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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May 10. 2024

바람, 바람, 바람

월간감자

아무리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지는 게 적디 적은 삶일지라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다. 당장은 배가 고파도 미래에는 굶주릴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와 타협하며 아등바등 이루지 못할 꿈을 꿨다. 항상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없는 집안을 일으키려면 독기를 품은 채 살아야 했고, 생산적인 활동을 멈출 수 없었고, 한번 시작한 공부는 더욱 멈출 수 없었다. 단지 '보통의, 평균의,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기나긴 길을 돌고 돌았다. 그 과정에서 별의 요정 커비처럼 정말 많은 이들의 꿈을 삼켰다. A의 꿈이 좋아 보이면 A의 꿈을 내가 가졌고, B의 꿈이 좋아 보이면 B의 꿈도 내가 가졌다. 그렇게 10대와 20대를 보내고 나니 30대의 나는 로스쿨생이 되어있었다. 로스쿨만 가면 변호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면 적당히 베풀고 적당히 욕심도 채우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빛나는 삶을 바람하고 또 바람 하였다. 정신 차리라고 뺨 한 번 짝 쳐주자.  


내가 로스쿨에서 자각한 것은 공부를 향한 어정쩡한 태도와 어정쩡한 재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작 포기했어야 했다. 빠르게 포기하는 것도 재능의 일종인가 보다. 나는 그러지 못해서 값비싼 학업을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고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이었는데 경제적 부담은 점차 가중되었다. 옛말에 "다다익선"이라는데 생각만은 거기서 빼자. 생각이 점점 많아지니(중략), 공부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또 중략), 지갑은 점점 얇아져만 갔다.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개통했던 마이너스통장은 마이너스에 마이너스를 거듭했고 어느덧 나는 공부하는 시간보다 빚을 갚기 위해 물류센터 일용직, 전화상담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공부는 당연히 뒷전이었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시험장에도 들어서지 못하고 총 다섯 번의 응시 기회 중 두 번의 기회가 날아갔다. 애도의 박수 두 번 짝짝이다.


우유부단하고 어정쩡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운명을 거슬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임시로 찾은 직장이 구미에 있는 어떠한 대기업 반도체 공장이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교대 근무를 버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그녀였다. 어딘가 이질감이 드는데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존재 자체가 빛이 났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인생 경험이 풍부했고, 웃음과 눈물이 모두 많았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서도 그녀와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생존신고에 가까운 그것은 퍽이나 웃겼고, 로맨스와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방식을 바꿔서 그녀에게 매주 한 편의 자작 시를 보내기 시작했다. 시가 끊기는 주에는 그녀에게서 어김없이 '숙제'하라며 독촉 연락이 왔다. 나는 생을 저당 잡힌 사람처럼 그 숙제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녀에게 장난 반 진심 반 구구절절한 구애의 시를 쓰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내 진심을 전부 적어 보냈다. 처음에는 나를 밀어내던 그녀였지만 점차 짙어지는 내 진심에 화답해 주었다. 나의 용기에 칭찬의 박수 세 번 짝짝짝 보내주고 싶다.  


많은 말 못 할 사정이 있지만, 현재 우리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나고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닳아 있었고, 그 모습이 무척 닮아 있는데 우리는 그게 마음에 들고 이끌리는데 가족들은 그게 너무나 싫은가 보다. 그러면 어떠하랴 당사자들이 좋다는데. 그래서 일단 연애는 허락받았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그녀랑 더 일찍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퍼왔다. 가족의 반대 앞에 내가 저지를 행동이 예상되어서 짜증이 나고 화가 솟구쳤다가 마음이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한다. 내 작은 바다를 이 풍랑이 집어삼키지 않게 하소서. 그녀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있던 삶이었기에 내 옆에서만은 오롯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내 바람이 이루어진 적이 많지 않은 삶이라 그녀가 내 곁에서도 행복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겁이 난다. 막연한 바람처럼. 이것 역시 막연한 걱정이리라. 그녀는 나의 이런 걱정도, 소심함도, 우울함 마저도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 불현듯 떠오르는 노래 가사처럼 이제야 태어난 이유를 알 것만 같달까. 또 다른 가사처럼 그녀의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이지만, 왔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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