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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 Aug 15. 2015

힘내요, 새삼스러운 젊은이들

'힘내요'라는 말을 곱씹다가 돋쳐버린 생각의 잎사귀들


누군가를 위로할 때 곧잘 "힘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힘내요'란 말엔 듣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만한 힘이 들어있을까. 말의 밀도를 측정하는 도구가 있다면 아마 잴 때마다 밀도치가 달라지는 게 이 '힘내요'란 말일 거다. 지천에 굴러다니는 '힘내요'를 모두 모아 밀도치의 평균을 내 본들 성기다 못해 부스러질 수준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영혼 없는 격려들. 그것들이 평균치를 모두 깎아먹는다. 기껏 단어 하난데 폄하가 과한 걸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일을 이토록 민감하고 뉘앙스에 따라 함의가 달라지는 못미더운 단어 하나에 의존해도 되는 걸까.




"위로하고 싶을 땐 '힘내'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누가 가르쳐 준 건지 모르겠다. 다들 알아서 크면서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법도 눈치껏 배웠다. 그렇게 획일화된 위로의 말. 웃기면서도 슬픈 건 서로 힘내라는 당사자들도 힘낸다고 해결될 게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거다. 힘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면 힘을 안 내면 되는데, 힘이라도 안 내면 그나마도 견디기 힘드니까 부러 힘내려고 애쓰는 거겠지. 그러니 힘내보려 폼 잡는 것 외에는 피차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느 쪽이든 무력하긴 매한가지다.


애초에 위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힘내"에 너무 많은 지분을 내줬다. 그 말이 식상해진 건 위로할 일이 그만큼 흔한 탓도 있지만, 달리 다른 위로할 말을 찾을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탓이 크다. 좀 창의적으로 가닿게 위로를 하고 싶어도, 처음부터 힘내라는 말을 몰랐다면 모를까, 그렇게 3분 카레 마냥 간편한 단어가 있으니 굳이 다른 위로의 말을 찾을 생각조차 안하게 된다. 배워서 잘 할 수 있는 거라면 처음부터 위로의 말을 다시 배우고 싶다. 눈치껏 배운 위로법은 폐기해버리고, 엄마 따라 문화센터에 처음 간 영아의 시선으로 말이다. 위로가 흔한 세상에서 제대로 된 위로가 참 귀하다. 진실로 슬픈 건, 위로랍시고 타인의 삶에 부러 개입하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거다. 연결되어 있어도 사람은 모두 섬이니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 찰리 채플린이 했다던 그 말을 어디서 주워듣곤 최근 대화에 끌어다 쓴 적이 있는데, 진짜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가까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땐 희극에 포커스를 맞춰서 우스갯소리로 떠들었는데, 뭐든 내 경우가 되면 살갗 비비게 가까운 일이니 비극일 수 밖에 없는 거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조차 그만둔 채 넋 놓고 있으면 정말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곤 있는데 역시 모르겠다. 그저 지금의 비극이 한때의 희극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시간과 사건이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으면 하고 바라는 중이다.




왜 대부분의 노래 가사는 이십대 이야기일까. 그건 인생에 가진 것 없이 희노애락만 찬란한 때가 이십대이기 때문일거다. 자기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게 느껴지는, 고통의 역치가 가장 낮고 민감한 시기. 그 이후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들이 훨씬 적은 것은 연장자의 인생에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이가 더 들면 삶은 으레 괴로운 것이라고 디폴트 값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 뭐든 한 번이 어렵지,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괴로움도 고달픔도 고통스럽긴 해도 새삼스럽진 않다. 뭐든 새삼스러워야 기록도 하고 가사도 쓰는 거다. 그래서 한 시대의 노랫말들은 통점이 민감했던, 고통의 역치가 낮았던 수많은 누군가가 그렇게도 새삼스러워했던 감정의 흔적과 다름없다. 근래 들어 자주 그런 가사에 나를 내놓고 그 새삼스러움을 햇볕 쬐듯이 쬔다. 달콤히 찍어 문 빛의 퐁듀 라던가, 뭐를 생각하니 나만 보라 했지 라던가, 눈물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덮을거야 라던가. 그 새삼스러움의 가벼운 터치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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