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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여름이 가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 김금희 작가님

by 설애

주인공은 손열매, 비디오 가게 [창세기]의 막내딸로 1994년 개봉된 [마스크]가 비디오로 나올 때 11살이었다.

[마스크]를 보지만, 너무 빠른 자막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를 위해 [마스크]를 자막을 읽어준다. 처음에는 국어 책처럼 읽다가 점점 실감 나게 읽어주었던 손열매는 성우가 된다.

1994년 개봉 마스크 포스터

성우가 된 손열매는 고수미, 대학의 같은 과였으며 룸메이트이자 친구였던 수미 언니가 돈을 가지고 사라진 후,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 성우인 손열매는 목소리가 떨리는 발성 문제가 생기고 지능도 낮다는 진단을 받는다. 고립된 삶과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 문제로 전이되었다는 진단이다. 보증금은 월세로 점점 사라지고, 일은 할 수 없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울에서 고립된 손열매는 수미 언니를 찾아 수미 언니의 고향인 완주로 간다.


손열매는, 갈 곳이 없다.


윌라 첫 여름, 완주


대부분 노인이 승객인 시골 마을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 비가 많이 오는 마을, 장마가 지겨운 마을인 완평시의 완주리에 있는 작은 매점 주인이자 장의사를 하는 수미 언니의 엄마, 유자씨를 찾아간다. 수미 언니를 찾지 못하고, 돈도 돌려받지 못했으나, 그곳에서 지내며 수미 엄마와 이상한 남자(외계인?) 어저귀, 옆집 여중생 한양미, 강아지와 같이 지내는 배우 정애라를 만나며 생기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열매는 마음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유자씨는 항암 치료를 받아서, 머리에 수건을 싸고 혼자 살고 있다.

돈은 돌려줄 수 없지만, 수미의 방을 월세로 사용하며 수미가 가져간 돈에서 차감하는 조건으로 완주에서 잠시 살기로 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플 때는 잘 먹어야 되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으로다가
같이 잘 먹어보자


유자씨와 그렇게 잘 먹어가며...


열매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애잔했다.

수미가 열매를 버리고 돈을 가지고 간 이후에, 열매는 수미 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궁금해한다. 왜 내게 말하지 않고 사라진 것인지.

그것은 수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수미 언니에게 그 정도 존재였는지에 대한, 내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존재가 무너진 시간, 나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일이 힘들어서 목이 아팠을 것이다.

목이 아파서 일을 못하기 때문에, 성우로서의 존재도 증명해 낼 수 없는 시간


손열매는, 갈 곳도 없고 존재 없는 시간을 맞닥뜨렸다.


완주에서 열매는 매점에서 가게를 보고, 커피를 타서 팔고, 빵을 만들어 팔면서 존재를 재건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저귀가 나올 때는 이 소설의 장르가 무엇인지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어저귀와 수미의 일화 중에서, 어린 시절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소개되는 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듣기 좋았다. 왜냐하면 신해철의 방송이었고, 성우의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그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오디오 북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장면이었다.


故신해철 고스트스테이션


존재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고,

그래서 열매는 목소리가 더이상 떨리지 않고, 일을 얻어서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손열매는 수미를 찾아간다.


손열매는 비가 오면 지겹고 무섭게 오는 그 완주에서, 마치 첫 여름을 맞이하듯이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완주에서 과거를 동여매고, 미래로 갈 수 있는 힘을 얻어낸다.

그래서, 중의적 의미의 인생에서의 하나의 마라톤을 완주한다.


여름이 되면, 비가 오면, 존재가 희미해지면, 생각이 날 것 같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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