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세이 3, 어떤 동사의 멸종
한승태 작가의 노동 에세이 3부작 중 하나다.
각 단원은 종말에 가까운 직업을 동사로 주제화하였고, 첫머리는 그 단원에 나오는 직업의 대체 확률을 적어놓는다.
시작하며 : 소개하다
1부 전화받다
2부 운반하다
3부 요리하다
4부 청소하다
마무리하며 : 쓰다
각 단원은 인터뷰 등의 조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작가가 경험한 것을 썼다. 전화 상담을 하고,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주방 보조를 하고, 청소를 해서 획득한 실화,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밖에서는 모르는 내부의 실체가 낱낱이 고백되어 있는 것이다.
콜센터에서는 모니터에 표시되는 들어오는 콜 수와 처리되는 콜수가 찍히고, 인당 콜수, 평균 통화시간 등으로 자기 관리를 하도록 관리당한다. 그리고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 풍경이 되풀이된다, 현재 이미 인공지능으로 많이 대체되고 있는 직업이다.
콜센터가 내 작가 경력에 남긴 최고의 성취는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묘비 문구를 결정짓게 도와준 것이다. 이름 옆에 딱 이렇게만 적을 생각이다.
"콜센터가 제일 힘들었다."
행복하기 위해선 콜센터에서 일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42쪽에서
물류센터에서는 크기, 형태별로 짐을 분류하고, 차에서 내리고 싣는 일, 일명 '까대기'를 한다. 차는 의류 같이 가벼운 짐이 많은 '꿀차', 일거리가 없는 '빈차', 무겁거나 잔바리(주먹만 한 상자나 서류 봉투)가 많아서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것처럼 보이는 '똥차', 마지막은 꺼리는 짐(책, 액체류, 농산물 세 종류)들이 가득한 차다.
까대기가 끝났을 때 솟아오르는 감정은 강렬한 승리감이다. 일이 끝나서 즐겁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분이다. 외부의 장애물뿐 아니라 나 자신의 한계도 이겨냈다는 기분, 까대기는 일당 15만 원과 함께 그 승리강을 가슴 뻐근해질 만큼 전해준다. 어쨌거나 일을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다.
174쪽
한식 뷔페의 주방은 멀티 파트, 핫 파트(튀김기,화구, 찜기 - 주로 불 쓰는 요리), 콜드 파트(육절기 - 샐러드, 나물, 과일)가 있다. 작가가 주방에서 고른 한 장면, 주방장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서서 밥에 고추장만 비벼서 꾸역꾸역 먹는 장면이 내게도 가장 인상 깊었다.
재정적으로 식당을 떠받치는 것이 인터넷 리뷰라면 물리적으로 식당을 떠받드는 것은 직원의 손목이다.
242쪽
인생 2막에 택하는 일, '은퇴를 받아들이는 5단계'인 [퇴직 - 절망 - 재구직 - 냉대 - 청소], 사회적 죽음 뒤에서야 택하는 일, 청소하다.
60대 노인들이 40대인 내가 계단 오르는 걸 올려다볼 때의 막막함과 인간인 내가 로봇이 유리를 닦고 물건을 나르는 것을 볼 때의 막막함 중 어느 것이 더 암담할까? 어느 쪽일까?
351쪽
한승태 작가가 말하는 동사들이 멸종한다는 것은, 생계 수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으로 성장하고 완성되던 특정한 종류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자,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는 글로 세상을 상관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한국어에서 가장 공격적인 단어가 바로 '상관없어'라고 믿었다. 칼이나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나랑 상관없어'는 관계를 죽이고 세상을 죽인다고 믿었다.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 속에서 가치 있는 나를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대체해서 멸종될지라도...
안다, 그래서 월요일은 출근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