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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road Sep 23. 2022

기변(병)과 치료법

병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이며 지르면 회복된다

비단 자전거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취미가 그렇겠지만 새로운 취미에 관심을 갖게 되면 주변 지인이나 온라인(주로 카페)에 문의를 하게 된다. 자전거를 예로 들면 보통 로드인 경우 '메리다 스컬트라 100'이 주 추천대상이고 MTB의 경우는 국민 자전거라고 불릴만한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알루미늄 프레임의 100만 원 전후 모델을 추천받는다. 아니면 "일단 하이브리드를 구입해서 타 보시고 로드가 맞는지 MTB가 맞는지 보세요"라는 조언도 듣게 된다. (근데 이건 확실히 대부분의 경우 이중 지출이 된다)


애초에 MTB에 관심이 없다면(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로드 입문기를 신차나 중고(많지는 않다)로 구입하게 되는데 몇 번 타 보니 생각보다 자전거가 적성에 맞고 여기에 기계적인 호기심도 높은 사람이라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입문급이라고 추천받아 타고 한강에 나가 보니 쫄쫄이 입고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지나갈게요~"를 하도 들어 노이로제가 생길 즈음  슬슬  다른 사람들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구동계가 어떻고 에어로, 올라운드, 프레임 재질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방안(눈앞에 안 보이면 내 자전거가 아니라는 말에 방안에 들여놓았다)에 놓여 있는 내 자전거가 괜히 없어 보이게 된다.


"어떤 종류의 자전거를 타건 중요한 건 엔진(체력 말이다)이에요!"라고 소신 있는 몇몇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들리지도 않고 체력이 비루하니 가벼운 자전거를 타면 더 빨리 더 멀리 힘 안 들이고 갈 수 있겠지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물론 그런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입문형 로드의 경우 100만 원 정도(이것도 적은 금액이 아니다) 면 장만할 수 있지만 카본 프레임에 105급 구동계를 갖춘 자전거(요즘은 어쩐 일인지 이 정도를 입문급이라고 하는 밈도 있다)는 3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여기서부터 또 고민이 시작된다. 100만 원이라면 어찌어찌 메꿀 수가 있었는데 300만 원.. 좀 부담스럽다. 게다가 자전거를 한 대 들이게 되면 사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생명줄인 헬멧은 기본(하나만 있으면 안 되니 2개)이고 고글과 물통, 안장가방, 전조등, 후미등, 요즘 워낙 사고가 많으니 블랙박스, 면티에 청바지 입고 타보니 땀도 흡수가 안 되고 뽀대도 안 난니 저지와 빕숏도 사야하고(자전거 양말이 그리 좋다며?) 로드라면 클릿 페달에 클릿 슈즈, 간단한 정비를 위한 육각렌치, 체인오일, 디그리셔... 내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를 봐야 하니 속도계 등등.. 100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면 추가로 100만 원 이상(이하가 아니다)이 들어가는데 이건 예산에 잡지도 않다가 다음 달 카드값을 보고 기겁을 한다.


아는 게 병이라고 차라리 몰랐으면 입문급 자전거로도 무난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라인 게시판에 "ㅇㅇㅇ로 기변하면 더 나을까요?"라고 글을 올려보면 아주 극소수의 반대의견(사실 반대의견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럼요 카본이 얼마나 좋은데요", "평속 5km는 오를걸요, "자전거는 가벼워야죠", "이쁜 거 사야 여러 번 탑니다", "와, 좋은 거네요. 부럽..", "요즘 자전거가 수급이 안 되니 일단 예약부터 하세요" 이런 답글만 보이고 나름의 확신을 얻어 12개월 무이자 할부가 되는 카드사가 어딘지 검색하게 된다.


그나마 새로 들인 자전거가 마음에 딱 들어서 (카드값과는 별도로) 평속도 올라가고 뽀대도 상승하였다면 다행이지만 기변을 해도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사실 대부분인지라 중고장터에는 ”큰 마음 먹고 구입했는데 일이 바빠 처분합니다“라는 제목의 신품급 매물이 자주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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