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때문이에요

-채송화

by Olive

페르시아에는 왕궁의 벽과 천장, 바닥을 형형색색의 보석으로 가득 채웠음에도

다른 이가 가진 보석을 탐내고, 기여코 그 보석을 내것으로 만들어야하는 여왕이 살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 믿고 의지하는 것, 영원하다 믿는 것은 오직 반짝이는 보석 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이 보석의 아름다움은 영원해."


한 때 그녀도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자신에게 꽃을 꺾어다 바치고,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노래로 표현하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겠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지금은 당신 곁에 머물 수 없어요.

나는 이 세상을 좀 더 여행하고 싶어요. 많이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요."


평생 그와 함께할 나날을 꿈꿨던 여왕은 남자의 말에 몹시 실망했다. 그 실망이 어느 날은

밀물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서러움이 됐고, 어느 날은 몸서리 칠 만큼 날카로운 분노로 바뀌기도 했다.

밥을 먹다가도 주륵 눈물이 흘렀고, 누군가 심장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욱신거리기도 했다.

그 때부터 여왕은 '보석'에 더욱 집착하게 됐다.


"앞으로 상인들의 세금은 모두 보석으로 내게하라."

붉은빛, 푸른빛, 눈부실 만큼 영롱한 빛을 내는 온갖 보석들을 소유했지만,

여왕은 가지고 또 가져도 만족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석을 손에 넣을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과 공허함이 찾아왔다.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야. 더 많은 보석을 가져야겠어."


채워도 자꾸만 빠져나가는 것 같은 불안함과 보석을 손에 움켜쥐고 있어도 충만한 행복이

차오르지 않던 여왕은 결국 페르시아 온 백성들에게 가혹한 명령을 내렸다.

"이 나라 백성들은 죽기 전까지 보석 하나씩 세금으로 바치도록 하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에 부쳤던 백성들은 구경도 못해본 보석을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보석 하나를 세금으로 내려면, 집과 땅을 모두 팔아버려도 살 수가 없었다. 그 탓에 백성들은 하나 둘씩 여왕을 원망하기 시작했고, 저주하는 이들도 늘어갔다.


"여왕폐하. 사정을 조금 봐주십시오. 집과 땅을 모두 판다한들 그 돈으로는 보석 구경도

못해봅니다."

"아직 네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 열심히 돈을 모은다면, 보석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그때까지 너그러이 기다려줄 터이니, 이만 돌아가보거라."


여왕을 찾아가 하소연하는 백성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여왕은 매몰차게 내쫓았다.

백성들의 한숨과 시름은 늘어갔지만, 여왕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망토를 두른 한 노인이 여왕을 찾아왔다. 추레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노인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반짝거리는 갖가지의 보석들이 담긴 상자 열 두개를 여왕 앞에 내보였다.

여왕은 그 보석들을 보자, 찬란함과 황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신은 진귀한 보석을 많이 가지고 있군. 아직 내가 갖지 못한 보석도 있고 말이지."

"그렇습니까, 여왕폐하?"


노인은 차분하면서도 느린 어조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와 달리 여왕은 무척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어갔다.


"이보게. 내게 이 보석을 모두 준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도록 하지.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거라."

"좋습니다. 여왕폐하께 이 모든 보석을 드리지요. 단 그 값은 백성으로 치러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백성으로 값을 치르다니?"

"보석 하나가 페르시아 백성 한 사람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왕폐하."

"정말인가? 보석 하나에 백성 한 사람? 좋다. 내 그렇게 하지!"

"후회 없으십니까?"

"이 나라에 백성들은 차고 넘치느니라. 자네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만,

보석보다 귀한 것이 또 있겠는가."

"좋습니다. 그럼 이 보석들을 하나씩 가져가시지요."


노인이 가져온 보석에 눈이 먼 여왕은 노인이 말한 조건을 아무 거리낌없이 응했다.

다음 날, 여왕은 노인에게 가져온 보석 상자를 모두 가져오라 명하였고, 노인이 보는 앞에서

여왕은 자신이 원하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투명하게 맑으면서도 붉은 빛을 내는 이 보석은 내게 없는 것이라네."

"그럼 가지십시오. 여왕폐하."


노인에게서 보석을 하나씩 건네받을 때마다, 백성들은 한 명씩 사라졌다. 농사를 짓던 이가 사라졌고,

산에서 나무를 하던 이가 사라졌다. 빨래를 하던 이가 사라졌고, 밥을 짓던 이가 사라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사그라들었고, 소란스러웠던 궁궐 밖은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두를 알리 없는 여왕은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보석을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마다 노인은 차분하게 여왕을 바라보며, 원하는 보석들을 내주었다.

궁 밖에 있는 백성들의 소리가 사라졌고, 이제는 궁 안에 있는 신하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여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자가 사라졌고, 궁 안을 살피며 감시하던 자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느 순간 궁 밖과 마찬가지로 궁 안에도 적막함이 찾아왔다. 그 때 그 고요함을 깨고 여왕 앞으로

걸어오는 자가 보였다.


"그대는 여전히 보석을 사랑하는군요."

그 남자였다. 한 때 여왕이 사랑했던 남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오겠다며 여왕의 곁을 떠나간

남자. 그리움이 무엇인지,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그 남자였다.

보석을 세던 여왕은 여전히 해사하게 웃는 그 남자를 보고, 손에 들고 있던 보석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돌아온거야?"

여왕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보석을 주우며, 여왕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만! 더 가까이 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말해. 어째서 돌아온거지? 날 떠났잖아!"

"아무리 이 세상 전부를 여행해도, 그대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었어요. 미안해요.

그대를 아프게 해서, 그대를 외롭게 혼자 두어서."


여왕의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 모습을 곁에서 본 노인은 조용히 물었다.


"여왕폐하. 저 자가 들고 있는 보석과 이 상자에 남은 보석 하나. 딱 두개가 남아 있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

"이쯤에서 그만하시겠습니까?"

"아니, 저 자의 손에 든 보석은 반드시 가져야겠다."

"좋습니다. 이보시오. 그 보석을 내게 주시겠소?"


남자는 슬픈 표정으로 여왕을 쳐다봤다. 하지만 여왕은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을 바꿀 수도 없고,

여왕의 마음을 돌릴 수도 없다는 걸 확인한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보석을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남자에게서 보석을 받아든 노인은 다시 여왕에게 그 보석을 건네주었다. 여왕은 떨리는 손으로 그 보석을

받아들였고, 그 순간 남자의 모습은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그 남자가 사라지고 없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여왕은 그 때서야 주위를 살폈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황망한 바람만이 궁 안을 맴돌 뿐이었다. 여왕의 표정을 살핀 노인은 다시 한번 물었다.


"여왕 폐하. 보석이 딱 하나 남았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이 보석을 갖고 싶지만, 이제 더는 보석과 바꿀 백성이 없네."

"여왕폐하. 그렇다면 여왕폐하 자신과 바꾸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신다면,

마지막 이 보석까지 완벽하게 가질 수 있는데 말이지요. 허나 그리하기는 쉽지 않으시겠죠?

그렇다면 이 보석은 그냥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잠시만! 나는 그 보석을 꼭 가져야겠어. 그 보석을 이리 주거라."

"그럼 보석과 여왕폐하를 바꾸시겠습니까?"

"그리하지. 그 보석을 주고, 나를 가져가거라."


노인은 여왕에게 마지막 보석을 건네주었다. 여왕은 그 보석을 덥석 쥐었다. 그 순간 여왕이

백성들과 맞바꾼 보석 상자가 모두 터져버렸고, 여왕 또한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햇빛에 반짝거리는 고운 빛깔의 보석 가루들이 허공을 떠다녔다.

모두가 사라진 궁궐 안, 홀로 남은 노인은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망토를 슬며시 내렸다.

그 노인의 이마에는 '탐욕'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뒤통수에는 '허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노인은 한동안 멍하니 서서 궁 안을 바라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빛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마저 사라지고 나자, 사방으로 흩어진 보석가루들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꽃으로 변했다.

키가 작지만 진한 분홍빛으로 마음을 사로잡으며,

금방 시들긴 해도, 맑은 낮에 수줍게 고개를 내밀면서.



<가련함>이라는 뜻을 가진 꽃.

훗날 사람들은 그 꽃을 '채송화'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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