니 행복이라는 게 그랬다. 


복권 1등에 당첨되고, 

원하는 회사나 대학에 합격하고... 

이런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아무 때나 여러번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럼 진짜, 찐행복은 뭘까. 

글쎄... 돌아보면, 일상의 소소함 속에 있다고 본다. 


내 아이와 있을 때. 

하얀 쌀밥에 아삭한 김치 하나 올려 먹을 때. 

금요일 저녁, 밤새 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때.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릴 때.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됨!)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덕질할 때. 

찜해놓고 장바구니에만 담아놨던 물건이 50% 세일 중일 때. 

친구와 당일에 약속잡아, 바로 그 만남이 성사됐을 때. 


그리고 그날, E피디의 한마디!!!  


"이제 퇴근하자!! 좀 독특하긴 한데... 여기 부분만 다듬으면, 

  이번 주말부터 이 코너로 가면 되겠다." 


아- 행복하다. 

드디어 탈출(?)!!! 

퇴근이라니...!!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훌쩍 넘어있었지만, 

밤공기가 믹스커피마냥, 달게 느껴지던 날이었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곳곳에 물들어 있다. 

다만 우린 그걸 모르고 지나치거나, 잊고 살거나, 찾지 않는 것 뿐.  

그렇다면, 오늘 놓친 행복은 무엇일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행복은 무엇일까...?  


어느 누구는 돈을 많이 버는 게 행복이라 말하고,

어느 누구는 좋은 집과 차를 사는 것을 행복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당신은 언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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