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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갈릴레오 시리즈

용의자 X의 헌신, 한여름의 방정식

by 설애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명한 작가로 조금이라도 추리소설이나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다. 일부러 찾아 읽는 작가는 아니지만, 다작하는 작가이다 보니 눈에 띄기 마련이고,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읽어보았다.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던 기억은 꽤 인상 깊게 남아있었는데, [한여름의 방정식]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용의자 X의 헌신]을 다시 찾아들었다. 추리소설로는 가가형사 시리즈와 갈릴레오 시리즈로 구별하여 여러 작품이 있는데, 이 두 작품은 모두 갈릴레오 시리즈이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탐정 갈릴레오라는 단편집에서 물리학과 교수 유가와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면서 시작되었다. 침묵의 퍼레이드까지 번역되어 한국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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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을 출간 순서에 맞추어 읽는 것은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과거, 현재를 비교하며 더 입체적으로 인물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기도 한데, 나는 작가가 나이를 먹으며 바뀌는 세계관, 철학 혹은 그만의 특징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작하는 작가의 작품인 경우, 되도록이면 순서를 맞추어 읽는다.


이런 관점에서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를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이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해 [한여름의 방정식]에서 주인공 유가와를 통해 작가가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 넓어졌다고 느꼈다.





(! 여기서부터 스포 있음)


[용의자 X의 헌신]과 [한여름의 방정식]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비슷하게도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대신 죗값을 받는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대신 죗값을 받으며 두뇌게임을 벌이는 상대가 대학시절 유가와의 동기인 천재 수학사 이시가미이다. 이시가미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유가와가 사실을 폭로하여, 보호받는 대상자가 같이 자수를 하면서 그 헌신이 제대로 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시가미가 소리 지르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즉, 인생을 바쳐 그녀의 행복을 바랐건만, 그녀도 자수했으니 미쳐 소리 지를 수밖에...


[한여름의 방정식]에서는 유가와는 보호받는 대상자가 마음의 빚을 가지고 제대로 살아주는 것이 보답이며, 자기도 모르게 살인사건에 관여한 초등학생 교헤이에게도 따뜻한 말로 위로해 준다.


"어떤 문제라도 반드시 해답은 있어."
유가와는 교헤이를 똑바로 봤다.
"하지만 해답을 바로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인생도 그래, 금세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가 앞으로도 많이 생겨날 거야 그때마다 고민한다는 건 의미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지. 하지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해답을 찾아내려면 너 자신이 성숙해져야 해. 그래서 인간은 배우고 노력하고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 거지."
[한여름의 방정식]중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의 살인사건을 은폐하는 방식이 반전이긴 했지만, 그 결말은 충격적이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 안타까움이 이 작품을 오래 기억나도록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여름의 방정식]의 유가와는 그런 헌신을 이해하고, 모르는 척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겠다는 각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으로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두 작품이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죄를 뒤집어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헌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유가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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